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Apr 20. 2023

안부확인용 개구멍 만들기 프로젝트(2)

은둔형 외톨이 할아버지 안부확인용 간이대문 만들던 스토리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르신?"

 "아니, 몰라? 이 영감, 화나면 뒤에서 내려쳐. 이 공사한다고 또 해코지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 예전에 이 영감이 우리 아들 뒤통수를 돌로 내려찍은 적도 있다니까?"


  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우리가 아는 할아버지는 잘 웃고 서글서글한 분인데. 그렇다고 이웃집 어르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진심으로 우리를 걱정하시며 여러 차례 경고를 하고는 떠나셨다. 그 자리에서 전임자에게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순하지만 가끔 공격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고 했다. 큰일이다. 은둔형 외톨이에게 소중한 보금자리를 손댄 걸 알면 난리가 날테다. 아니,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뒤에서 내려친다니? 할아버지의 애장품, 지팡이가 떠올랐다. 어우, 그건 너무 무섭잖아.


  원래대로라면 다른 일정이 있어서 공사 시작하는 모습만 보고 자리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어르신과 일면식도 없는 사장님이 공사하다가 다치면 어떻게 하는가? 뒤통수를 맞아도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인 게 낫겠다 싶어 나는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간이대문 공사를 하는 내내 자리를 지켰다. 뒤를 돌아 어르신이 집으로 돌아오는지 망을 보면서 말이다.


  '왜 이렇게 안 끝나?' 너무 초조했다. 오후 1시에 시작한 공사는 어느덧 오후 3시가 다 되어가고 있음에도 끝나지 않고 있었다. 어르신이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다 되어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다 끝났습니다."

 "진짜요? 어? 근데 사장님 이게 끝난 거예요? 시멘트는요?"

 "이 우레탄폼을 뿌리고 하루정도 굳혀야 해요. 내일 와서 시멘트 바르면 됩니다."

 "그럼 우리 얼른 정리하고 가요. 어르신 오실 시간 다 되었어요!"


  철옹성 같던 어르신의 집 담벼락에 작은 대문이 하나 생겼다. 히히. 이제 여기로 안부확인하고 집안청소도 좀 도와드리면 되겠다. 뭔가 어르신과 한걸음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어르신이 귀가하고 몇 시간 뒤, 간이대문과 마주한 어르신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해서 집을 찾았는데 아뿔싸. 깨끗했던 새 간이대문에 새까만 무언가가 묻어있고 움푹 파여 있었다. 안 봐도 뻔하다. 지팡이로 내려치신 거다. 얼마나 세게 내리치셨는지 우레탄폼과 대문이 어긋나 있었다. 히잉. 사진을 찍어서 업체 사장님께 보내드리니 괜찮다고 했다. 내일 시멘트 바르면서 손보면 된다고.


  다음 날, 어르신이 외출하신 틈을 타 시멘트를 발랐다. 이젠 완전히 고정이 되어야 하는데 어제처럼 지팡이로 또 내려치신다면 이번에는 어찌해야 하나 하루종일 걱정이 되었다. 퇴근하기 전, 어르신 댁에 들러 한 번 더 확인에 나섰다. 얏호! 어제 한 번 낯선 존재를 만나셨던 터라 오늘은 지팡이로 내려치지 않으셨다. 이렇게 우리의 일명 개구멍 만들기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제 이 간이대문을 통해 다른 복지서비스를 연계하기도 쉬워졌고 안부확인도 쉬워졌다. 무언가를 연계하려 할 때마다 '이 할아버지는 문을 잘 안 열어줘서 안 돼요'라고 거절당하길 몇 번이던가.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 무엇보다 철통같이 지키던 어르신의 거주환경을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개구멍을 만든 뒤, 처음으로 마음 놓고 어르신의 실내 주거환경을 확인할 수 있었고 우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멀리서 보기엔 작동이 잘 되는 것 같던 냉장고는 코드가 뽑혀있었고, 그 주변으로 구더기가 가득했다. 썩다 못해 어떤 음식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새카매진 음식과 얼마 전에 사 온 듯한 떡이 한 군데 어우러져 있는 아이러니한 모습. 아이고 머리야. 산 넘어 산이다.



작가의 이전글 안부확인용 개구멍 만들기 프로젝트(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