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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모임 로칸디나 Dec 23. 2018

로디즈가 만난 영화 <밤치기>

정가영을 좋아하세요 <밤치기>, 김영찬


 본 글에는 영화 <밤치기>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영화 관람 후에 글을 읽어주시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정가영 감독은 영화 <내가 어때섷ㅎㅎ>이라는 13분 단편 영화로 이름을 알렸다. 유튜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단편인데(유튜브의 ‘가영정’ 채널에서는 <내가 어때섷ㅎㅎ> 외에도 정가영 감독의 다른 단편들을 찾아볼 수 있다) 컷의 구성은 조금 단조롭게 보이지만 그 속에서 오고 가는 대화들이 재미있어서 그런지 영화 전체적으로는 재치있게 느껴진다. 정가영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그렇다. 게다가 감독이 직접 연기까지 한다니 관객의 입장에서 흥미롭기도 하다. 정가영 감독에게는 매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치기’ 있다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밤치기>는 그런 영화다. 밤의 치기 같은(정가영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밤치기>라는 제목은 밤을 점프해서 힘겹게 친다는 의미라고 밝힌 바 있다)

<밤치기>의 포스터


치기 있는 내러티브


 영화감독, 아직 영화를 안 찍으니 작가인 가영은 ‘아는 오빠 친구’인 진혁에게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인터뷰를 부탁한다. 가영의 질문들은 진혁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가영의 첫 질문은


 “하루에 자위 2번 해본 적 있어요? 3번은요? 4번은요? 3.5번은?”


이다. 진혁은 조금 당황하지만 나름(?) 성실하게 질문에 답변한다. 이후에도 질문들은 계속된다. 진혁은 정말 이런 이야기들이 영화에 나오는 건지 의문을 품지만 일단은 대답한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대화들이 선을 넘을 듯 말 듯 오간다. 여기서 선을 넘는다는 표현은 물론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이다. 두 번째 만나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들을 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두 사람은 이제 룸카페로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신다. 질문은 이어진다. 그러다 가영은 진혁에게 묻는다.

                          

                  “오빠, 저 오빠랑 못 자겠죠?”


영화를 보는 나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정적. 진혁은 가영에게 자신이 여자 친구가 있는 걸 알면서도 그런 질문을 한다며 화를 낸다. 가영은 한 발짝 물러나지만 절대 포기하지는 않는다.


 룸카페 시퀀스에서 특별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2개가 있다. 하나는 가영과 진혁이 서로 역할을 바꾸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진혁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순간이다. 가영이 질문을 하지 않자 진혁은 빨리 끝내자고 말한다. 가영은 혼자서 질문해서 힘이 든다며 서로 역할을 바꾸자고 한다.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혁이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끄는 순간이다. 진혁은 가영에게 ‘죽음’에 대해 묻는다. 다시 태어나면 좋은 영화로 태어나면 되겠다는 진혁의 말에 가영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건 안돼요. 영화는 사람이 만드는 거니까. 멋진 사람이”

 대화 중간에 진혁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장면은 시종일관 두 배우의 얼굴과 투 숏만을 보여주는 영화가 처음으로 공간에게 집중하는 순간이다. 룸카페의 로비가 미로의 한가운데처럼 느껴지고 진혁은 방을 찾지 못해서 공간을 헤맨다. 그러다 한 방의 커튼을 걷으면 어떤 커플이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제 두 사람은 노래방으로 장소를 옮긴다. 노래방 점수로 소원내기 대결을 하고 가영이 이긴다. 가영의 소원은 간단명료하다. “키스해도 돼요?” 그동안 가영의 구애에 짜증을 내던 진혁은 가영이 키스 말고 뽀뽀를 하겠다고 하자 눈을 감는다. 가영은 진혁의 볼에 뽀뽀한다. 이번엔 진혁의 반응이 다르다.


                          “다 한 거야?”


 이제 얘기는 조금 달라졌다. 진혁은 가영의 계속되는 구애에 마음이 조금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진혁이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동안, 진혁의 친구 영찬(이름을 보고 흠칫했다. 내 이름이 영화에서 나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이 등장한다. 영찬은 매우 전형적인 인물이다. 말의 시작마다 ‘오빠가’를 붙이고, 자랑인 듯 아닌 듯 자랑을 한다. 가영이 영찬을 대하는 태도는 진혁을 대하는 태도와 정 반대다. 영찬 혼자서 지독하게 떠들기만 하다가 둘은 노래방을 나간다.


 집에 걸어가는 길에서 가영은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영찬에게 이렇게 말한다.


                         “키스해도 돼요?”


 하지만 그 상황이 영찬의 상상이었다는 것은 금방 밝혀진다. 가영은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영찬을 거절하고, 진혁에게 전화를 건다.




왜 그런 결말일까?


 진혁에게 간 가영은 춥다며 그에게 안긴다. 여기서 영화가 끝나는 줄 알았지만, 화면은 갑자기 가영의 자취방으로 변한다. 가영은 마치 지금까지 자기가 쓴 시나리오를 읽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여기서 영화는 끝이 난다. 왜 정가영 감독은 이런 결말을 택했을까? 가영과 진혁의 모습에서 끝내는 것이 화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더 아름다웠을지 모른다. 아마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라면 그 장면에서 마무리지었겠지만, 정가영 감독은 로맨스를 찍는 사람이 아니다.

 정가영 감독은 흔치 않게 ‘홍상수 키드’로 인정받고 있다. 홍상수 감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젊은 감독들은 한 두 명이 아니지만 정가영 감독은 홍상수 감독의 내러티브를 재치 있고 젊은 세대에 맞게 바꾸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통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그려지는 남성들이 나이가 꽤 많고, 지질하고, 여성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반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아주 젊고 매력적이며 쿨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런 홍상수 감독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감독 본인의 삶과 결부되며 이러한 지점에서 비판받는다. 반면 정가영 감독의 영화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며 한국에서는 ‘외설적’이라고 평가될 법한 말들도 서슴없이 한다. 홍상수의 내러티브를 비틀면서 정가영의 영화는 시작된다. 정가영의 영화 속 가영은 절대 연애 고수가 아니다. (솔직히 나는 가영이 연애 고수처럼 보이지만, 일단 인터뷰에서 감독은 영화 속 가영이 하수라고 밝혔다.) 아마 진심을 드러내고 시작하는 연애는 ‘밀당’ 이 어려워서 등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정가영 감독이 영화의 결말을 선택한 이유도 이 지점에서 기인한다. 연애 하수가 계속 다가가서 결국은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지는 상황은 영화나 상상 속에만 존재할 거라는 말이다. 조금은 슬프지만...

 정가영 영화와 홍상수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물의 위치와 나이에 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부인도, 자식도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내는 홍상수 감독의 이야기는 어쩌면 자기변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밤치기>에서의 인물들은 젊은 날의 용기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보려 도전하고 좌절하고 꿈꾼다. <밤치기>의 밤은 전혀 로맨틱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어딘가의 밤에는 청춘들이 사랑을 꿈꾸며 치기 있는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정가영의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이 지점이다. 기존의 클리셰를 전복하는 동시에 청춘의 삶을 현실적으로 잘 묘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정가영 감독의 영화를 인용해서) 말하고 싶다. “정가영을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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