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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시카 Sep 17. 2024

Comune (시청) 방문하기

이탈리아에서 국제 결혼 하기 EP. 3

이럴 줄 알았어. 왠지 그전 단계까진 이탈리아에서 일 다 해결한다고 너무 순탄하게 갔던 거 같더라니.


난관에 부딪혔다. 아주 크게.


때는 대략 2주 전, Prefettura (도청)에 다녀온 뒤, 마지막 단계만 남았으니 일찌감치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김칫국을 시원하게 마시고 룰루랄라~ 시청도착했다.


해는 짱짱하고, 구름이 살짝 껴있는 날. 이미 앞에 교회에서 결혼하려는데 문제가 생긴 커플이 직원이랑 실랑이를 하느라 바쁘다. 구태여 남의 싸움 가까이 듣고 싶지 않아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주변 동네를 훑어보는 동안, 여지없이 아줌마 하나가 새치기를 하려다 딱 걸렸다.


눈치 싸움에서 이긴 우리. 내 약혼자 체격을 보더니, '아, 너네 줄 서고 있는 거야?'라며 시치미 떼며 한 걸음 물러선다. 이제부터 꼼짝없이 저 실랑이가 끝날 때까지 시청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


아, 왜 시청 안으로 들어가질 못했냐면, 시청이 너무 작아서. (한국 일반 동사무소보다도 훨씬 작다.) 두 사람 들어가면 손님이 창구에서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꽉 찬다. 문이 안 열릴 만큼.


그렇게 어찌어찌 시간은 흐르고, 성난 커플이 딱히 해결된 게 없는 채로 문 밖에 나왔다. 아줌마가 그 새 또 새치기를 할까 봐 우리는 잽싸게 문 안으로 들어갔다.


준비된 서류를 꺼내며, "우리 9월에 결혼하고 싶은데..."라고 운을 떼며 시청 직원과 혼인 신고서에 대해 얘기를 하려는 찰나- 말 끝나기가 무섭게 왜 9월에 우리가 결혼할 수 없는지 이유를 다다다 쏟아낸다.


거기까지는 사실 우리도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 이탈리아에서 프로세스가 그렇게 빨리 될 리가 없지. 나는 가만히 옆에서 대충 잘 알아들으며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중이었는데, 시청 직원이 몸을 휙 돌렸을 때, 약혼자는 그도 모르게 습관처럼 무심코 영어로 나에게 상황 설명을 해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몸을 우리 쪽으로 돌리며 무서운 얼굴을 하며 가까이 온다. 무표정한 얼굴이 더 굳어지며 우리에게 거의 협박조로 물어보기 시작한다. "너 약혼자 이탈리아어 못하는 것 같은데? 이러면 너네 traduttore (번역가) 구해야 돼." 그러고 나서 다시 나를 째려보면서 물어본다, "Tu parli italiano? (너 이탈리아어 말할 줄 아니?)"


그럴 줄 알고 미리 할 말 연습해 왔지. "Sì, parlo italiano. (응, 이탈리아어로 말할 수 있어.)"


그녀가 여전히 화난 얼굴로 물어본다. "Tu capisci? (이해한다고?)"


나는 더욱더 긴장한 상태로 대답한다. "Sì. (응)"


오히려 내 대답으로 의구심이 확신으로 들어 찬 얼굴이다. 약혼자를 보고 "쟤 이탈리아어 유창하진 않잖아. 너네 결혼 문서도 읽고 이해하고 사인해야 돼. traduttore (번역가) 말고 interpret (통역가) 고용해라."라고 거의 윽박을 지른다. (약혼자 왈, 나중에 우리 결혼에 문제 생겨서 경찰에 신고하면 저 사람이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고 하더라. 그래도 그렇지, 다그칠 필요는 없잖아.)


그런 일은 내가 알 턱이 없고. 결혼 비용을 최대한 줄이려고 혼인 신고만 할 생각이라 되도록이면 돈을 안 쓰고 싶어서 서로 미리 말도 잘 맞춰두고 어떻게 최소의 돈으로만 결혼식에 쓸 계획인지 다 정해놨는데, 초장부터 다 물거품이 돼버렸다.


약혼자가 다시 말을 꺼내려고 하니, 그건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이. "됐고, 지금 너네 nulla osta (허가증)이랑 ID 카드 받았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너네가 결혼한다고 마을에 공표할 거야. 그러고 아무도 의의제기 하지 않으면 다음 주 정도에 다시 연락 줄게. 다시 말하지만, 너네가 원하는 9월에 날짜는 절대 할 수 없어. 그래도 최대한 빠른 날짜를 잡아보도록 할게."


뭘 설명할 새도 없었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그전 상황에 화난 걸 우리한테 푸는 겸사겸사 우리가 불온한 사이라고 거의 확신하는 눈치였다. 그 직원은 나를 마치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에 끌려온 십 대 여자애인 것 마냥 내내 대했다.


저 대답 말고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이고 너 말 알아듣고 있어. 여기 우리 혼인 신고 하러 온 거 나도 알고 있는 상황이고.. 등등" 오기 전에 상황극까지 하며 여러 가지 말을 준비했는데, 말할 기회도 없었다. 거의 범죄자를 다그치는 듯이 쏟아내는 상황에 그녀와 더 이상 대화를 시도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쫓겨나듯이 나오면서, 너무 많은 상황이 한꺼번에 몰아친 상황이라 얼빠진 상태로, "그래도 우리 제출은 했잖아. 기다려보자"라며 서로를 애써 위로하며 시청을 나와 차를 타고 동네에서 장을 한참 보는 중이었는데, 전화가 갑자기 온다.


아까 그 직원이었다. "너 약혼자 여권 복사 하는 거 빼먹었네, 너네 지금 다시 올 수 있겠니?" 갑자기 친절한 모드로 물어본다. (이 역시 문제 생기면 저 직원이 곤경에 빠지니까) 그렇지만 이미 해 질 녘이었고, 마트에서 시청으로 다시 가려면 모든 일을 그만두고 시청이 문 닫기 전에 달려가야 했으니, 당연히 우리는 거절을 하고 다음 날 간다고 통보를 했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미친 듯이 운전해서 갔다. 전 날 밤새가며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진심인지, 내가 얼마나 이탈리아어를 잘하는지 연습한 게 무색하게 다른 직원이 세상 태평하게 앉아있었다.


전날 혼인 신고하러 왔는데 여권 빼먹었다고 전화 와서 왔다며 간단하게 설명하고 내 여권을 그 직원에게 넘겨줬다. 전 날 만났던 직원은 오늘 일 안한다며, 급하게 내 여권을 복사하고 우리 문서를 쥐잡듯이 찾는데 도저히 못 찾겠나 보다.


우리는 전 날 너무 시달려서 예민해진 상황이고, 영문도 모르고 화난 우리 눈치 보던 그 직원은 복사한 여권에 약혼자 이름과 번호를 적어놓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겠다며 우리를 서둘러 돌려보냈다.


그렇게 약속한 일주일이 훌쩍 넘었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전화를 했다. 여권을 대신 복사했던 그 직원이 우리인걸 눈치챘는지 "나 지금 다른 일 때문에 바빠, 10분 뒤에 전화해." 그래서 한참 뒤 다시 전화하니까 그새 전화 라인을 뽑아놔 버렸다. 당최 연락이 안 되어서 내일 그 지겨운 시청에 또다시 가야 한다... 아휴.


제발 그냥 귀찮아서 일을 안 한 거였으면 좋겠다. 걔들이 멍청해서 내 문서를 잃어버리는 순간, 나는 캐나다에서부터 준비해 온 자료를 다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된다. 그러면 우리가 언제 결혼할 수 있는지 모른다. 모든 게 미뤄지면 Permesso (체류증)도 문제 생길 테고. 그러면 절대 안 되는데...!


유튜브에서 밀라노나 로마에 사는 부부들 보면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나폴리에 사는 게 조금은 후회되는 날이다.




굳이 이런 무례한 사람까지 입장을 이해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 까칠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워낙에 위장결혼 사건사고가 많다 보니, 나폴리에서 이탈리아 남자 아시아 여자에 대한 국제 커플에 대한 눈초리가 그리 달갑지가 않다.


그중에서도 나폴리는 로마나 밀라노보다도 외국인이 현저히 적다. 그 중심에도 멀어진 이 작은 도시에 처음 왔을 때 정말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나다니면 "쟤 어느 나라 사람인지 맞춰봐"거리는 속닥거리는 애들도 있었고.


항상 그랬다. 약혼자가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해준다고 나에 대해 설명할 때, "캐나다 여자친구가 있어"라고 얘기하면 그러면 그들은 당연히 내가 금발에 파란 눈을 생각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갈색 머리에 갈색 눈보다는 드문 금발에 파란 눈을 선망한다.) 그러고 나를 실제로 보면 '생각한 거와 다르게 중국 사람이네'라는 실망하는 얼굴. '게다가 이탈리아어도 유창하지 않잖아?' 그렇게 금세 나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진다.


캐나다에서는 웃는 얼굴로 돌려 까서 지나고 생각해 보면 기분이 더러운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데 정말 거침이 없다. 캐나다에서 자라다 보니까 외지인에 대한 자기 감상을 표현할 때면 '이걸 내 면상에 대고 한다고?' 깜짝 놀랄 때가 정말 많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서럽다. 무슨 80년대도 아니고, 국제 커플이 지금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데,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을 받아야 되는지 모르겠다.


결혼한다고 알렸어도, 순수한 "축하해"라는 말 듣기가 참 어렵다.


조언이랍시고, "그래도 이혼할 때는 꼭 너 아내가 이탈리아에서 독립할 수 있게 도와준 뒤에 해야 돼. 알겠지?" 신신당부를 한다. 우리가 당연히 이혼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이탈리아 결혼식보다 혼인 신고할 때가 진짜 결혼하는 거라는 의미가 커서, 처음에 약혼자 가족이 우리가 아는 사람들 다 초대하고 파티를 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우리 가족은 못 오는 걸 알지만 (라고 쓰고 우리 가족은 안 오고 싶어 한다고 쓰자) 딱히 안중에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한국 정서도 그렇지만 이탈리아 정서에서도 진짜 피가 아닌데 '넌 우리 가족이야'라는 말이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웃기게도 둘 다 여자는 성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남이지.


이런 엉망인 상황에 내 결혼식날까지도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못 알아듣는 말 알아들은 척 하하 호호 웃고 싶지 않아서 그냥 혼인 신고서만 하기로 통보했다. 심지어 같이 밥도 안 먹고 선물도 안 받기로 했다.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뒤로, 우리는 같이 해냈다는 성취감에 춤을 추는 날도 많았지만, 반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 우는 날도 종종 생겼다.


우리 결혼이었지만, 우리가 축하받고 싶은 사람만 초대할 수도 없고,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 할 수도 없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도 없고,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서도 할 수가 없다.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자꾸 안 되는 일만 더 추가되니까 힘이 추욱 빠진다.


같은 인종이고 같은 나라였으면 모든 게 훨씬 빠르고 쉬웠을 텐데, 같이 단 한 발자국 내딛기가 아주 무서운 살얼음판이다. 복불복처럼 잘 가다가도 유리가 중간중간 꼭 깨지는 바람에 서로를 부둥켜 앉고 겨우 올라와 다시 이어가는 레이스.


그런 시련들로 인해, 우리는 서로를 더욱더 애틋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게, 로미오와 줄리엣을 찍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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