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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Jan 07. 2024

읽는 이유

yes24가 생각해 보게 한 독서의 이유

결혼식장, 한 아버지가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한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신부가 어른이 아닌, 꼬마아이의 모습이다. 아버지가 신랑에게 신부의 손을 넘겨주는 순간, 사랑이 그윽하게 담긴 눈으로 그의 딸을 바라본다. 어른 신부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한 문장의 자막이 뜬다.


‘아이는 모두 어른이 된다. 한 아이만 빼고.’


한 서재에서 여성이 숨을 헐떡이며 무언가를 찾는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하다. 공포감에 가득 사로잡힌 얼굴이다. 간신히 책꽂이에서 졸업 앨범을 찾아 페이지를 넘긴다. 어떤 얼굴에 시선이 멈춘다. 그 순간 사진 속의 바로 그 아이가 기척도 없이 다가와 그녀의 뒤에 선다.


‘아이는 모두 어른이 된다. 한 아이만 빼고.’


연구기지의 거대한 캡슐 장치, 한 아이가 눈을 감고 그 안에 누워있다. 그녀를 향해 한 여성이 다급하게 외친다. 앨리스, 꼭 시간 맞춰 구하러 올게!

‘냉동 수면에 돌입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장치의 문이 닫히고, 60년이 지난다. 냉동수면 상태가 끝나 이전 모습 그대로 눈을 뜬 앨리스와 60년이 지나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한 남성이 재회한다.


‘아이는 모두 어른이 된다. 한 아이만 빼고.’


‘하나의 문장에도 저마다의 세상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읽는 당신에게 상상의 우주를’


책을 읽는 사람이 흔하지 않은 지금 이 시대.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인용한 yes24의 광고 역시, 브랜드의 특장점을 홍보하기보다는 독서 경험 자체의 매력을 강조하며 파이를 확장하고자 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독서 경험에 더 손쉽게 다가가게 하려는 별마당도서관이나 교보문고의 전략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아이는 모두 어른이 된다. 한 아이만 빼고’라는 피터팬의 한 문장을 보고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세상을 다르게 그려낸다. 누군가는 언제까지나 딸을 아이로만 보는 부모의 아련한 심정을, 또 다른 누군가는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소녀의 억울함을, 어떤 이는 보호받기 위해 냉동수면 상태에 들어가야만 했던 사람을 떠올린다. 그렇게 사람은 읽음으로써 상상의 우주를 유영할 수 있다.


책을 한 달에 5권, 많게는 10권까지 읽는 heavy reader로서, 광고의 메시지에 공감했다. 독서를 하다 보면, 나 자신에서 벗어나 환상적인 순간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잊고 있던 기억과 불현듯 재회할 때도, 정리되지 않아 엉켜 있는 생각을 다른 사람의 정제된 언어로 마주할 때도, 다른 작품과 겹쳐져 문장이 더욱 풍성하게 증폭될 때도. 때로는 마주한 적 없는 인물과 가보지 않은 곳의 풍경이 눈 앞에서 생생하게 살아나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삶을 살다 오게 된다. 언젠가부터 ‘과몰입’이라는 단어가 유행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책이라는 매체가 영상 매체보다 이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영상 매체는 감독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인물의 외모, 패션 스타일, 장소의 색감, 심지어 소리까지. 꽉 짜여진 화면 속에서 보는 사람이 몰래 상상할 수 있는 바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책은 조금 다르다. 눈 앞에서 보일 듯 보이지 않게, 드러내듯 숨기는 언어들의 나열로, 독자가 이를 다시 쌓아 올려 본인만의 이미지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독자의 상황, 또는 감정에 따라 와닿는 부분도, 이해하는 바도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사람만의 세상을 더 견고히 쌓아가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진짜 좋은 책은 과연 어떤 책일까. 나의 경우, 예전에는 무언가를 얻어가기 위한 목적성 독서를 했던 것 같다.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좋은 글은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거나, 사유의 지평을 한 뼘 더 확장해주거나, 감정을 건드리거나 해야 한다*는 믿음이 생겼기에. 그런데 최근, 독서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담은 문장을 접해 흥미로웠다.

‘어떤 문장은 읽기를 통해 불현듯 무한대로 확장되었고, 마치 거대한 날개에 실린 듯, 나는 읽는다는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심지어 망각하는 읽기를 계속한다. (…) 한 권의 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는 순간 나는 그 책에 담긴 모든 것을 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다시 읽기 위하여’*

인용한 문장은 배수아 작가의 에세이집 <작별들, 순간들>에 있는 문장이다. ‘망각하는 읽기’라는 표현이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책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가는 게 아니라, 읽는 흐름 자체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는 마치 꿈을 꾸고 일어난 것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상태. 이는 고갱 같은 예술가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 자아를 잃은 채로 그림을 그린 뒤, 작업을 마치고 나서는 결과물을 바로 치워버리는 그런 강렬한 몰입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강렬함을 마주하게 한 책들은 평생의 기억으로 남는다. 내용과 줄거리가 구구절절 기억나기보다는, 그 강렬한 순간을 남겼던 독서 경험 자체를 떠오르게 한다. 그 책 참 대단했지 하고. 그런 책을 만나면 읽기 전의 상태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다. 그런 독서는 눈빛부터 생각, 영혼까지, 내 모든 걸 바꿔 놓으니까. 한편, 그런 문장들은 항상 기억 속 최전방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삶의 어떤 순간에 데자뷰처럼 갑자기 홀연히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다. 그래서 비록 망각했을 지라도, 내 세상 어느 한 구석에 그 문장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로 인해 나는 그리웠던 내 안의 무언가와 재회할 수 있고, 생의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으며, 수 천개의 다른 삶을 엿볼 수도 있다. 이 세상 모든 순간을 나로만 살아가는 것은 고단하고 재미도 없기에, 가끔 내 세상에 탑처럼 쌓여 있는 책의 문장과 이미지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읽는다. 그 강렬한 문장을 만나는 순간들을 사랑하고 때때로 꺼내 먹기 위해.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 배수아의 <작별들, 순간들>에서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인용한 광고 : yes24 <아이는 모두 어른이 된다. 한 아이만 빼고>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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