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국제 결혼하기 EP. 1
술 먹고 꽐라 되어서 홧김에 결혼하고 이혼해 버리는 라스베이거스처럼 쉬웠으면 좋겠는데, 불법 이민자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국제 결혼 하려면 은근히 준비해야 하는 서류와 해야 하는 일이 자잘히 많다. (그. 래. 도! 비자 얻는 것보다는 비교적 쉬운 것 같다.)
설사 아무 준비 안 하고 이탈리아에 덜컥 와버려도, 로마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에서 약속 잡아서 필요한 서류를 준비할 수 있으나, 나폴리에서 로마로 비싼 기차 좌석 예매하 가며 몇 달에 거쳐 여러 번 오갈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파서 (물론 우편 서비스도 있으나, 캐나다와 이탈리아에 산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배달이 제대로 될 리가 없을 것이다'는 못 믿는 병에 걸려 버렸다.) 비자 갱신하러 캐나다 가는 김에 아예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건 다 준비해서 오자고 결정했다.
아무래도 캐나다에서도 <<이민자>> 신분이다 보니, 웹사이트에 적힌 내용과 혹시나 다를까 싶어서 캐나다 대사관에 이메일 문의(consul.rome@international.gc.ca)를 먼저 해봤다.
자동 답변 이메일 이후 며칠만 기다리면, 세상에 이렇게 친절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주 자세하게 답변을 주는데, 여러 가지 변수 중에서 내가 직접 겪은 상황으로만 설명하자면:
캐나다 시민권자가 이탈리아에서 결혼하려면 가장 먼저 신청해야 되는 것이 바로 "the Marriage Nulla Osta"이다. 한국어로 풀자면, 캐나다인이 이탈리아에서 결혼하기에 결격 사유가 없다는 것을 캐나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받은 서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이 확인서는 로마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에서만 발급받을 수 있다. 발급받은 날짜로부터 6개월 동안 유효하다. 이탈리아어로 작성된다. 물론 메일으로 신청할 수 있으나, 직접 만나서 발급받고 싶다면 미리 이메일로 예약하고 가야 한다.
참고로 이메일로 예약 잡으려고 문의하면, 대사관 쪽에서 먼저 당신의 서류가 제대로 준비되었는지 카피를 스캔해서 이메일로 보내라고 한다. 검토 후에 맞으면, 그제야 예약을 회신 날짜 기준으로 며칠 이내로 잡아 주는데, 한 달 주기로 예약을 받는 시스템이라 2-3달 뒤에 예약하려고 하면 월말에 다시 연락하라고 한다.
혼인 무사증명서(Marriage Nulla Osta)를 얻기 위한 필요한 서류는 크게 다음과 같다.
1. 선서된 혼인 진술서
2. 지원 서류
3. 영사 처리 수수료
모든 캐나다 시민(만약 두 명의 캐나다 시민이라면 각자 필요하다는 얘기)은 혼인 진술서를 작성하고 서명해야 한다.
어디서 선서할 수 있냐면,
1) 캐나다에서는 Public Notary (즉, 공증인) 앞에서, 또는
2) 이탈리아에서는 로마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에서 (이메일 예약 필수), 또는
3) 해외라면 캐나다 어느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에서
가능하다.
지원서는 다음과 같다. (당신이 결혼할 때 혹여나 지원서 포맷이 다를 수 있으니, 굳이 여기서 깨진 파일 다운로드하지 말고, 대사관에 이메일로 직접 문의해서 안전하게 자료 받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올린 이유는, 두 가지 내가 몰랐던걸 알려주고 싶어서인데,
첫 번째. 언제 어디서 결혼할 것인지는 백 프로 확실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우리가 계획한 도시 이름과 몇 월 몇 년도에 할 것 인지 정도만 적었다.
두 번째. 제3장에서 하나 작은 실수 한 게 있는데, 나는 진술된 진술서라고 해서 사인과 장소 그리고 날짜를 미리 적어 갔더니, 대사관 직원 앞에서 직접 사인해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페이지는 모두 빈칸으로 내버려 두어 달라고 권고받았었다. 다행히 대사관 직원이 센스 있게 새로 인쇄해서 다시 사인하라고 했다.
다음과 같은 지원 서류가 필요하다.
캐나다 여권 (인적 사항 페이지만)
출생증명서 (부모 정보 포함); 캐나다에서 태어난 경우
캐나다 시민권 증명서/카드 (앞면과 뒷면); 캐나다 외에서 태어난 경우
*혼인 기록 검색/각 캐나다 주 및/또는 준주에서 발행한 혼인 기록 증명서; 16세 이후 거주한 지역
최종 이혼 증명서/판결문 (이혼 날짜 기재)
배우자의 사망 증명서 (미망인인 경우)
약혼자의 유효 여권 또는 신분증
작성된 신용카드 승인 양식
우편 또는 수령 지침 (혼인 무사증명서는 외국 또는 이탈리아 주소로 추가 비용 없이 등기 우편으로 발송된다; 특송 배송은 신청자가 직접 조직하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다만, 대사관에서 대면으로 약속이 잡힌 경우 서류 검토 후 바로 혼인 무사증명서를 직접 발급해 주기 때문에 나는 상관없었다.)
지원 서류는 원본 형식이나 인증된 사본으로 제출할 수 있다.
당연히 여권, 출생증명서, 캐나다 시민권은 원본 말고 공증된 사본을 제출해야 한다. 대사관에 한번 제출하면 다시 반환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증된 사본이란,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면 퍼블릭 로터리에 가서 공증인한테 공증받거나, 이탈리아에서 거주 시 로마의 대사관에서 대사관 직원에게 공증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혼인 기록 검색/서류(Marriage search records/letters)는 이전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신청자는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이혼 또는 배우자의 사망 이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포함해야 한다.
특히 이 혼인 기록 검색/서류가 조금 머리가 아픈 과정을 거쳤다. 왜냐면...
빅토리아 섬에 산다면 직접 가도 되겠다만, 아무래도 밴쿠버에서 이 서류 하나 때문에 페리 타고 하루종일 시간 낭비를 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메일로 문의할 수밖에 없었는데, 크레디트 카드 식별에 문제가 생겨 3-4번을 메일로 주고받고 해서 서류받는데 대략 2달이 걸렸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틀렸을 때 전화가 왔었다. 통화하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고칠 수도 있었으나, 그들이 일하는 시간에는 당연히 나도 일하는 시간이어서 그들의 전화를 받을 여유가 없었고, 전화했었다고 보이스 메일은 남겨줬으나 보안 상의 이유로 담당 부서의 사람을 다시 전화 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메일로 주고받았었다.
따라서, 이 서류를 작성할 때는 카드 번호를 카드에 적힌 그대로 (띄어쓰기까지 포함) 적길 바란다.
다음은 캐나다 정부 웹사이트에서 가져온 샘플 증명서 사진이다. 이렇게 비슷한 종이를 메일로 받게 된다. (나 같은 경우는 이 증명서는 원본 제출도 가능하나 혹시 몰라서 공증받은 서류로 제출했다.)
캐나다 혼인 기록 검색/서류에 관한 공식 웹사이트 주소는 다음과 같다.
그리고 the credit card authorization form (작성된 신용카드 승인 양식) 또한 이메일로 문의 시에 같이 첨부해 주는 서류 중 하나인데, 세 번째 조건, 즉 영사 처리 수수료를 위한 서류라고 보면 되겠다.
혼인 무사증명서 발급에는 영사 처리 수수료가 적용된다. 수수료는 신용카드 승인을 통해만 지불할 수 있다 (현금 불가능). 만약 당신과 당신의 약혼자 모두 캐나다 시민이라면, 각자가 혼인 무사증명서를 받아야 하므로, 각각 영사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각 무사증명서의 영사 수수료는 CAD $50.00이다.
혼인 진술서를 로마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이나 밀라노의 캐나다 총영사관에서 선서할 경우에도 영사 처리 수수료가 적용된다. 만약 당신과 당신의 약혼자 모두 캐나다 시민이라면, 각자가 혼인 진술서를 선서해야 하므로, 이 역시 각각 영사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각 진술서 서명의 영사 수수료는 CAD $50.00이다.
그래서 나는 총 100불의 캐나다 달러를 지급했다. 서류 제출한 당일에 바로 종이와 이메일로 영수증을 준다.
메일로 신청하려거나 예약하고 찾아가려는 사람들을 위해 남겨놓는 캐나다 대사관의 주소는 다음과 같다.
Embassy of Canada
Consular Affairs (L/N)
Via Zara, 30
00198 Rome
Italy
구글로 검색하면 주황색 건물 사진이 제일 먼저 뜰 텐데, 이거 옛날 건물이다. 2024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은 빌딩을 찾으면 된다. 로마 기차역에서 대략 30분 정도만 걸으면 나온다.
이탈리아 영사관과 다르게, 캐나다 대사관은 대략 15분에서 30분 정도 미리 도착해서 기다려야 한다. 사진에서 가운데 문이 정문인데, 이 역시 이탈리아 영사관보다 보안 검색 절차가 무지하게 힘들었다.
사설 경찰 둘이 정문을 지키고 있고, 문 밖에서 먼저 경찰에게 왜 왔는지 검사(?) 맡아야 한다.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하면 그제야 두꺼운 방탄유리를 키로 열어주는데, 거기서 가방 및 소지품 검사를 무려 엑스레이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부상처럼 다 바리바리 가져가지 말고 필요한 서류만 들고 가면 훨씬 나을 것 같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후 2차 보안 검색대를 지나가야 하는데, 이때 가방뿐만 아니라 전자기기 및 소지품도모두 검색대에 내려놔야 한다. 바로 게이트를 지나가는 게 아니고 다른 사설 경찰이 대사관과 연락해 들여보내줘도 되는지 검토 후 입장이 가능하다고 허락을 받을 때 방문자 출입증을 받아가면서 지나갔던 기억이 있다.
대사관에서는 보안의 이유로 핸드폰을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 소지 불가능이다. 다행히 옆에 락커가 있어서 열쇠로 잠가놓고 입장이 가능했다. 보안 상의 이유로 자세하게 설명은 못하지만 대사관에 입장 한 이후 모든 절차 하나하나가 사설 경찰들의 감시와 보조 아래 행해진다고 보면 되겠다.
그래도 사설 경찰들부터 해서 대사관 직원들까지 99프로가 이탈리아 사람들이었는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엄청나게 친절했다. 이탈리아에서 (그것도 정부 관련 부서가) 거의 모든 방문자들을 웃으면서 친절하게 응대해 주는 장면은 이탈리아에 온 지 3년 동안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동안 비자 때문에 경찰서 방문하면서 거지 같은 경험 하며 크게 덴지라, 이런 세심한 배려를 생각지도 못하게 받아버리니, 몸 둘 바를 몰라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하였다 이 말이다.
어쨌든, 창구에서 약속을 잡았고 Marriage Nulla Osta를 신청하러 왔다고 하니, 좀 기다리니까 다른 방으로 가서 준비된 서류를 제출하고, 대사관 직원 앞에서 사인을 다시 하고, 대사관 직원이 직접 사인하고 날짜와 장소를 적어주니, 대사관 직원이 찍어준 캐나다 대사관 도장과 그녀의 사인이 적힌 이탈리아어로 적힌 혼인 무사증빙서를 영사 처리 수수료 영수증과 함께 바로 발급받았다.
하필 나 바로 앞에서 기다리던 캐나다인들이 이탈리아 여행 도중에 여권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여권 신청하느라 대사관 직원들이 진땀을 빼서 그거 기다리느라 총 45분이 걸렸지만, 만약 여유로운 시간이었다면 신청하는데 몇 십분 안 걸렸을 것 같긴 하다.
역시 끝나고 이후에도 똑같이 사설 경찰의 감시 아래 출입증 반환하고 검색대를 거쳐 나오면 친절하게 잘 가라고 응대해 준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유효하게 사용하기 위해 서류 인증이 필요한데, 혼인 무사증명서를 관할 Prefettura(서류 인증 사무소)에 제출해서 인증받아야 한다.
대사관 직원에 따르면 제출해서 주는 게 아니고 인증받은 후 원본을 다시 받아가야 한다고 한다. 원칙적으로는 이탈리아에 있는 Prefettura(서류 인증 사무소)라면 어디라도 상관없다고 한다.
혼인 무사증명서가 인증된 후, 이탈리아에서 결혼할 계획이 있는 Comune(지방자치단체) 혼인 사무소에 제출해야 한다.
만약 양쪽이 이탈리아 시민이 아니거나 이탈리아에 거주하지 않는 경우, 공고는 면제된다.
Comune(지방자치단체) 당국은 며칠 후에 Ufficiale dello Stato Civile(혼인 등록관) 앞에서 선언서에 서명하라고 요청할 것이다. 이 선언서는 이탈리아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을 위한 것. 당신이나 약혼자가 이탈리아어에 익숙하지 않다면 통역사를 고용해야 한다.
절차가 완료되면, 민사 결혼식이 공식적으로 승인된다. 결혼식에는 두 명의 증인과 필요시 통역사가 참석해야 한다.
서류 제출일로부터 결혼식까지의 대기 기간은 계절과 Comune(지방자치단체)의 요청 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비거주자에게 결혼 수수료를 부과할 수 있다.
이에 관한 설명을 대사관 직원이 더 해줬는데, 지금은 완전히 이해한 부분이 아니라서 다음 에피소드에서 더 자세하게 풀 예정이다.
아, 참고로 여자는 이전 결혼이 종료된 지 300일 이내에 재혼할 수 없으며, 이탈리아의 법원에서 면제를 받아야 한다. 아마 비자를 위한 가짜 결혼이 너무 성행해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만든 법 같은데, 여자만 받는 제한이라니 참... 씁쓸하다.
여담으로, 나는 종교 결혼식이나 아예 결혼식 자체에 대한 로망이 어렸을 때부터 아예 없었다. 단 하루를 위해 몇 천만 원을 쓰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그 돈으로 집 사야 된다. 여러 나라를 살다 보니 허니문 여행도 별 감흥이 없다.), 제3국에서 제일 늦게 올리다 보니까 어쩌면 초대할 사람도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캐나다에서도 학교 파티가 있는 날이면, 친구들이랑 예쁜 드레스 입고 싶어서 참석했을 정도로 나름 웨딩드레스에 환상이 컸었는데... 영화에서 보던 결혼식을 할 수 있기는커녕, 막상 내 결혼식이 닥치고 나니, 상대방 가족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 가족들도 갑자기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을 털어놓는데, 들어주자니 내 결혼식인데 뭐 하는 건지 싶고, 안 듣자니 양쪽에서 다신 안 보겠다느니, 내가 이기적이고 불효녀라는데, 머리가 팽팽 돈다.
내 결혼인데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날 결혼에 활짝 웃으면서 보낼 수 있을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웃어야 된다. 한국에서는 눈치만 보이겠지만, 여기서는 그랬다간 다들 내가 불법 체류자인 것처럼 의심할 테니까.
누구를 위한 결혼인지 모르겠다.
다들 이렇게 결혼을 시작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