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국제 결혼하기 EP. 5
오늘도 불평하러 왔냐고 물어본다면.... 다행히 오늘은 아니다. 이번에는 그나마 순탄하게 지나갔다. 아무래도 나랑 내 약혼자가 너무 어려 보이니, 우리가 요구하는 단 한 마디도 잘 먹히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급하게 약혼자 어머님에게 SOS를 쳤다. 동네에서 굉장히 발이 넓으신 분이고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내시는 굉장히 나이스 하신 분이라 혹시나 분위기가 또 싸해져도 옆에서 노련하게 잘 컨트롤해 주실 것 같았다.
저번에 통역사 데려오라고 결정이 나버려서,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프리랜서 웹사이트에서 급하게 한 분을 구했다. 다행히 한 시간에 250유로를 부르는 통번역 전문가에서부터 40유로까지 취미로 통역하시는 분까지 다양해서 그중에 가장 낮은 값을 부른 분을 모셨다.
어쨌든, 월요일이 되자마자 시간보다 30분은 더 빠르게 도착했다. 통역사는 약속 시간보다 15분 먼저 도착해야 된다고 그래서 우리보다도 더 일찍 오신 것 같았다. 우리가 막 도착해 찾고 있었을 때, 그분은 작은 여성용 백팩을 메고 시간 때우는 겸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시청 앞마당을 뱅글뱅글 돌고 계셨다.
우리 엄마보다 살짝 더 나이가 많으셔 보였다. 내 키가 우리 약혼자 가족 중 가장 작은 편인데, 내가 내려다볼 정도로 아담하셨다. 천만다행으로 굉장히 친절하신 분이었다. 저 깐깐한 시청 공무원만 상대하다가 웃음으로 맞이하는 이탈리안 여성을 보니, 내 눈이 개안하는 느낌이었다. 맞아, 남부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던 곳이었지? 잠깐 다시 상기시켜 주셨다.
넷이서 그렇게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마치 나와 약혼자는 마지막 결투 장소에 가는 것처럼 비장하게 시청의 작은 문을 비집고 들어갔다. 두 명에 통역사 한 명만 와도 된다고 확인 전화까지 받아줬는데, 우리가 또 그 공무원의 말을 안 듣고 엄마까지 모시고 다 같이 대동해서 그 좁은 공간에 4명이 죽치고 앉아있으니 또 놀란 얼굴을 한다.
선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약혼자가 다다다 공격을 시작했다. (사실, 말이 공격이지 그냥 평범하게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고 봐야 무방하다.) 역시나 우리의 예약 시간을 적어놓은 종이 따윈 없었고. 대충 이쯤이겠거니 생각하며 직원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옆에 있던 통역사에게 신분 확인을 한 뒤, 그분의 아이디카드를 들고 가 복사를 했고, 그다음에 우리의 문서를 꺼내며 Marca da bollo (이탈리아에서 문서에 대한 세금 납부를 증명하는 수입인지를 의미) 2개를 달라고 요구한다. 또 헛소리 시작했다.
발끈한 약혼자. 나를 가리키며, "쟤 주소지가 캐나다에 있는데 그 세금을 이탈리아 어디다가 내려고 두 개나 내라고 달라고 하느냐, 또 말이 다르지 않냐?"
그러니 또 그 직원은 '그게 여기 룰이다'를 시전. 다행히 이번에는 약혼자 어머니가 웃으면서 "(내 아들이 얘기한 게) 말이 더 된다. 왜 우리가 여기에 살지 않은 외국인의 주소지 세금을 내야 되는가?"라고 반박하니, 결국에는 꼬리 내리고 옆에 있던 나이 많은 공무원에게 물어본다. (젊은 직원이 '이거 가져와, 저거 가져와' 시켜도 항상 군말 없이 갖다 주길래 그냥 밑의 직원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까 더 오래 일했던 사람이었다..!)
그 나이 먹은 공무원이 잠깐 생각하더니 이번에는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우리말이 맞다고 하니까 젊은 직원 혼자 더 이상 우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에는 알았다면서 다시 문서 작업을 마치러 돌아 앉았다. 또다시 분위기가 냉랭해 지자, 나이 많던 공무원은 눈치 보더니 얘기하고 있던 자기 친구를 밖으로 데려가는 바람에 사무실은 더 적막해져 버렸다.
그러자 바로 약혼자 어머니와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통역사까지 합세해서 웃으면서 '여기가 좀 덥네..' 하시며 좀 더 신나는 일상 주제로 바꿔본다. 그러자 기분이 좋아진 젊은 공무원이 좁은 통로에 4명이 바글바글 서있으니 더운 거라며, 다른 문으로 와서 옆에서 기다리라고 허락을 해줬다. 다시 분위기가 좀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문서 마무리를 짓고, 다 같이 사무실 밖 복도를 지나 하얀색 보자기를 깔아 놓은 넓은 책상에 앉았다. 정확히는 부부가 될 우리가 앉았고, 젊은 공무원이 주례사처럼 우리 앞에서 문서를 들고 있었으며, 통역사는 처음에 통역 때문에 내 뒤에 서있다가, 젊은 공무원의 부름으로 옆에 섰다. 그리고 약혼자 어머니는 나의 왼쪽 옆에 계셨다.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고, 드디어 한 달 만에 정식으로 우리가 곧 결혼한다는 문서(VERBALE DI PUBBLICAZIONI DI MATRIMONIO)를 공표를 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내가 미리 인쇄해서 달달 공부했던 문서 형식과 백 프로 같지는 않았다. 손으로 우리 정보를 쓸 줄 알았더니, 아까 젊은 공무원이 이미 컴퓨터로 문서 작업을 완료해 버렸다. 그래도 내용은 똑같아서 내가 공부한 이탈리아어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통역사 분이 생각보다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어쩌다 틀리게 번역한 것도 있었고, 이탈리안 억양도 너무 세서 그분의 영어를 사실 거의 못 알아들었다. 차라리 젊은 직원의 이탈리아어를 듣는 게 더 듣기 편했지만 혹여나 이것에 대해 걸고넘어질까 봐 초반에는 잘 알아듣는 척을 했다.
예상외로 이 통역하는 사람이 전문가인지, 진짜로 잘하는지 같은 실력 같은 건 전혀 신경도 쓰지 않더라. 영어를 아예 못 알아 들어도 매끄럽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을 텐데, 그들은 그저 법에 맞춰서 모양새만 내면 되었던 것 같다. 분명 나중에 혹시라도 자신한테 책임 소재 안 받으려고 그런 거겠지. 내가 법적인 문제 들먹이면 이제 그 통역사 책임이 될 테니.
어쨌든, 중반에서부터는 내 정보를 정확하게 확인하려 눈을 한껏 찌푸리고 듣고 있었다. 내 이름을 어떻게 말하는지 몰라서 내 얼굴 한 번 보더니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 계시던 어머님에게 여쭤보더라. 나랑은 더 이상 말 하기도 싫은 건가?
애써 무시하고 내 생일 읽더니 드디어 내 나이를 알아챈 것 같다. 그전에는 마치 내 약혼자가 뭣도 모르는 십 대 아시안을 납치하는 것처럼 굴더니, 행동거지가 좀 잠잠해졌다.
그러고 나서 바로 나의 고향을 말하는데 나는 "Sud Corea"를 써서 제출했지만, 그 직원은 "Repubblica di Corea"라고 바꾸는 바람에 한 번 더 체크하려고 멈춰 세웠다. 그 전날에 하필 온라인에서 자기가 미국 가는데 직원이 Republic of Korea인지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인지 정확히 안 했다가 북한 사람이 되는 바람에 미국 갈 때마다 불려 갔다는 무시무시한 얘기가 떠올라서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야 됐다. 여기서 그냥 넘어갔다가 나중에 틀린 걸 발견이라도 하면 전부 내 책임이 돼버리니까.
내가 급하게 체크하는 동안 직원은 볼멘소리로 "내가 쓴 게 아니고, 시스템에서 보여준 데로 고른 거야"라고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한다. 당장은 저 직원의 헛소리에 반응할 시간이 없었다. 몇 시간 같았던 몇 분이 지나고, 다행히 제대로 된 나라 이름을 적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문서에 써져 있는 글을 번역가가 대강 번역하고 나서, 젊은 직원 혼자 빠르게 손뼉 치며 "축하해. 이제 너네 결혼할 수 있게 되었네."라고 인사말을 건넨다.
나는 약혼자를 바라보며 짧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약혼자는 어쩐지 여전히 심각한 얼굴이다.
어머니께서 우리 새 아가가 얼마나 나이스한 애인지 아냐며 우스갯소리를 하셨지만 별 반응 없었다. 앞의 말은 대화의 물꼬를 틔기 위함이셨는지, 바로 "그래서 그런데... 내가 지금 소렌토에 가져갈 문서에 수입인지를 후딱 사가져 와서 주면 안 될까?" 물어보신다. 그러자 그 직원은 당사자인 우리는 쳐다보지도 않고, 어머님을 향해서 "2주 뒤에 그 문서랑 수입인지 들고 오면 돼."라고 말하더라. 우리랑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압박이겠지. 미안한데, 우리도 너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그러자 옆에서 통역사가 "너 진짜 대단하다. 이렇게 빠른 절차로 결혼 공시 기록서 절차를 끝내는 시청은 처음이야"라고 치켜세우니, 젊은 직원의 어깨가 올라가며 "맞아. 내가 엄청 빨리 했지. 다른 커플들에게 꼭 우리 시청 제일 빠르게 한다고 광고해 주길 바라."라고 우쭐댄다. 내 약혼자가 들들 안 볶았으면 하지도 않았을 거면서... 그리고 한국은 이게 하루면 끝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한 달이나 걸려놓고 저 폼을 잡고 있으니 헛웃음이 나온다. 저 직원은 평생 이탈리아에서만 살 테니 앞으로도 쭉 다른 나라가 얼마나 발전 한지도 모른 채 자화자찬하면서 살겠지.
그러면서 내 약혼자를 보며, "진정 좀 하고, 2주 뒤에 너희 엄마가 가져온 문서만 내시면 아무 문제 없이 너희는 소렌토에서 결혼할 수 있을 거야." 그러며 소렌토 어디서 결혼하는지 대충 물어보며, 여전히 당사자인 우리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어머님과 통역사와 얘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의무적으로 감사하다고 얘기한 뒤 시청을 떠났고, 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놨던 50유로를 꺼내며 여기 돈 받으시라고 전달했다. 그러자 다음 결혼식 때까지 하고 총비용을 달라고 하셨고. 번역은 엉망으로 하셨지만, 가격도 다른 곳에 비하면 훨씬 사고, 어차피 우리 가족도 나도 영어 듣고 있을 겨를은 없을 테니, 소렌토 결혼식에 갔다 오셨다는 얘기를 하셔서 이때다 싶어 이것저것 물어봤다. 꽃은 아마 수도원이 해준 것 같던데, 아마 우리가 준비해야 될 것 많다고, 자기 파트너가 웨딩 플랜도 하니까 다른 정보 알아봐 주겠다고 해주셨으나, 며칠이 지난 현재 시각으로 단 한 문자도 받은 게 없다. 역시 이탈리아...! 모든 게 제깍제깍 될 리가 없지!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알아볼 수밖에 없었고, 생각보다 수도원 회랑(Chiostro)에 돈 내는 거에 비해해 주는 건 거의 없었다. 카펫 색상 정하고, 의자 68석이 만석. 그리고 civile officer이 와주는 게 끝인 것 같다. 그나마 저도 결혼식이 15분이면 끝나는 데다가 총 45분만 그 장소에 있을 수 있었다. 꽃도 더 이상 안 해주고. 의자 데코도 없다. 청소 문제 때문에 쌀을 뿌릴 수도 없고 개인이 준비한 꽃만 조금 뿌려도 된다고 허락받았다. 당연히 옆에 연주자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원래는 우리가 살 던 시청에서 대충 식 올릴 생각이었는데, 우리 부모님이 생각을 바꾸셔서 결혼식 하루라도 참가하시겠다고 의사를 내비치셨다. 동생한테 바로 덤빌 생각까지는 못하고, 엄마한테 자꾸 투정 부리며 동생네 커플 중 한 명이라도 안 오면 우리도 공평하게 걔네 내년 결혼식에 안 가겠다며 꼬장을 부린 덕에 우리 가족 3명이나 올 수 있게 되었다.
양쪽 가족 모시는 김에, 약혼자가 프러포즈했던 소렌토 수도원 회랑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마음먹었고, 최대한 빨리하기만 하면 되는 우리는 우리 가족 가게 휴가 일정에 맞춰 날짜를 잡게 되어 월요일 아침으로 결정이 나버렸다. 그것도 몇 주 뒤에.
미리 사뒀던 웨딩드레스는 너무 철이 지나버려서 다시 사야 되고, 부케에, 노래에, 카메라맨이랑 비디오 찍어주는 사람, 그리고 다 같이 먹을 레스토랑 알아보고, 반지 후딱 맞추고, 기왕 결혼식 하는 김에 약혼자 아는 분들 초대를 할까 생각을 깊이 했는데, 어머님 왈, "제시카가 하라는 대로 해!"라고 하셨으나, 나는 3년의 내공으로 "너무 갑작스럽게 평일에 결혼하게 되어서 올 수 있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지 않다. 차라리 가족끼리만 간단하게 올리자."라는 뜻을 잘 알아 들어서 약혼자를 겨우 말릴 수 있었다.
온라인으로 급하게 만들어 메시지 보내고, 종이 주문도 해서 도착하는 즉시 드릴 요량이다. 하객들 선물도 사야 되고, 신발도 사야 되고,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보는 우리 집도 좀 할 수 있는 만큼 때 빼고 광내야 되고, 이부자리도 사야 되어서 하루하루를 정말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이제 결혼식만 남았다. 그 이후에 체류증 신청은 별도지만.
그런 와중에 가게에서 일하는 친구가 너무 울상이길래 내가 지금 일하는 곳에 없는 자리 만들어서 마련했더니, 능력도 없어, 경력도 없어, 스킬도 없는 아마추어가 돈만 너무 밝혀서 안 좋게 끝나버렸다. 기분이 매우 잡쳤지만 우리는 끝까지 예의를 차려가며 잠시라도 같이 일해서 고마웠다, 그렇지만 왜 안되는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답장을 했으나, 그에 대한 아무 대답도 없이 바로 우리 회사를 차단 박아 버리더라.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잠깐 넋이 나가버리느라 반나절을 허비했다.
빌런 하나가 가니까 다른 빌런이 와버렸다. 나는 너희를 환영하지 않아. 제발 그만 좀 와라.
차라리 잘 됐다. 계속 당부한 말도 못 알아듣고 헛소리 해댈 거였으면 (사실 일 시작하고 잠적해 버려서 연락한 것이지만) 중간에 파투 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이만하면 다행이다 싶다. 평생 그렇게 살길 간절히 바란다. 앞으로 이런 사단 안 나게 피하는 방법을 배웠고, 앞으로도 고객으로부터 거절은 신명 나게 받아야 되는 입장이다 보니까. 나는 더 단단해져야 한다. 그동안 미친 듯이 일해서 이 회사 키워야지!
이제 내 나이가 위에서는 여전히 누르고 밑에서는 누군가 가르치고 이끌어줘야 되는 중간 연차 직급이다 보니, 왜 내가 20대 때 그렇게 방황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런 미러링 학습을 통해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나쁘게 말하면 사회에 물들어 가는 중이고, 좋게 말하면 철이 들고 있다는 얘기겠지.
일하면서도 느꼈지만, 경력이 없고 능력이 없는데 뽑아주는 곳은 보통 맨땅에 새로 시작하는 회사이거나 이미 많은 사람이 도망친 블랙 기업밖에 없다. 그나마 뽑아주는 이유도 젊기 때문이다. 쓰기 편하니까.
블랙 기업이라면 본인 몸에 해를 끼치지 않고, 회사 내에 각종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6개월에서 1년은 어떻게든 버텨야 다음에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 여러 번의 블랙기업으로 책상도 뺏겨 복도에서 쫓겨나도 이 악물고 3개월을 버텼다. 소리를 질러대며 따돌림에 온갖 인종 차별을 해도 또 1년을 버텼다. 손가락이 부러질 뻔했는데도 별 대처도 없고 지속된 위험에 노출되게 만든 회사는 어쩔 수 없이 빠르게 도망쳤을 때 빼고는 웬만하면 버티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다신 저런 곳에 안 가도 될 테니까.
그렇게 사회를 배우면서 두 번이나 새로 시작해도 눈에 띄게 성장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며 능력을 펼칠 수 있었는데, 이런 곳은 대부분 이미 검증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친구를 구하느라 입구컷이 굉장히 힘들다. 게다가 매일이 시시각각 변하는지라, 내가 뭘 전공했든지 상관없이 문어발처럼 해보지 않았던 일을 선임도 없이 혼자 빠른 시간 내에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쪽이 훨씬 재밌다. 대기업에서 이미 짜인 쓸모없는 일을 죽치고 하고 있었을 땐 내 영혼이 지워지는 것 같았거든.
미래가 깜깜해서 울상인 젊은 친구들이 글을 혹여나 본다면 꼭 명심하길 바란다. 당신이 얼마나 끝내주게 학창 시절을 보냈건 간에, 사회는 지금 당장 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선임이 주는 작은 일을 최대한 빠르고 문제없이 해내기만 바란다. 작은 일부터 어떻게 성과를 보여주고 그다음에 제발 돈을 요구하던 베네핏을 요구했으면 좋겠다. 본인은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아득바득이면서, 회사는 무지성 요구를 다 들어줘야 된다니 이거야 말로 어불성설 아니겠나?
그렇게 실력을 키우고 짬이 차면 할 수 있는 선에서 좋은 회사 환경을 만들면 된다. 본인보다는 후배들이 더 혜택 받겠지만, 그렇게 좋은 리더로 거듭나는 거다. 그렇게 좋은 사회로 변하는 것일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