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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용숙 Sep 01. 2021

달콤하고 다정한 시간이

잡초뽑기 - 하청호

잡초뽑기 – 하청호


풀을 뽑는다

뿌리가 흙을 움켜쥐고 있다.

흙 또한

뿌리를 움켜쥐고 있다.

뽑히지 않으려고 푸들거리는 풀

호미 날이 칼 빛으로 빛난다.


풀은 작은 씨앗 몇 개를

몰래

구덩이에 던져 놓는다.




  올여름 더위가 역대 최고였음에도 나는 텃밭에 심어놓은 오이, 호박, 가지와 고추가 잘 자라도록 오후에는 자주 풀을 뽑았다. 풀들은 뿌리 채 뽑혀도 며칠 지나면 같은 풀이 그 자리에 또 올라온다. 씨앗이 떨어질 사이가 없었는데 어떻게 매번 새로운 싹이 돋아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땅속에는 수천수만의 잡초 씨앗이 대기하고 있는가 보다. 잡초 전술로, 앞의 잡초가 장렬히 전사하면 다음 씨앗이 흙을 밀어 올려 그 자리를 대신 메우는 거 같다. 


땅속 씨앗의 세계에도 모종의 규칙이 있는 가 보다. 무질서하게 다른 종자가 섞여서 땅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같은 종류의 풀들이 무더기로 올라와 한 곳을 점령한다. 지난해에는 개망초가 메밀꽃처럼 하얗게 밭 전체를 덮더니 올해는 도깨비바늘이 손쓸 사이도 없이 밭 전체에 포진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질경이, 비듬나물, 바랭이, 여뀌, 덩굴식물 등등 이름 모를 잡초들까지 마치 자신들이 원주민이었던 듯 흙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 터를 잡고 있다.


  여름 내내 더운 날씨와 많은 비 때문에 풀이 쑥쑥 잘 자랐다. 비가 오는 어떤 날에는 나는 온종일 풀 뽑기를 했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긴팔 옷을 입은 채 호미질을 하다 보면 비와 땀이 범벅이 되어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도토리나무 이파리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 방금 뒤적여 놓은 흙속으로 떨어지는 둔탁한 물방울 소리, 집 주위의 모든 사물이 서로 끌어당기며 내는 아주 작은 음들이 등줄기의 땀방울이 식는 순간만큼 빠르게  귀속 달팽이관을 흔든다. 그럴 때면 호미를 손에 쥔 채 가만히 허공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곤 운율을 띤 감미롭고 미세한 소리에 내 존재를 맡긴다. 언제 어디서 이러한 찰나가 있었던 듯 나는 오롯이 이 공간의 한 부분으로 멈추어 있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아무 색깔이 입혀지지 않은 가장 원초적인 다정한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이 바로 이때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감미로운 순간도 잠시, 잡초에게 우호적이던 감정을 내려놓고 풀 뽑기를 행군하는 것처럼 해 나간다. 오늘 뽑아야 할 풀의 영토를 한 눈으로 훑어보고 나면, 내 호미가 잡초 군단인 여뀌 풀과 도깨비바늘, 바랭이, 명아주풀 등의 허를 찌른다. 그들의 대장격인 커다란 줄기의 뿌리를 캐내고 옆의 작은 풀들을 덩굴째 뽑아 올리면 잡초 무리는 허무하게 스러진다. 채소의 숨통을 단숨에 틔어주는 나의 풀 뽑기는 적과 아군이라는 이분 적법적인 명료한 대립구도 덕분에 신들린 듯 펼쳐진다. 잡초가 어떻게 생각할지 미루어 짐작해보지 않아도 된다. 풀 뽑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누가 심사하는 일도 없다. 채소로부터 늦게 풀을 뽑는다고 불평하는 소리도 못 들어봤다. 단지 풀이 제거된 후 오이나 호박, 고추와 가지들이 잎사귀 밖으로 몸통을 내밀며 ‘만세’ 하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 이런 풀 뽑는 시간이 나에게는 그 자체가 오락이다. 그런데 풀뽑기 초년생을 아리송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텃 밭 작은 꽃밭에 초여름이 될 때까지 칸나꽃 두 대궁이 주인이었다. 불타는 듯한 빨간 칸나꽃은 짙은 초록의 넓적한 이파리가 떠받치고 있어 마치 푸른 제복의 호위병이 정열의 춘희를 지키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런데 장맛비에 코스모스가 키를 훌쩍 키우더니 그중 하나가 곁줄기를 칸나 쪽으로 쭉 뻗는다. 내 손목 삼분지 일 정도 되는 몸통을 가진 코스모스는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급기야 몸통을 아예 칸나 줄기에 기대어 칸나의 몸 전체를 가린다. 자신의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칸나를 제압하고야 말겠다는 심보다. 코스모스는 제 본줄기를 휘어지게까지 하면서 꽃을 피우고 있다. 아마 칸나에게 손이 있다면 앞을 가리고 있는 코스모스를 당장 옆으로 밀쳐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칸나는 질세라 처음 꽃 피웠던 때보다 서너 뼘이나 더 위로 꽃대궁을 밀어 올렸다. 집 주위에 있는 칸나꽃 중에서 이놈이 가장 키가 크다.


  그러자 칸나 바로 뒤에 있는 또 다른 코스모스는 발뒤꿈치까지 들었는지 가느다란 줄기를 위로 뻗쳐서 칸나보다 조금 더 위를 선점한다. 경쟁을 하고 있는 칸나와 코스모스는 내가 손을 최대한 위로 뻗쳤을 때보다 키가 더 크다. 지금 코스모스와 칸나는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투쟁적으로 키를 키우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생각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식물에게 타종을 인식하고 경쟁적으로 살아남으려는 DNA가 있는 게 아닐까? 그들끼리 소통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그 둘을 제외한 나머지 칸나와 코스모스는 타고난 본성만큼 자라고 있다. 


 풀을 뽑으면서 나는 유년의 어느 한 계절에 머물곤 한다. 여름방학 오빠들이 식물채집을 하려고 논둑길과 밭을 오가며 뽑던 질경이, 달개비, 바랭이, 쇠비름, 도깨비바늘, 밭 언덕에 무수히 많던 쇠뜨기 등을 생각한다. 내가 여름날 땀 흘려가며 풀 뽑기를 하는 건 잃어버린 유년을 되찾고 싶어서인지 모르겠다. 햇볕이 따갑고 바람이 마당을 거리낌 없이 지나가고 멀리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그냥 호미질을 멈춘다. 잡초든 채소든 꽃이든 그때는 그들의 경계가 무너진다. 그 시간만큼은 곁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나는 달콤하고 다정한 마음이 든다. 다분히 잡초가 많은 텃밭에서 그런 순간을 자주 맞는다. 종족 번식은 티를 내고 하는 게 하니다.  결혼식처럼 시끌벅적 하지 않는 저 은근슬쩍 종족번식! 얼마나 멋진가? 내년에도 나는 잡초를 뽑다가 무경계의 경지쯤에서 호미를 들고 웃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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