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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pr 19. 2023

안부확인용 개구멍 만들기 프로젝트(1)

은둔형 외톨이 할아버지 안부확인용 간이대문 만들던 스토리

  홀로 거주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팔십이 훌쩍 넘은 나이로 인해 귀도 잘 안 들리는 은둔형 외톨이. 


  우리가 일명 '개구멍'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 건, 기본적인 안부확인이 힘들어서였다. 은둔형인 어르신은 집 밖을 나와서 은행에 들러 현금을 찾고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서 병원 진료를 받고 다시 걸어서 돌아오는 반복적인 루트가 있었는데 그건 병원을 가는 날과 장날뿐이었다. 장날은 정해져 있지만 병원을 가는 날이라는 건 주관적이어서 일정하지 않았다.


  내가 그 지역으로 발령받은 지 두 달쯤 되었을까? 어르신이 며칠 내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직원들뿐만 아니라 은행 직원들도 본 사람이 없었다. 이유 없이 외출하지 않는 날이 생각보다 길어지는 듯했다. 문득 안부가 걱정되어 촘촘하고 높은 대문 틈 사이로 안을 쳐다보니 방 안에 꼼짝도 않고 누워있는 사람이 보였다. 어르신이었다.


  늘 하던 대로 대문을 두드리며 동네가 떠나가라 이름을 불러도 꼼짝하지 않았다. 잠을 자는 거라면 뒤척이기라도 할 텐데 그런 것도 없다. 문득 불안해진 나는 면사무소로 달려가 당장 창고에서 사다리를 꺼내 관용차 뒷칸에 싣고 어르신 댁으로 달려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장마철이었다. 사다리는 담장보다 짧았다. 허름한 집에 비해 높은 담장과 높은 대문을 원망하며 담장으로 몸을 날려 기어올랐다. 담장에 올라서기 성공! 이번엔 담장에서 마당으로 뛰어내릴 차례. 높았다. '에잇 모르겠다. 그래봐야 발목이 나가겠지.'


  담을 넘어 안에 들어간 나는 어르신의 이름을 크게 불러대며 방으로 향했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두려움에 조심스럽게 외부창을 열어젖혀도 부동.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자다 깬 어르신이 우리를 보고 놀랐다. 깊이 잠이 드셨던 모양이었다. 놀란 어르신을 달래며 집에 들어온 목적을 이야기하고 우리도 심장 떨어질 뻔했다며 넉살 좋게 웃었다.


  그리고 사무실로 복귀한 나는 비에 쫄딱 젖은 생쥐 꼴이었다. 한여름이라 에어컨까지 틀어놓은 탓에 덜덜 떨었다. 그래도 나의 추위, 젖은 옷, 이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고 그저 어르신이 무사하셔서 기뻤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나는 이 사건 이후로 치마를 입지 않고 다닌다. 언제든 담 넘을 준비완!)


  이 날의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었지만 안부확인 문제는 점차 불거졌다. 정기적으로 반찬을 가져다주시는 분도 어르신이 문을 안 열어줘서 대문에 반찬을 걸어놓고 가는데 여름철에는 식중독 우려가 높았고, 먼 곳에서 형님을 보러 온 칠순의 동생도 형을 만나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다못해 동생 당신의 돈을 들여 담벼락과 대문 공사를 해줬는데 너무 높게 해 준 것 같다며 후회를 했으니 말을 다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번의 사례회의를 거치고, 마을이장님의 의견, 친동생의 의견을 취합하여 일명 '안부확인용 개구멍'을 만들기로 했다. 어르신이 시장에 가고 안 계신 틈을 타 공사업체 사장님을 모시고 가서 담장에 작은 문을 만드는 게 가능한지 물었고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어르신에게도 여기 담벼락에 작은 문을 하나 만들자며 꼬시고 꼬셔서 '그러라'는 대답을 받았다. 하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기에 서둘러야 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드디어 시작된 공사날!


  지나가던 이웃집 할머니가 "어이고, 문 만들기로 했어? 잘됐다 잘됐어!" 하고 내 일처럼 기뻐해주시고는 알 수 없는 말을 던지셨다.


  "근데 조심해. 위험한 할아버지니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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