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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용숙 Dec 27. 2021

이창훈 시인의 시를 읽고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었다 - 이창훈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었다 - 이창훈


시집의 겉표지 그림이 눈길을 끕니다. 긴 능선으로 누워있는 어두운 파랑의 산, 골짜기 위로 아주 작은 민머리 초록 동산이 까꿍 고개 내밀고 있습니다. 설레발 없는 곡선이 단아합니다. 호수면 아래 산 그림자를 보지 않는다면 마음이 마냥 푸르게 펼쳐질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호수 아래에서 어두운 파랑은 암청색으로, 초록 동산은 새까만 산호초가 되어 산골짜기에 콕 박혀있습니다. 왜 고 작고 까맣기 만한 산 앞에서 숨이 죽여질까요? 그게 뭘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빨리 책장을 펼쳐야겠습니다.


시집의 제목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었다’는 시집의 첫 장 ‘조화’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생명이 없지만 영원성을 띤 꽃, 가볍게 버려지기도 하지만 돌보지 않아도 처음 피어난 것처럼 오래도록 남아있는 꽃,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었을 조화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총 5부로 구성된 시집은 제목만큼이나 서정적이고 따뜻한 시들이 많습니다.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사랑’입니다. 그만큼 ‘사랑’에 대한 고찰이 광대하다는 증거겠죠. 1부에서 사랑을 노래한 시 중에서 ‘도마’는 압권입니다. 단 세 줄의 시로써 우주만큼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도마


‘당신을 사랑하려면 칼을 물어야 했다


한 그루 나무가

제 가슴 한편에 시퍼런 도끼를 허락하듯이’


한 가지 사물의 본질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통쾌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무시무시한 도끼와 칼과 사랑은 너무나 먼 대척점에 있는 세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 몸처럼 밀접하게 엉켜서 물고 물리고 베고 베어져야만 비로소 사랑이 완성되는군요. 사랑이 이렇게 통증을 안고 대극의 요소를 품어야 하는 것이라니요. 문득 내가 있으므로 네가 있고, 네가 없으므로 나 역시 없다, 라는 문구가 생각납니다. 우주의 원리, 상대성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의미의 포괄성을 추측하는 재미를 주는 시가 있는 가하면 제4부의 ‘뒤’라는 시에서는 언의의 유희와 의미의 통찰을 한꺼번에 느끼게 합니다.


‘뒤’는 총 54줄의 문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구절마다 고개가 끄떡여지지요. 쉰넷의 문구에서


 ‘...

잘난 사람들 잘난 세상의

 그 요란하게 잘난 말들이 아닌

 못난 놈들 못난 세상의

 그 서글프게 못난 말들의 말

...’ 


이 부분에서 ‘뒤’라는 단어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뒤’의 뒤편을 한참 뒤에 읽었습니다. ‘뒤’라는 말이 주는 의미가 철저하게 나의 일상에서 근접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지요. 뒷골목의 삶은 어쩐지 서글프고 춥고 외롭기도 하잖아요. 못난 놈들의 못난 세상은 곧 내 안의 어둠일수도 있겠어요. 주변을 관찰하고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소외된 것들에 대해 느끼는 시인의 고통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앞만 보며 길 가는 생의 여울목에서

 발아래 전혀 못 보고 건넌

 그 뒤에 남아 온 몸으로

 너를 받친 징검다리의 말’ 


이 대목에서는 ‘뒤’ 라는 단어가 너무나 대견하고 의젓해서 사랑이 막 솟아나기도 합니다. 아프다가 눈물짓다가 안심하다가 희망으로 가게 하는 시, ‘뒤’는 사랑을 근간으로 할 때 따뜻하게 풀어져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생활에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사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한여러 편의 시들 중에서도 ‘분수’, ‘고슴도치’는 아하!, 하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분수는 분수를 모른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 중력을 거슬러, 까치발을 하고 불안하게 저 너머의 사랑을 넘본다.... 중략.’ 사랑의 위험성이 중력을 거스르는 일로 대변되다니요. 역으로 그만큼 모험을 감행해야만 사랑을 쟁취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땅으로 추락해 처참하게 깨진 물방울들이 물의 무덤으로 흐를 때...’에서 거꾸로 치솟았다가 순식간에 떨어지는 물방울의 비참함에서 무지개처럼 스러지고 마는 사랑의 허망함이 반전으로 드러납니다. ‘분수’가 분수를 모르다가 낭패를 보는 인간사도 함께 생각하게 만들면서요. ‘고슴도치’ 시도 상큼한 입맛을 돋게 합니다. ‘가시는 외부에서 박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자라는 것이다,... 중략’ 가시 돋는 말을 내뱉는 내 모습을 시에 투영하게 되어 고슴도치가 된 자신을 보게도 합니다.


 ‘나무’는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

정처 없이 맴도는 나이테의 발걸음

나에게서 나에게로 되돌아오고


 바람이 분다

...’ 


여기서 ‘바람이 분다’는 4연의 첫 문장이지요. 3연과 4연의 간격에서 목울대가 울렁울렁합니다. 원심력이 작용해도 자신의 틀 안에 갇힐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이 그려지면서 연과 연의 거리에서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할 대상에 대한 체념이 올라왔기 때문이지요. 숙명처럼 한 곳에 머물 수밖에 없는 나무처럼 제한된 시간을 살아야 하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을 안겨줍니다.


이 밖에도 ‘화양연화’, ‘독작’, ‘수도꼭지’, ‘분필’, ‘의자’등 무한 상상력으로 시어가 확장된 시를 읽다 보면 편견으로 가득 찬 저의 정신세계가 따끔거리면서 열리는 걸 느낍니다. 연작시를 읽을 때는 익숙한 절, ‘미황사’에 대한 사색이 나와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같은  장소를 다녀 온 시인에게 전화라도 하고 싶었지요. 달마산 아래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 ‘미황사’, 그곳에서는 어두웠던 마음이 밝아지고, 추했던 심성이 아름다워지는 걸 경험하게 됩니다. 연작시에서도 그걸 노래했으니까요.


교실 일지에서 ‘희주’를 읽다가 많이 울컥했습니다. 희주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졸업 후의 일상이 나와서 마음을 놓았습니다. 또 청춘이 누려야 할 특권을 송두리째 입시경쟁에 헌납하고 초점 잃은 눈으로 교실에 앉아있는 학생들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시에서는 엄마로서 겪어야 했던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되살아나 숨이 차오르기도 했습니다.


시인은 ‘이 별에 우리는 사랑하려고 왔다, 오래전 그 사랑의 길을 찾아 다시 학교로 갔다’라고 말합니다. 시를 읽다 보면 눈이 닿는 곳마다 온통 사랑할 대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합니다. 작은 물체 하나에도 연민을 느끼게 하고, 연민이 나와 연결되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소중한 존재로 다시 다가오는 것을 일게  되지요.  아마 시집 겉표지 까만 작은 산은 이 별에서 사랑받지 못한 채 버려지고 있는 불쌍한 어떤 가치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좋은 시를 맘껏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너무나 소중한 시들이라 감히 시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글로 쓴다는 게 어렵기만 합니다. 괜히 시를 훼손하는 게 아닌가, 염려되어 지금까지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용기 내어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해 준 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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