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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시카 Sep 21. 2024

이탈리아 공무원 궁뎅이 차기

이탈리아에서 국제 결혼 하기 EP. 4

매일 밤마다 시끄러운 티브이 소리에 선잠을 청하시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불면증이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저 앞에 하하 호호 떠들어 대는 소리보다 지금 내 머릿속이 더 시끄러워.


그렇다. 나는 요즘 정신적으로 너무 지쳤다.


쓸데없는 곳에 헛 돈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한 약혼자가 나와 상의도 없이 다른 시청 직원에게 내가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안다고 또 주장하는 바람에, 졸지에 세상 불친절한 그 시청 직원과 이탈리아어 상급 말하기 시험까지 하게 돼버렸다. (상급이라고 치는 이유는 각종 법용 어를 들먹이며 네이티브처럼 말해야 되기 때문이다.)


약속한 일주일이 넘어서 전화하던 날이었다. 비가 너무 쏟아져서 도저히 시청에 갈 수 없던 날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했고, 평소와 다르게 남성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아마도 메니져급인 것 같았다. 10초도 안 걸려서 쭉 훑어보더니, 문서에 이상 없으니 결혼 공고 날짜를 잡으러 다음 날 오라고 얘기해 줬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시청 직원들이 내 문서를 잃어버린 건 아니고, 그냥 일을 안 해서 문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진행조차 안되어있던 상황이었다. 참나, 일을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였다.


다음 날이 되었고, 다시 비가 왔지만 출발하려는 찰나, 그 남성 직원이 우리에게 먼저 전화해서 어차피 우리 담당 시청 직원은 오늘 오지 않았으니, 금요일에 예약을 잡았으니 때 맞춰 오라는 얘기를 해줬다.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잠에 쉬이 들 수가 없었고, 대신에 새벽 내내 밀린 일들을 해냈다.


그렇게 밤을 꼴딱 새 버리고, 우리는 다시 시청이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서둘러 갔다.


나는 이미 제정신으로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 처음에만 내가 말을 트고 그다음에는 그냥 약혼자가 원래 하던 데로 직원들과 얘기를 하기로 우리끼리 약속했다. 저 못난 직원들 면상 보기도 짜증 나서 선글라스 쓴 상태로 "우리 예약 있어서 왔는데, "라고 운을 떼니 내 입에서 이탈리아어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 싹수없던 여자 직원은 사뭇 놀란 얼굴로 "너네 결혼 문서 맞지?"라며 다시 확인을 했다. 저번처럼 무턱대고 소리 안 지르는 것 보니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었나 보다.


그다음부터 내 약혼자가 바통터치를 하며 "그렇다"라고 대답하니, 마치 자기가 잘못한 건 단 하나도 없는 것 마냥 자기보다 15살은 더 나이 많아 보이는 아랫 직원을 부르며 '얘네 문서 제대로 잘 챙겼냐'라고 다그치더라. 그 나이 많은 할머니 직원은 정신없이 우리 문서를 찾아보며 "그래서 결혼 공고를 언제 하고 싶은데?"라고 대신 물어본다.


당연히 우리는 6개월 기한이 있는 nulla osta를 맞추기 위해 최대한 빠른 날짜를 원한다고 전했다. 그랬더니 또다시 짜증 나는 얼굴로 "너네 오늘 공표하면 제일 빠른 게 10월 중순이야"라며 마치 우리가 이 사단을 만든 것처럼 말을 돌린다.


거기에 또 발끈한 우리 약혼자님께서는 너네 웹사이트는 그 딴 소리 안 적혀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느 나라 공무원이 그러듯 "그건 우리 알바 아니고"를 시전 해버린다. 


언성이 높아지는 와중에 나까지 말을 얹으면 더 큰일이 날 것 같아 잠자코 듣고 있다가 문뜩 이 따위로 일을 만든 저 직원들에게 너무 화가 나서 얼굴을 찌부리며 머리를 헝크리는 행동을 하니까, 그제야 우리 둘 상태를 확인하며 "나 지금 너네랑 싸우자는 얘기 아니야."라며 진정을 시킨다.


옆에 눈치 보던 할머니 직원은 같이 우리 탓하다가 말고, 갑자기 마치 자신들이 너그럽게 이해해 준다는 마냥 "그래서 가장 빠른 날인 다음 주 월요일에 사인을 하러 올래? 날짜와 시간은 이때야"라며 와다다 쏟아냈다.


여기서 더 싸워봤자 결국 우리만 손해이니 일단 알겠다고 수긍했다.


그러더니 우리가 여전히 그 시청에서 결혼할 줄 알고, 결혼 날짜를 공책에서 쭉 훑어보더니, "우리 그날 예약이 두 건이나 있네. 안돼. 날짜 바꿔."라고 시부렁거린다. (팩트 체크를 하자면 두 건이 아니라, 단 한 건이다. 한 커플이 결혼하니 당연히 두 명의 이름이 나오겠지. 다른 지역의 시청들은 하루에 최소 여섯 타임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직원들은 말 그대로 또 개소리를 시전 하는 중인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저 직원들이 저럴 것을 예상해서 미리 다른 장소를 알아봤다. "우리 여기서 안 한다."라고 하니까, 그 직원들은 '우리가 안되는데 다른 데는 되겠니...'라며 한심한 듯 쳐다보며 "너네 그쪽에는 연락은 해봤고?"라고 역으로 물어본다.


"당연하지. 걔네가 된데"라며 응수 치니까, 드디어 적막한 오피스에 은은히 나돌던 긴장감이 좀 풀어졌다. (그 직원들 입장에서는 아마도 우리가 더 이상 자기네 책임이 아니니까 그런 것 같다.)


공표에 사인하고 그 문서를 다른 시청에 보내 줄 때까지는 여전히 우리의 목숨 줄을 가지고 있는 직원들을 향해 비굴하게 "고맙다"라고 얘기하면서 나가는 와중에, 그 싹수없는 직원이 다급하게 다시 우리를 부른다.


나 정말 정직하게 털어놓는 얘기인데, 나는 모든 상황을 백 프로는 이해하지 못해도, 전체적인 흐름은 이해하고 있었다. 심지어 마지막에 또 우리를 부르는 것도 알았지만, 혹시 몰라 급하게 핸드폰에 녹음 한 장면을 확인하느라 나는 그녀를 무시하고 내 갈 길을 가고 있었고, 약혼자는 혼자 다시 시청으로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렇게 한참 뒤에 시청 문을 나와서 약혼자가 나에게 전한다.

"우리 월요일에 사인할 때도 번역가 데려오래..."


그러면 그렇지. 


나는 저 딴 사람과 말 섞기도 싫어서 응수를 안 했건만, 그동안 가만히 있던 게 오히려 지 머릿속에 박힌 신념에다가 쐐기를 박았나 보다. 그렇게 우리는 더 이상 반박할 힘도 잃어버린 상태로 집으로 겨우 왔다.




"이탈리아 세 달 살기" 또는 "이탈리아 워킹 홀리데이" 시즌과 다르게 요번 "이탈리아 정착하기" 시즌은 초반부터 굉장히 딥하고 화나는 일들만 잔뜩 적어서, 그런 글들을 어쩔 수 없이 읽고 계신 저의 구독자님들도 또한 저 못지않은 스트레스를 대신 느끼실 것 같아 심심한 사과를 올립니다.


중국에서도 잠깐 공부할 때도, 캐나다에 온 가족이 정착할 때도 느꼈지만, 어느 나라던 (심지어 한국이라 할지라도) 외국인이 이민자 신분이 되는 순간부터 외국 생활의 모든 아름답던 순간은 순식간에 잊힐 만큼 정부가 굉장히 비협조적입니다. 나라에 이익이 되는 관광객은 환영하지만, 나라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외노자는 정말 모두가 싫어하거든요. 심지어 요즘은 이민자로 골치를 썩고 있어서 더 난리이지요.


심지어 저는 유럽에서도 가장 힘들다는 이탈리아에 정착하려고 하는데, 그마저도 외국인이 즐비한 로마나 밀라노 같은 대도시가 아닌 남부도시 나폴리에서, 심지어 중심가도 아니고 한참 차를 타고 가야 나오는 시골에 캐나다 아시안 이민자 신분으로 살고 있는 상황이라, 이탈리아 대도시에서 일하거나 공부하고 있는 한인들과는 조금 다른 상황에 쳐해져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그나마 별문제 없이 잘 넘겼던 단계일지라도, 여기서는 그 한 고비 넘어가기가 굉장히 어렵네요. 마치 다크 소울 게임에서 치팅 노트도 없이 혼자 하드 모드를 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제가 이민 생활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이 또한 지나갈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겠네요.


그렇습니다. 저는 이탈리아 정착을 결정함으로써 제 삶에 꽤 큰 태풍이 올 것을 예상했었습니다. 


나 대신 매일 거친 태풍을 먼저 맞아 주고 있는 이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그리고 바닥에서 도돌이표를 찍고 있었던 나의 캐나다 2등 시민의 생활에서 탈피하기 위해,

저 정말 마음 단단히 먹고 왔습니다.


캐나다 정착할 때는 비교적 어렸을 때라, 불행한 기억을 애써 감추느라 속에만 꼭꼭 삼켰더니, 그게 탈이나 어른이 된 지금도 고요한 밤이 올 때면 여전히 저를 잠도 못 자게 괴롭히네요. 


캐나다에서 그나마 같이 생사를 함께 넘기던 내 핏줄도 없고, 이국에 마땅한 고향 친구도 없는 저로써는 사실 여기에 글을 쓰고 누군지도 모를 남들과 공유함으로써 제 마음을 치유하고 있습니다.


사실 화난 마음을 갈무리하기도 전에 쓰는 날 것의 글들이라 굉장히 창피합니다. 허공에 떠도는 메아리처럼 설사 아무도 안 읽는 글이 되어 버릴지라도, 어중이떠중이 멋져 보이는 단어로 이민자의 삶을 예쁘게 포장해 보기보다는, 좀 더 진심으로 담아 이맘쯤 나이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실대로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구독자에게 쓰는 글일 수도 있고, 훗날 보게 될 나에게 쓰는 글 일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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