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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용숙 Oct 09. 2021

푸른 밤

푸른 밀밭 - 오진현

푸른 밤


푸른 밀밭 – 오진현


환한 대낮

활활 옷을 벗고 뛴다


키 큰 내가 뛴다

키 작은 내가 뛴다

적당한 내가 뛴다


어우러졌다가 어우러졌다가

일렬로 서서 뛴다


  봄밤, 밀밭이나 보리밭이 달빛에 일렁이는 모습은 끝없는 평원 위에 말들이 달리는 거 같다. 그림자 벗 삼아 밭둑을 거닐다 보면 급작스레 불어오는 훈풍이 숨을 멈추게 한다. 낮은 규율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얇은 면치마라도 입은 날이면 따뜻한 기운이 허리를 감돌아 정수리에서 빙빙 돈다. 그럴 때 나는 허물을 활활 벗어던지고 숨겨져 있는 나와 어우러졌다가 깨어나곤 한다. 봄밤의 혼곤함은 이성의 뒤쪽에서 잠자고 있는 본성을 있는 그대로 일깨워주는 것 같다. 이때의 각성이 감미롭고 흥미롭다. 평상시 전혀 느껴보지 못하는 감성의 영역이 펼쳐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첫 발령을 동해시 OO 중학교로 받았다. 주말에 학교 주변에 있는 사람은 음악 선생하고 나뿐이었다. 음악 선생은 약혼자가 군대 장교로 있어서 면회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늘 집에 있었다. 토요일인데 갈 데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다. 대학교 때 가지고 있던 쉐이코 녹음기에 귀를 대고 이용의 ‘바람이려오’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마침 음악 선생한테서 자기 집으로 놀러 오라는 기별이 왔다. 음악 선생은 학교 담장에서는 가깝지만 정문에서는 조금 먼, 널따란 보리밭 한가운데 슬래브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녀는 가끔씩 자기 약혼자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으로 날 필요로 했다.


  오월이었다. 보라색 라일락 무늬가 잔잔하게 있는 얇은 레이온 치마(동네 양장점에서 맞춘 A라인 치마)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그녀 집으로 향했다. 자취집에서 신작로를 건너 보리밭 사이 좁은 길로 십 여분 가면 그녀 집이 나온다. 늦은 봄밤, 달빛이 대낮처럼 환한데 주위가 폭풍전야처럼 고요하다. 밭 한가운데 있는 그녀의 집에 거의 다와 간다. 그런데 갑자기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머리카락과 치마가 사정없이 날린다. ‘쉬이익’ 소리를 내며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는 거 같다. 보리밭 이삭들이 말들처럼 사정없이 내 앞으로 달려왔다. 나는 소리 지르지도 못하고 밭둑에 황망히 서 있었다. 바로 지척 음악 선생 집 불빛 외에 사방은 컴컴했다. 바람이 휘몰아쳐 숨조차 쉬기 힘들다. 있는 힘을 다해 음악 선생을 소리쳐 불렀다. 갑자기 하늘이 돌고 달이 돌고 집이 돌고 보리밭이 물결을 일으키며 파도처럼 일렁댔다.


  점차 환해진 달빛 아래서 미친 듯이 춤을 추던 보리 이삭들, 어릴 적 보았던 푸른 밤 아득하기만 한 별세계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바람이 그렇게 뜨거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낮 동안 햇빛에 달구어진 바닷물이 밤에 육지 쪽으로 바람이 불면 뜨거운 바람을 일으킨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날 나는 감각의 어느 한 부분이 열리는 걸 느꼈다.  머리카락이 거친 무명실처럼 얼굴을 할퀴는데 순박한 고정관념 하나가 뚝 떨어져 나갔다. '어린아이가 아니다'라는. 가끔 이때의 머리카락 변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부드럽게만 느껴졌던 머리카락이 왜 갑자기 거칠어졌을까? 아마 급격한 사고의 변환이나, 앞으로 일어날 생의 전환에 대해 예고한 것이 아닐까? 음악 선생과 나는 손을 잡고 치마가 흩날려 얼굴까지 올라와도 깔깔 거리며 막무가내로 웃어댔다. 그냥 봄밤이 흐느적거리며 사방으로 내려앉는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사람의 감각은 자연현상에 의해 더 잘 열리는 것 같다. 대학 2학년 여름 방학 때였다. 친구랑 나는 작은 암자에 며칠 묵고 있었다. 하루 중 일정한 시간에 법당에서 기도를 하고 밤에는 큰스님 법문을 들었다. 법문을 들을 때면 눈가가 시원해지고 눈동자 깊숙이 동공 속 무한대 점으로 내가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친구는 스님이라도 된 듯 가르침을 받은 좌선에 몰두했다. 나뭇잎이 두꺼워지고 잎들이 더욱 진한 초록으로 물들어갈 때 친구와 나는 그 시간들을 뼈 마디마디에 새겨 넣었다. 그리고 서로 고양된 사고체계에 놀라워하면서 불교의 기본 사상인 ‘사성제’와 ‘팔정도’에 대해 실천적인 부분을 어떻게 행동으로 이어갈지 이야기를 나누었다(지금도 불교의 기본 사상을 이해하지도 실천하지도 못하고 산다.)


  며칠 암자에 있다 보니까 금정산 산정에 동동주 파는 곳이 있는데 맛이 기가 막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눈이 샛별처럼 빛나는 친구는 ‘뭐 어때? 괜찮아’ 주의다. 미술학도답게 입는 옷이나 행동에 구애됨이 없다. 친구는 웬만큼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우리는 맛있는 동동주가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눈이 마주쳤다. 큰스님이 출타하신 틈을 타서 산에 가기로 했다. 드디어 기회가 와서 암자를 빠져나오는데 출발할 때부터 하늘이 캄캄하다. 그래도 친구의 ‘뭐 어때?’ 주의로 우리는 아무런 장비 없이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자마자 굵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세차다. 연필 굵기만 한 소나기가 정수리를 때리는데 머리가 얼얼하다. 빗줄기가 머리를 때릴수록 약간 어지럽기까지 했다.


  비를 피할 곳이 안 보인다. 금정산성 돌담이 멀리 쳐져있지만 지붕이 있는 건 아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평상시 등산객이 많은데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동동주 파는 데도 모르겠다. 산 정상 평평한 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는 사이 옷이 흠뻑 젖었다. 하늘은 더욱 컴컴해지고 빗줄기는 더 세차 졌다. 가끔씩 천둥소리도 들렸다. 친구와 난 처음에 마주 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다 둘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춘 그날, 정확히 나는 비와 한 몸이 되었다. 비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소나기를 맞는 순간 나의 모든 세포가 열렸던 게 아닐까? 그동안 내게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고양된 정신에 한껏 취해서 뭔가를 이루어낼 것 같은 엄격함이 있었다. 그 에너지가 나의 미래를 찬란하게 가져다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친구와 난 동동주를 마시지 않았음에도 소나기 한방에 모든 규율을 내려놓고 비에 미쳤던 것이다. 흥분된 순간을 자제할 수가 없었으니, 절 주위를 산책하며 친구와 담론을 주고받았던 정신세계는 어디로 갔던 것일까?


  그날 이후 친구는 머리를 깎고 절에서 그림만 그리더니 학교를 휴학하고 설악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봄밤, 바다 동네 보리밭에 부는 뜨거운 바람에 홀려서 거침없이 웃어댔던 날 나는 한 뼘 더 성숙한 여인이 된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주변 남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으니까. 금정산성 빗줄기에 견고하던 관념 세계가 허무하게 무너지듯 푸른 밀밭, 자연의 관능이 도래하고 감각이 열리는 봄이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겠다. 푸른 밤 마법같은 봄 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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