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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용숙 Mar 01. 2022

사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있는 힘을 다해 - 이상국
 
 해가 지는데
 왜가리 한마리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데
 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처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겨울터널을 지난 걸까? 햇빛이 따사롭다. 개울물도 불어나 콸콸 소리 내며 바위를 휘돌아 아래로 내려간다. 개울을 따라 만들어진 공원과 산책길에 사람들로 북적인다. 코로나 확진 환자는 매일 기록 갱신하지만 지친 일상을 견딜 수 없다는 듯 식당이나 까페에도 사람들 목소리가 시끌시끌하다. 백신패스 장치가 치워져 번거롭던 핸드폰 흔들기도 사라졌다. 코로나 이전의 생활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상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봄빛이 구석구석 비춘다. 양지와 그늘의 온도가 비슷하다.                                         


 겨우내 가뭄으로 개울 바닥이 말라 있었는데 윗동네 저수지 보문이 열렸는지 개울물이 제법 많이 흐른다. 물속에 순간 ‘반짝’하고 사라지는 물체가 있어 들여다보니 피래미들이 떼를 지어 몸을 뒤척이며 몰려다니고 있다. 겨울동안 어디에 있었을까? 물풀도 없는 도시 개울물 어디에서 저 많은 새끼들이 모여 사는지. 인공으로 쌓은 둑은 이끼조차 끼지 않아 산에서 금방 캐온 돌처럼 날것으로 구축되어 있다. 소유의 경계가 없는 물속에선 영토를 차지하려 서로 싸우진 않겠지. 먹이를 쌓아두고 더 많이 가지려 집단 싸움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물오리 두 마리가 궁둥이를 들고 자맥질 한다. 방금 지나간 피라미 새끼들이 잡아먹히진 않았을까? 물오리 자맥질 하는 곳을 지나가면 피라미 중 누군가는 그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가만히 보니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 것 같다. 힘센 놈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능력을 진화시킨 피라미들, 물오리는 몇 번이고 있는 힘을 다해 물 속에 머리를 처박는다. 조만간 힘이 빠져 먹이사냥이 힘들어지겠다. 그들에게 죽고 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의 행보처럼 보인다.



 멀찌감치 떨어져 주변을 관망하는 백로(or 왜가리)는 안달하는 낌새가 없다. 목을 우아하게 빼고 숨을 죽인 채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목과 다리가 길어서 멀리 있는 먹잇감도 금방 알아챌 것이다. 이 녀석은 자맥질 대신 물고기가 자신의 앞으로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다. 움직임이 없으니 물고기는 안심하고 지나칠 것이다. 아직 개구리나 곤충이 나오지 않으니 봄맞이 물고기들은 그들의 사냥감이 될 수밖에 없다. 큰 강이나 시냇물도 아닌, 도심의 작은 개천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들이나 숲도 없는 하천부지 물 밖에서 다른 먹잇감이 나타날 때까지 물고기를 먹고 살아가야하는 새들이나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봄 햇살이 찬란하건만 먹고사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며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 부러워하지 않고 자족하는 그들의 삶에는 꾸밈이 없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자신의 세계에서 고유한 성정을 지키면서 사는 일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있나보다. 그러니 한 끼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저토록 인내를 하는 것 아닐까. 욕심 부리지 않고 오직 현재를 사는 그들이 현명해보인다.  한 개인의 제어하지 못하는 욕망이 날마다 지옥을 만들어내는 걸 보면서,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란 말이 계속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욕망과 자족의 평균점을 이루는 저 봄볕 속 생명들에게서 삶의 균형이 뭘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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