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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용숙 Jan 16. 2022

절벽 아래 강물은 흐르고

몰운대에 눈 내릴 때 - 박정대

몰운대에 눈 내릴 때- 박정대


 세상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에 갔었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사랑보다 더 깊은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네
 강물에 투신하는 건 차마 아득한 눈발뿐
 몰운대는 세상의 끝이 아니었네
 눈을 들어 바라보면 다시 시작되는 세상
 몰운리 마을을 지나 광대 골로 이어지고
 언제나 우리가 말하던 절망은 하나의 허위였음을
 눈 내리는 날 몰운대에 와서 알았네
 꿩꿩 꿩 눈이 내리고 있었네
 산꿩들 강물 위로 날고 있었네
 불현듯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그리운 이름들
 바람이 달려가며 호명하고 있었네
 세상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에 갔었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사랑보다 더 깊은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네
 강물은 부드러운 손길로 몰운대를 껴안고
 그곳에서 나의 그리움은 새롭게 시작되었네
 세상의 끝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었네 


 몰운대는 강원도 정선군 동면에 있다. 면소재지서 몰운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낮은 오름이 하나 있다. 오솔길 가에는 정선이 낳은 박정대 시인의 시가 악보대 같은 나무 판에 새겨져 우리를 맞는다. 그곳을 지나면 몇십 명이 둘러앉아도 좋을 너르방석 바위가 나온다. 띄엄띄엄 있는 소나무를 지나 바위 끝에 다다르면 발아래 바로 수직의 절벽과 마주한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정선에는 눈이 많이 온다. 눈은 자주 폭설이 되어 내린다. 몰운대 벼랑 아래 시퍼런 강물이 하마처럼 입을 벌리고, 눈발은 하염없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소용돌이치는 강물의 중간에 잠시 시선을 고정시켜보라. 떡가루처럼 떨어지는 눈이 푸른 강물에 하얀 마가렛꽃으로 피어나 꽃밭에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걸 볼 수 있다.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의 제어장치가 없다면 무진장한 흰꽃 속으로 달려가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힘들 것이다. 


  시에서는 우리가 절벽의 끝에 서 있다면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라 한다. 그러면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고 그 길들이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몰운리 마을을 지나 광대 골로 이어진 길, 끝인가 싶지만 다시 시작된 길들이 나타난다. 절벽 위에서 바라보면 고불고불 논둑으로 야산으로 숨겨져 있던 길들이 마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성을 볼 수 있는 건 마을 안 보다 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위험한 절벽쯤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시인은 강물 위로 떨어지는 낭만적인 눈만 보지 말고 눈을 들어 마을을 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삶은 이어지나 보다. 간명한 이치를 왜 젊은 날에는 알 수 없었던 것일까? 


'몰운대' 시를 읽으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회한이 있다. 젊은 날 나의 어리석음과 그 아이의 세상 이치에 대한 알 수 없음이  합쳐져 발생한 일 때문이다.  학교 지역 이동으로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지훈이가 우리 집에 왔다. 의논할 게 있다고 해서다. 토요일이라 남편이 일주일 만에 오기 때문에 내 마음은 해야 할 일들로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지훈이를 보니 반가웠다. 수재였던 지훈이는 중3 때 진로 문제로 내게 상담받은 적이 있다. 나는 첫 발령받은 신임교사로 저학년을 가르치고 있었다. 지훈이의 가정환경이나 성격이나 교우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다른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근무지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명문 00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쪽에 손을 들어줬다.


 명민하고 사려 깊은 지훈이를 교사와 학생들은 많이 좋아했다. 일 년 만의 재회였다. 맑고 깊어 보이는 지훈이의 눈이 불안하게 움직였다. 지훈이의 고민은 대학 진로와 여학생들에 대한 거였다. 처음 한두 시간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대학은 아직 시간이 있으니 문이과 적성에 대해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다른 고민 하나는 하숙집 바로 옆 여고 앞을 지날 때 매번 여학생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수군거린다는 거였다. 나는 사춘기에 다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평소의 지훈이 태도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남편이 올 때까지 갈 생각도 않고 반복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오후 두 시에 와서 저녁 일곱 시경, 남편이 와서야 마지못해 일어섰다(정말 가기 싫어하는 몸짓을 나는 애써 외면했다). 그때가 10월 중순이었다. 


  밋밋한 가을이 지나고, 학교일로 정신없이 12월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동료 교사가 00 고등학교에서 학생 한 명이 학교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직감적으로 지훈이가 떠올랐다. 전날 밤 나는 몸에 한기를 느끼면서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이불을 뒤집어써도 몸이 떨리고 뜨거운 물을 마셔도 몸의 오한이 가셔지지 않았다. 머리를 만지면 열은 없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냉기로 밤을 새우고 출근한 터였다. 짐작대로 지훈이는 그렇게 갔다. 나의 평범한 일상의 시간에 그 아이는 온 우주의 고민을 안고 내게 왔었던 것이다. 내게 살고자 찾아왔던 그날, 나는 그 아이의 고뇌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보냈다. 마지막 길에서도 나를 찾아왔던 것일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신중하고 속이 깊은 아이, 절벽 앞에서 그 순간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나의 무지가 불러온 뼈아픈 후회는 오래갔다.


벼랑 끝에 섰을 때 벼랑 아래보다 조금만 더 먼 곳을 바라보았더라면 샛길이라도 보이지 않았을까? 나 역시 조금만 더 세심하게 지훈이에게 집중했더라면 지훈이 마음속 불씨를 살려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사랑보다 더 깊은 눈이 내리는 몰운대에는 그리운 이름을 호명해줄 바람의 존재라도 있지만 그 아이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절망이 허위가 아닌 절망 그 자체로 남았던 것이다. 아직 전체적이 되거나 전체적인 세상을 발견하기 어려운 나이였다. 절벽 끝에 서있는 지훈이에게 절망이 허위가 되는 그런 반전을 가져다 줄 누군가가 있었어야 했다. 마음속 제어장치를 가동할 수 있는 누군가가.


 늦어도 너무 늦은 지금에서야 ‘세상의 끝은 또 다른 삶의 시작’ 임을 깨닫는다.  눈이 내린다. 또 다른 겨울이 지나간다. 시간이 약이라고 젊은 날 어리석음이 초래한 죄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무지로 인해 벌어진 일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자책의 짐도 내려놓아야겠다. '몰운대'를 시로써만 읽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겨울 강물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눈 내리는 겨울이 지나가면 숲에선 푸른 심장들이 쿵쿵거리며 뛰기 시작할 것이다. 멈출 것 같지 않은 눈발도 계절의 순환에 밀려나 자취를 감추고  강물도 순해져서 몰운대를 껴안게 되겠지. 세상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이 생기기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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