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국제 결혼 하기 EP. 2
Prefettura (도청) 방문하기
그렇게 캐나다 대사관에서 혼인 무사 증명서(Marriage Nulla Osta)를 받은 그날 즉시 이탈리안 약혼자가 온라인으로 나폴리 도청에 방문 예약을 잡았다. 캐나다 대사관 직원에 따르면, 이 증명서가 이탈리아에서도 공식적으로 도청에서 먼저 공증받아야 되기 때문이다.
준비물은 서명이 되어있는 혼인 무사 증명서(Marriage Nulla Osta)와 La marca da bollo라고 하는 세금 스탬프가 필요하다 스탬프는 바에서 살 수 있다. (2024년 9월 기준으로 나폴리에서는) 16유로 정도 된다.
아침 11시 40분에 예약했지만, 자동 이메일 답변에서는 시간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이 애매하게 날짜만 알려줬을 뿐이었다. 순간 여기서 둘 다 싸함을 느꼈지만, '설마...'라고 생각하며 아침에 시간 맞춰서 갔다.
약속 시간보다 대략 15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창구에 있는 직원에게 예약된 이름과 시간을 알려주니 통보도 없이 예약 시간이 원래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잡혀있었다. 적반하장으로 접수하는 직원은 짜증 난 듯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면서 볼맨 소리를 내는데, 창구에서부터 '너 잘못이네, 내 잘못이네' 의미 없이 따져봤자 결국 우리만 손해인 걸 이미 작년에 워홀 거주 허가증 사건으로 충분히 배워서 그냥 대인배답게 넘겼다.
그러고 알려준 빌딩에 들어가 어찌어찌하여 사람들 소리 나는 층으로 갔더니, 역시나 아무 푯말도 없었다. 복도에 들어오지 말라고 벨트가 쳐져있어서 약혼자 혼자 용감하게 들어가서 마치 한국 병원의 병실처럼 각 방마다 걸려있는 작은 액자를 눈알이 빠지게 들여다보며 찾아 비로소 담당 공무원 오피스에 출입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가 잘못한 건 없지만 혹시나 기분 나쁘다고 안 받아줄까 봐 사바사바 거리며 "늦어서 죄송합니다. 우리 결혼 때문에 왔는데 이 문서를 공증받아주실 수 있으실까요..?"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공무원은 우리를 한번씩 번갈아 쳐다보고 나서, 혼인 무사 증명서를 한 번 쓱 훑어보더니 하는 말, "워킹 홀리데이는 공증 필요 없어. 런던에서 보증하거든."
악!!! 순간 부글부글 끓는 우리의 마음. 한 문장에 몇 개나 틀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잠깐! 당신이 이탈리아에서 살면 듣기 싫어도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은 다음과 같다.
"Non lo so" = 나는 몰라.
"Non è di mia competenza" = 그것은 내 업무/책임이 아니야.
"Dovresti andare nell'altro ufficio." = 다른 오피스로 가봐.
그나마 다행인 점은 캐나다 공무원처럼 맨날 '모른다'무새 마냥 얘기하는 것보다, 차라리 틀린 답이라도 얘기해 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하하
그래서 우리는 "워킹 홀리데이 아니고요. 결혼하려고 하는데 캐나다 대사관에서 시청에 결혼식 신청하기 전에 반드시 이 혼인 무사 증명서를 도청에서 공증받으라고 했어요."라고 친절하게 공무원에게 알려줬다.
여차하면 캐나다 대사관이 알려준 메일이라도 보여주려고 만만의 준비를 할 찰나, 공무원 할아버지는 다시 증명서를 찬찬히 읽어보더니, 바로 다른 오피스에서 도청 공증서를 쓱-하니 가지고 와서, 도청 도장을 찍고 사인을 해줬다. (이때 여기에 사 온 텍스 스탬프도 붙여준다.) 마무리로 스테이플러로 세 번 탁-탁-탁 찍고 나서 도장을 또 세 번 딱-딱-딱 찍는다. 드디어 증명서와 공증서를 돌려주면서 하는 말 "이제 너네 결혼할 수 있겠네."
공손하게 문서를 받들고 웃으며 "Grazie mille (대단히 감사합니다)"라며 오피스를 빠져나왔다.
이 모든 상황이 30분 안에 다 마무리되었다.
정말 거주 허가증보다 훨씬 쉬운 일이라 다행이다. 또 의미 없이 도청, 시청 뱅뱅 돌아야 되는 줄 알고 전 날 밤도 설칠 만큼 걱정했는데... 자, 이제 다음 스텝은 시청 방문하기이다. 그렇지만 언제 갈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오피스가 열리는 시간이랑 시청 직원이 언제 일하는지는 다른 얘기이기 때문이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