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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Apr 10. 2024

최선의 선택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오레오의 수퍼볼 광고를 보고 한 생각들

긴박한 배경음악과 함께 소행성이 떨어지며 지구에 충돌하려 하고 있다. 원시인들과 함께 공룡들이 지켜보고 있다. 공룡 멸종의 순간을 그려낸 듯 하다. 이건 대체 뭔가 하는 표정과 함께 여성이 한숨을 내쉬자, 옆에 있던 남성이 말한다.


Let’s twist on it! Cream on the left, we get out of here.

오레오를 트위스트해서 두 개로 떼어봤을 때 왼쪽이 크림 있는 쪽이면 여기를 빠져나가자!


떼어보니 크림 있는 쪽이 왼쪽이다. 곧 그들은 앞장서 원시인 무리를 데리고 그 곳을 빠져나간다. 공룡들은 벙찐 얼굴로 이를 지켜보고 있다.


곧 화면이 전환되어 투구와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나타난다. 우물우물하며 오레오를 먹고 있는 그들의 앞으로 트로이의 목마가 나타난다. 뭐지 이거..? 들여보내? 말아? 크림이 오른쪽에 있으면 들여보내는 거다? 크림 있는 쪽이 오른쪽이다. 웰컴 투 트로이! 하고 외치며 그들의 성을 함락시킬 적군에게 성문을 열어준다.


마찬가지로 남성 과학자가 로봇을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끔 프로그래밍하는 순간에도, 엔터테인먼트사가 보이 밴드를 세상에 런칭하는 시점에도 오레오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


2024년, 미국 프로미식축구의 챔피언 결정전인 ‘수퍼볼’의 중간 광고 중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본 오레오의 광고이다. 중대한 의사결정이 있었던 역사의 순간들마다 오레오가 함께 했다니. 얼마나 위트 있는 이야기인가! 오랜 헤리티지가 있는 리더 브랜드만이 쓸 수 있는 화법인 것 같다. 또, 브랜드를 실질적으로 갖고 놀 수 있는 동작을 개발함으로써, 수많은 결정의 순간들에 존재하는 무거움을 장난스럽게 해소해주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으면 오레오에 선택을 위임했을까…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확실하게 알고 싶을 때 점을 쳐왔다. 꽃잎을 하나하나 꺾어 그가 과연 나를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 물어보기도 했고, 코카콜라 맛있다 하고 노래 부르며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보기도 했으며, 사다리 타기에 결정을 위임해보기도 했다. 이는 삶의 많은 순간에, 앞으로의 미래를 좌우할 지도 모르는 선택을 내리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걸 증언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순간, 이전에 존재했던 무수했던 가능성은 흩어져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정적이고 확실한 것에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고, 얻을 것, 잃을 것을 시뮬레이션해 저울질해보는 등 최대한 근거 자료를 수집한 뒤 결정한다.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이 판단들은 여전히 정확할 수 없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도 없다.


요즘엔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진짜 성숙한 사람은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온전히 믿고, 뒤돌아 후회하지 않는 소신 있는 사람이라고. 이는 그가 자신을 잘 알고, 본인의 기준이 명확히 서 있기 때문에 어떤 결과라도 담담하게 감당할 수 있는 걸 의미한다. 내 경우엔 불확실성을 마주해 불안할 때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다 보면 내면이 더 시끄러워지는 순간이 많았다. 다른 사람의 결론은 나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도 없었고, ‘세상의 평균’이라는 지표 역시 무의미했다. 이를 깨달은 이후부터 무언가 결정을 내릴 때는 온전히 내가 주도권을 갖고 한다는 내 나름대로의 규칙을 세웠다. 세상이 아니라 내 내면에서 나온 목소리를 듣는 것. 이를 통해 내린 결정이라면 그 책임 역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나한테 중요한 것이 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2023년에 LG그룹에서 <사내 맞선>이라는 사내 방송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다. 그룹의 계열사들끼리 소개팅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달달한 영상으로 편집되어 그룹 포털에 올라왔다. 이 중 한 에피소드를 특히 인상 깊게 봤는데, ‘사랑, 우정, 돈, 명예, 자유’ 이 5가지를 본인에게 중요한 순서대로 나열해보라는 질문이 주어졌다. 이는 남녀의 가치관을 비교해 봄으로써 교제했을 때 얼마나 잘 만날 수 있을지를 점치는 질문이었다. 이는 비단 사랑 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 있어서 유효한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5개 가치들의 절대적인 우열은 따질 수 없지만, 개개인의 나다움을 실현하는 기준으로 갖고 있기에는 꽤 의미 있어 보였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 줄 선택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바보 같은 선택이 아니라, 불행을 마주할 용기 있는 결심을 의미하기도 한다. 테드 창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는 외계인의 언어와 사고 방식을 학습하며 과거, 현재, 미래를 일직선으로 인식하게 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딸이 젊은 나이에 죽고 남편과도 이혼하게 되는 미래를 알게 되지만, 그 미래로 기꺼이 뛰어든다. 그녀가 불행한 미래를 걸어가게 된 건 딸이 그 불행을 뛰어넘을 만큼의 눈부신 행복을 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랑은 미래를 예측하길 원하는 본원적인 인간의 욕망마저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때로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기를 선택하며 불행해질 미래까지 껴안는 것. 이게 바로 인간의 아름다움이자, 슬픔이자, 권리이자, 용기였던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 ‘최선의 선택’이란 별로 의미 있는 개념이 아니다. ‘최선’의 기준은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며, 효율성보다는 인간적 교류나 공공선을 선택하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또, 계속해서 최선의 것을 찾다가 현재 누릴 수 있는 기회들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택에 있어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좋을까? 2023년, 챗GPT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꼬리를 무는 질문을 통해 자신에게 최적화된 옵션을 추천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예측 가능한 패턴들이 삶을 채울 거라 상상해보니 호감보다는 반감이 먼저 들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생에 있어 우연과 방황이 가져오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꽤 크기 때문이었다. 이게 바로 때때로 좋은 선택을 하지 못했을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생각이 아닐까 한다. 사람은 불완전하기에 아름답다. 여러 가지 길을 기웃거려보며 마음이 향하는 대로 선택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때로는 실패하며 배우고 삶을 재정비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향한 길이 차츰차츰 좁아지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인용한 광고 : OREO, Imagine a world where the twist of an OREO could change everything. Literally everything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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