워홀 끝나기 막바지에 이탈리아어 공식 인증 시험 보기
작년에 이탈리아로 워킹 홀리데이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나폴리에서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 어학원을 찾아서 CILS A2 시험 등록하고, 벼락치기로 이탈리아 원어민이 직접 가르치는 CILS 시험 대비반 수업을 한 두어 달 동안 열심히 수강한 일이다.
결과는 전부 0점이었다.
시험 하루 전 날 너무 무리하는 바람에 시험 당일 날 늦잠 자버려서 시험 장소에 제때 도착을 못 했기 때문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속이 상해 엉엉 울다가, 기분 전환 하자고 이탈리아어로 더빙된 미션 임파서블 보려고 영화관에 갔던 날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비싼 돈을 내고 타코를 먹었다가, 그 무더운 날에 냉장 보관도 하지 않았던 타코 소스를 먹고 그냥 배탈도 아닌 무려 장염이 걸리는 바람에 2주 동안 내내 고생했었다. (그렇게 이탈리아 약 추천 포스트가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몇 차례 시험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엿보았으나, 이국 땅에서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는 생각처럼 하루 종일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미뤄두다가 언어 시험 한 번도 안 쳐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를 할 것 같아 막 달에 부랴부랴 다시 신청해서 드디어 오늘 시험을 치고 왔다.
CILS는 "Certificazione di Italiano come Lingua Straniera" 약자로, 이탈리아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탈리아어 능력을 인증하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자격증이다. 시에나 외국어 대학에서 발행하며, 시험은 청취, 읽기, 쓰기 및 말하기와 같은 4가지 기술의 언어 및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평가한다.
유럽 공통 언어평가 기준에 맞춰 (그래서 보통 이탈리아 친구들은 본인의 영어나 다른 나라 언어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얘기할 때 이 기준에 맞춰 얘기한다.) 총 여섯 가지 단계가 있다.
1. CILS A1: 초급
2. CILS A2: 초급
3. CILS B1: 중급
4. CILS B2: 중상급
5. CILS C1: 고급
6. CILS C2: 숙달
이 자격증은 일터 및 대학계는 물론, 공공 및 사설 기관에도 인정이 된다. 특히 EC 거주 허가 (A2 Integration) 및 시민권 (B1 citizenship)을 획득하는 데 유효하다.
CILS 시험의 통과 기준은 각 레벨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CILS 시험은 각 섹션에서 일정한 점수를 얻어야 하는데, 이 점수는 각 레벨의 세부 사항과 관련하여 설정된다. 보통 각 파트(쓰기, 읽기, 말하기, 듣기)에서 일정 점수를 얻거나 각 파트의 평균 점수를 충족해야 통과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반 이상의 점수를 얻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확한 기준은 해당 레벨 및 시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혹여라도 파트(쓰기, 읽기, 말하기, 듣기)중 일부에서만 통과하지 못했다면, 일정기간 안에 다음 세션에서 개별 파트를 재시험 칠 수 있다.
모든 시험 답안지가 시에나 외국어 대학으로 모이기 때문에, 결과가 무척 늦다. 대략 3달 정도 기다린 후 https://online.unistrasi.it/riscils.asp 웹사이트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만약 통과가 되었다면, 내가 시험 신 학원에서는 자격증 원본을 가지러 다시 학원으로 직접 와야 한다고 알려줬다.
이탈리아로 워홀 온 지 대략 1-2개월 정도에 모의고사를 학원에서 봤었다. 2년 전 이탈리아로 3개월 살기 이후, 가게 창업에 비자 준비에 너무 바빠서 언어 공부를 따로 시간 내지 못했지만, 언어 감각마저 놓치기는 싫어서 캐나다 이탈리아 협회에서 제공하는 수업들을 일 년간 꾸준히 듣고 온 후에, 나폴리 학원에서 벼락치기 코스를 거의 끝마칠 무렵이었다.
듣기는 쉬운 prova 1는 그나마 좀 풀었는데 비교적 난이도 있는 prova 2는 아예 이해가 안 가서 풀 엄두도 못 냈었다. 리딩은 놀랍게도 다 맞았었고. 라이팅은 아무래도 모의고사이다 보니 백지에 기본적인 질문만 알려줬다. 40-60자 이내에서 적긴 했는데 틀린 스펠링이나 문법이 아주 많았었다. 스피킹에서 prova 1는 서로 대화해야 하는데 뭘 물어봐야 되는지 아예 몰라서 침묵만 흘렀고, 그나마 prova 2에서는 기본적인 질문들, 예를 들어, "자기소개를 하시오", "가족 소개를 하시오", "어제 무엇을 했는지 서술하시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말하시오" 등을 연습했는데, 이 역시 따로 준비해서 간 게 아니라서 혼자 1분을 꽉 채우는데 힘이 많이 들었다.
결과는 불합격. 모의고사 내내 계속 틀렸던 문법을 집어주고, 특히 말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조언해 줬었다. 모든 파트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생각보다 A2는 어렵지 않다는 점과, 그동안 문장이 아닌 단어만 파다 보니 지문을 읽거나 문장을 스스로 만들어야 될 때 불필요하게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단어를 넘어서 문장을 외워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꾸준하게 단어를 외우고, 여유로울 때는 문장도 외우고, Coffee Break Italian 팟캐스트도 듣고, 티브이를 설치해서 이탈리아 뉴스나 일반 이탈리아 프로그램도 이해 안 되어도 그냥 봤다. 남자친구랑 항상 같이 보다 보니까 이탈리아 자막은 이미 습관이 되어있었다. A2 모의고사 문제집은 리뷰에 틀린 정보가 너무 많다고 해서 굳이 사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 관한 기본적인 문제들을 추려서 스크립트를 만들고 달달 외웠다.
시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듣기" -> "읽기" -> "쓰기" -> "말하기"
단어랑 문법
이탈리아 기본 단어 1500-2000 단어 정도 알고 있다면 문제 하나당 대략 90-95프로 정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다. 그나마 모르는 단어도 어디서 많이 본 단어였던 것 같으니, 제대로 공부했으면 더 잘 이해했을 수도. 문법도 예상대로 대부분 현재형이고, 과거형 좀 나오고, 걱정했던 passato prossimo vs indicavo는 나오지 않았다. 미래형은 A2에서는 아직 배우지 않은 문법이다. "articolo"랑 "preposizione"는 주의 깊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
듣기 파트
1. prova 하나마다 2번씩 틀어주신다.
2. 다 듣고 대략 3분 정도 답안지에 옮길 시간을 준다.
3. 이탈리아 뉴스보다 한 1.5배 정도 느리다.
4. 문제 하나당 한 문단을 따로따로 읽어주기 때문에 하나도 놓치면 안 된다. 문장도 짧다.
5. prova n.1랑 prova n.2 사이에 3분 정도의 텀이 살짝 있다.
1. 읽기는 무조건 단어 싸움이다! A2인만큼 어려운 단어는 안 나온다.
2. 헷갈리게 한다고 문제에 다른 뜻인데 비슷한 단어나 지문에 있던 단어를 추가하는데, 여기에 속지 말고 전체적인 문장의 뜻을 이해해서 알맞은 빈칸에 넣어야 한다.
3. 알파벳 헷갈리게 적지 않게 조심하기.
4. 먼저 읽고 prova n.1랑 prova n.2 대략 40분 정도의 시간 동안 한꺼번에 풀 시간을 준다.
5. 끝나기 10분 전 알려주며 그때까지 충분히 고심한 다음에 답안지에 옮겨도 좋다. 당연히 시간을 넘치면 안 되지만 몇 초 차이는 웬만하면 기다려주시는 것 같다.
15분 쉬는 시간: 무조건 교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쉬는 시간에 폰을 돌려받을 수 있다.
쓰기 파트
1. 모의고사 때처럼 큰 1-2문제가 아니라 짧은 여덟 문제 정도가 나왔다.
2. 이번 prova n.1는 사진 보고 설명하는 문제가 나왔다. 40-60글자 제한이다. 둘 중에 하나만 고르면 된다. 답안지에 적기 전에 검사관이 찢어버린 이전 문제지 뒤편을 이용해서 문장에 알맞은 단어들을 나열한다. 그러면 나중에 적기에 더 쉽다. articolo도 원형을 먼저 써보면 합칠 때 덜 헷갈린다.
3. prova n.2는 15-30글자로 짧게 대답하는 문제가 대략 대 여섯 개 나왔는데 문제만 제대로 이해하면, 답도 문제에서 유추해서 적을 수 있기 때문에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4. A2 쓰기 파트에서는 어려운 단어는 절대 쓰지 않는다. 추가점 없고, 오히려 틀리면 감점이다. 정확히 아는 단어와 문장만 쓰도록 한다.
쓰기 시험이 끝나면 학원 밖 복도에서 다 같이 기다리며 한 명씩 먼저 하고 싶은 사람 순서대로 부른다.
말하기 파트
prova 마다 각 2개씩 있으며, 원하는 질문을 고를 수 있다. 원칙은 시험 당사자가 더 많이 말해야 하지만, 심사관 스타일에 따라 말하는 횟수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도 있고 원래 지켜야 되는 시간보다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핸드폰으로 녹음하므로 정확하고 또박또박 말해야 한다. 녹음기에서 의미 없는 침묵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되도록이면 질문을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답하길 바란다.
녹음기를 켜기 전에 질문을 먼저 보고 선택할 시간을 준다. 문제 이해를 제대로 했는지 설명도 잘해주신다. 당연히 강의처럼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수는 없지만 이해 못 한 것처럼 보이면 이해할 때까지 천천히 반복해서 설명해 주신다.
1. prova n.1 대화는 특정한 상황에서 무언가 물어보거나 일상 대화를 무리 없이 이어나가야 한다. 아무래도 2-3분 동안 서로 말해야 되기 때문에 심사관은 일부로 특정한 상황이나 사람에 대해 네거티브하게 답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오히려 묻거나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2. prova n.2 모의고사 예제를 기본 바탕으로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살짝 깊게 물어보는 문제가 많다. 인터뷰 소프트 스킬 질문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시험 보러 갈 때 꼭 챙겨야 할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여권이나 본인 신원증명서
2. 연필 아니고! 무조건 "검정 펜"!!
3. 가방 안에 간단하게 복습하거나, 폰에 복습할 자료 저장해 두기! 쉬는 시간이나 스피킹 기다릴 때 시간 버리지 않고 시험 준비를 요긴하게 할 수 있다.
4. 물! 다만 책상에 흐르지 않게 조심할 것! (이번에 정답지가 젖어서 시험 중간에 드라이기로 말렸음.)
5. 손목시계! 교실에 입장할 때부터 핸드폰 수거해 간다. 쉬는 시간에만 잠깐씩 할 수 있다.
시험 보러 갈 때 꼭 알아둬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0. 8시 15분까지 오라고 했으면 8시까지 가서 문 앞에서 기다린다. 15분이 되면 레벨끼리 묶어서 본인이 직접 시험을 치러 왔는지 가져온 신원 증명서와 대조하며 확인 후 사인 하라고 한다. 8시 30분 정도에 교실에 입장하는데 책상에는 볼펜 빼고는 아무것도 없어야 하며 (무늬 없는 물병은 괜찮았음), 핸드폰은 무음으로 바꾸거나 아예 꺼놔야 한다.
1. 쉬는 시간 5분에서 15분을 주긴 하는데 화장실이랑 시험 준비하느라 잠깐이라도 먹을 새가 없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도착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시험 중간에 '꼬르륵' 거릴까 봐 먹을 것 좀 챙겨갔는데 소용이 없다. 아침에 차라리 배를 조금 채우고 가자.
2. 답안지는 고칠 수 없다. 문제지에 어떤 짓을 해도 괜찮으나 (어차피 끝나면 비밀 유지 사항 때문에 다시 수거해서 아예 찢어버린다.) 답안지는 꼭 여러 번 미리 검토 후 답을 옮길 것!
3. 의외로 이탈리아 언어 시험은 영어나 한국어 시험만큼 긴장되고 딱딱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비교적 자유롭게 앉아서 담당 선생님들도 당신이 무사히 패스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감독을 해주신다.
4. 이름과 수험번호랑 바코드가 있는 스티커는 아주 중요하다. 매 파트, 매 종이마다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5. 답안지를 받자마자 까먹지 않도록 맨 마지막 ferma 사인을 꼭 한다! 나는 혹시 몰라서 필기체 사인 말고 내 이름을 영문으로 또박또박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