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모임 로칸디나 Dec 10. 2018

로디즈가 만난 영화 <안개 속 소녀>

표류하는 진실들 속에서 <안개 속 소녀>, 김영찬

도나토 카리시, <안개 속 소녀>, 2017  


본 글은 영화 <안개 속 소녀>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시는 데 아무 지장이 없으나, 조금의 스포일러도 싫은 분이라면 영화를 먼저 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2월, 꽤나 오랜만에 이탈리아 영화가 한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그 동안 작은 극장들에서 개봉된 이탈리아 영화들은 있었지만 이탈리아 상업 영화가 한국에 들어온 일은 14년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그레이트 뷰티>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은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는 작년에 개봉한 <안개 속 소녀>는 당시 <토르>에 밀렸지만 극장 순위 3위를 유지하며 ‘이탈리아’ 스릴러가 가진 힘을 보여줬다. 

 먼저 도나토 카리시(Donato Carrisi)가 누구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카리시는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 쪽에서는 꽤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다. 그는 법학을 전공하고 이후 범죄학과 행동과학에 대해 연구하였으며, 그의 소설은 이러한 특성이 잘 반영되어있다. 범죄자들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실수를 해서 결국은 경찰에게 체포되는지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안개 속 소녀>의 이탈리아 포스터와 한국 포스터 (화질이 좋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린다.)

 <안개 속 소녀>는 작가 도나토 카리시의 영화감독 데뷔작이다. 그가 저술한 동명의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고, 본인이 연출했다. 소설을, 특히 장편소설을 영화로 각색할 때는 보통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장편 소설이 가지고 있는 호흡 자체가 2시간 정도 되는 러닝타임 안에 맞추기가 매우 어렵고, 소설은 독자의 상상력에 크게 의존하지만 영화는 상상력보다는 관객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형식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안개 속 소녀>도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의 원작자인 동시에 영화의 연출자로서 자신이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는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영화(와 책)를 통해서 현대 사회의 문제를 지적한다. 보겔 형사(토니 세르빌로 역)의 수사 방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경찰의 수사 방법과는 다르다. 그는 사건을 미디어에 의도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세간의 이목을 끌어야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디어가 사건을 다루는 순간, 더 이상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보겔 형사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진실’을 찾기 위해서 수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수사 방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때로는 죄가 없는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기도 한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보겔 형사는 이렇게 반문한다. “어찌되었든 이후에 범죄가 발생하지는 않았지 않아?” 

보겔 형사 역의 토니 세르빌로와 플로레스 역의 장 르노. 두 사람의 대화는 일종의 전투처럼 그려진다.

 도나토 카리시는 이 영화 연출 이전에 이탈리아의 다양한 방송사들과 함께 드라마 제작을 협업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첫 영화 연출임에도 불구하고 <안개 속 소녀>의 여러 장면들은 스타일적으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던 <그레이트 뷰티>의 주인공 토니 세르빌로와 우리에게 익숙한 <레옹>의 장 르노가 보여주는 연기도 인상적이다. 한 편,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로리스 마티니 교수 역을 맡은 알레시오 보니의 연기도 주목할 만 하다. 


 할리우드식의 긴박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를 기대하는 분들에게 <안개 속 소녀>는 약간 실망스러울 수 있다. 사실 이 영화 자체가 스릴러라기보다는 스릴러의 형식을 띄고 있는 사회 비판극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은 <안개 속 소녀>를 통해서 더 많은 이탈리아 영화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이탈리아 영화는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고 인식된다. 아마도 이탈리아 영화는 ‘지나치게 철학적이거나 재미가 없고, 어렵기만 하다’는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다른 글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이탈리아 영화는 한국 시장에서 충분히 소구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개 속 소녀>가 12월 자그마한 반향을 일으키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디즈가 만난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