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용숙 Jul 31. 2021

고요가 여름 위를 지나간다

칠월 - 유재영

고요가 여름 위를 지나간다

  

칠월 - 유재영

-햇빛 시간·5 –


언덕을

넘어오는

저 무량의

바람에도


초록빛

똥처럼

나뭇잎에

앉아 있는


청매 미

울음소리가

지워지지

앉는다


 칠월에는 여름의 소리가 더위라는 집합 공간에 다 모여 있는 거 같다. 매미 울음소리, 산비둘기 구구대는 소리, 벌들 윙윙대는 소리, 나비 떼의 날개 짓 소리, 더위에 지친 식물들 물 길어 올리는 소리 등은 칠월의 더위 고개를 더 높게 한다. 시(詩)에서도 언덕을 넘어오는 시원한 무량의 바람에도 청매 미는 못살겠다는 듯 울어댄다고 한다. 칠월에는 살아있는 생명들이 더위를 피해 갈 수 없나 보다. 그래서 더위로부터 구원받고자 가장 절박하게 더욱 그들만의 소리로 배꼽 아래 애간장을 끌어올려 뱉어내나 보다. 그러나 매 번 나에게는 한 여름 더위에도 등짝이 서늘한 고요가 찾아올 때가 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여섯 살 여름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한다.


 옥수수 붉은 수염이 누렇게 타들어갈 즈음 칠월 어느 날, 한낮에 나는 마루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자다가 문득 깨어났는데 아무도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불러도 대답이 없다. 분명 누군가 나를 깨우는 거 같았었다. 평상시 같으면 벌들이 윙윙대거나 나비 떼가 눈앞에서 팔랑대는 것이 보였었다. 또 파리가 콧잔등을 간지럽히거나 마루 천정을 날아다니며 손바닥을 비벼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없다. 다만 마당 가득 햇빛이 내려앉아있었고 사랑채 옆 마구간은 텅 비어 있다. 낮잠을 깨우는 건 언제나 소등을 타고 놀던 커다란 똥파리 왱왱대는 소리였는데 그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햇빛 달구어진 마루 끝을 가만히 손가락으로 대어봤다. 손가락 끝이 따갑다. 낮은 담장 너머 먼 산이 남색을 띤다. 늘 바라보던 산색깔이 아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마당, 너무 고요해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고요의 무게에 짓눌려서 일어날 수가 없다. 난 처음으로 고요가 덕지덕지 묻은 한 여름 정적이 몹시 슬퍼서 울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적막은 순간적으로 찾아온 거였다. 잠시 뒤 뻐꾸기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벌떼들 움직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으니까. 지금까지도 이때의 시간과 공간과 감정은 정지화면처럼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그때마다 약간의 감미로운 슬픔이 느껴졌다. 이 감정은 무얼까? 나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열한 살 되던 여름이었다. 내게 있어 여름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계절이다. 친구들과 학교만 갔다 오면 강으로 멱 감으러 가곤 했다. 강에서 멱 감는 건 개구리헤엄으로 족하다. 하늘을 보면서 내려가는 물길에 몸을 둥둥 띄우다가 물살이 늦어지는 곳에서 멈추고 다시 윗목으로 올라가 헤엄을 치면 된다. 그날도 햇빛에 달구어진 자갈에다 옷을 벗어놓고 친구들과 후다닥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연한 녹색을 띤 강물이 미지근하다. 신작로 길을 따라 이어진 강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놀기 딱 좋은 오후다.


 평상시 헤엄치던 곳에서 약간 아래쪽이었는데 갑자기 발 한쪽이 밑으로 쑥 빠졌다. 다시 한쪽 발마저 밑으로 빠지는데 발이 물 밑 땅에 닿질 않는다. 손으로 허우적거리면서 빠져나오려고 하니 물속으로 더 들어갔다. 물에 빠져서도 생각을 했다. 신작로 옆으로 붙으면 돌 축대에 닿을 수 있을 거 같아 허우적대면서 그리로 갔다. 그런데 나중 친구들 말이 내가 점점 물길이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는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 년 여름이면 한 사람씩 물에 빠져서 죽었다 한다. 물에 빠졌다가 살아 나온 사람 말에 의하면, 여름밤 그곳을 지나가면 물은 사라지고 불빛이 환한 잔치 집이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른다고 한다. 그때 홀려서 그 집에 들어가면 물에 빠져서 죽는단다. 마침 살아 나온 사람은 강에서 뼈가 굵은 장정이어서 살 수 있었다고 했다. 거기에 내가 빠진 거였다.


 물속에 빠졌을 때 무섭지가 않았다. 눈을 뜨니 물속이 온통 연한 녹색이다. 햇빛에 물든 물빛은 가을에 벼가 익기 직전 나타나는 연둣빛 같았다. 아롱아롱 일렁이는 물결 따라 햇살도 움직였다. 둥둥 물속에서 뜨는데 숨만 조금 막히고 햇빛 비치는 물속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때 누군가 내 머리채를 잡아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고 놓지 않았다. 난 있는 힘을 다해 그녀의 목을 내려 누르고 물 위로 고개를 뻗었다. 그녀를 밀치고 그녀의 목을 누를 수 있었던 힘은 초인적이었다. 그녀와 나는 시소처럼 오르락내리락했다. 덩치가 크고 어깨가 넓었던 그녀는  잽싸게 내 머리채를 잡아당겨 강가로 나를 끌어냈다. 그녀는 면사무소에 다니는 사환이었다. 산비탈 아래에 있는 자기 집에 점심 먹으러 왔다가 “사람 살려”라는 소리를 듣고 달려왔던 것이다. 그녀는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뛰어들어 나를 살려냈던 것이다.


 강가로 끌려 나와 햇빛에 달구어진 자갈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뜨거운 돌 위로 머리카락 물이 흘러내렸다. 눈을 감고 있으니 물속 잔영이 떠올랐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일렁이던 초록 물빛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얼굴에 닿았던 뜨거운 자갈의 촉감도 익숙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외갓집에서 여름 땡볕에 자다 일어나 느꼈던 갑작스러운 적막과, 물에 빠져 허우적댈 때 보았던 물속의 정적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여름날 이 둘의 장면이 떠올려질 때마다 애잔하면서도 평화로운 감정이 일어났다. 동시에 더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작열하는 태양이 여름의 소란마저 눌러버린 적막한 오후가 찾아오면 나는 가끔 유체이탈 상태가 되었다. 먹지 않아도, 잠자지 않아도 하루 움직임은 정상인데 몸속은 텅 빈 무중력 상태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외갓집 여우고개 언덕을 넘어오는 무량의 바람을 따라 외갓집 대청마루에 앉아 있다. 자주 그 시간으로 돌아가 마루 끝에 엎디어 있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의 정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름이면 주술처럼 그 장면을 자꾸만 불러내는 것은 여름 한낮 철저하게 혼자였던 짧은 시간,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유영하는 태아의 원초적인 감정 때문일까? 아니면 초록빛 똥처럼 나뭇잎에 매달려 한 여름 찰나에 살아야 하는 청매 미의 운명 같은 생에 대한 절박함 때문일까?

칠월 더위가 무량의 바람에도 끄덕않고 울어대는 초록 똥 청매미의 짧은 생이 대조되어 감미롭깁만 하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을 키우는 물길의 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