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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모임 로칸디나 Dec 27. 2018

로디즈가 만난 영화 <클로저>

가깝고도 먼 존재 <클로저>, 황다빈


(본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주관적 생각을 바탕으로 한 감상임을 밝힙니다.) 


 <클로저>, 사랑에 관한 영화가 보고 싶어 이 영화를 보았어요. 사실 좀 더 근원적인 이유는 요새 제가 사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누군가는 사랑이란 매우 낭만적이고 오그라드는 것이라고 치부하죠. 근데 부정할 수 없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로 인해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고 심지어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잖아요. 그냥 단순히 유치한 감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요. 
 

 어릴 땐 사랑이 마냥 낭만적인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릴 적 보던 Tv에서는 드라마든 예능이든 사랑을 황홀한 이미지와 사운드만으로 표현했었거든요. 드라마에서 사랑이 좋지 않게 끝나거나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건 상대가 낭만적인 사랑의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왜냐면 마지막엔 항상 누군가와 진정한(?) 사랑을 맺으며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니까요. 하지만 낭만적인 사랑이란 게 뭘까요? tv에서만 보던 것처럼 핑크빛이 물들며 감미로운 노래가 흘러나오며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는 게 낭만적인 사랑일까요?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게 존재할까요? 

 

 사랑했었던 혹은 사랑하고 있는 상대를 생각해봐요. 그리고 그 상대가 낯설어졌던 순간을 떠올려봐요. 그 상대가 언제부터 이렇게 낯설었지라고 생각을 해보지만 명확하지가 않아요. 내가 사랑하던 상대의 모습이 진짜인지 아니면 지금의 이 낯선 상대의 모습이 진짜인지 그건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누구보다 가깝고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죠. 하지만 그 상대의 낯선 모습을 마주하면 무엇이 그의 본모습인지 알 수 없어 당황해요. 근데 그건 당연한 거예요. 왜냐면 내가 아닌 타인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낯선 존재였을 테니까요.  

 영화는 앨리스와 댄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요. 그들은 거기서 거짓말처럼 첫눈에 반하죠. 제가 어릴 적 tv에서 보던 것처럼 말이에요. 둘은 멀리서부터 서로를 발견한 듯 수줍게 웃으며 슬로우로 천천히 다가오죠. 그런데 마치 이 모든 것을 비꼬듯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사랑의 이별을 이야기하는 노래예요. 그리고 둘이 도로를 하나 두고 가까워졌을 때 우연적인 사고가 벌어지며 둘이 가까워지는 계기가 마련이 돼요.(이것도 tv에서 보던 거예요!) 그러고 나면 이 영화의 정말 인상 깊은 첫 대사가 등장하죠. “hello, stranger.” 


 영화는 그 뒤에 이 둘이 행복하게 사랑을 나누는 시간들을 보여주지 않아요. 마치 그런 낭만적인 순간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말이에요. 영화는 곧바로 몇 년 뒤의 시간으로 점프하죠. 바로 둘의 사랑이 흔들리는 시간으로요. 그리고 다시 어떤 낯선 이들이 등장을 해요. 그 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질투하고 험담하고 빼앗고 상처 주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져요. 그 장면들이 너무 노골적이라 충격적이기까지 해요.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까지 돼버린 이유는 상대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끔찍하게 역설적인 것 같아요. 사랑하기에 상대에게 비수를 꽂고 고통스러워하며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그들은 상대를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그들에게도 상대가 낯선 존재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찾아왔던 거예요. 그들은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해하는 척할 뿐이었죠. 그렇지만 사랑하는 상대가 아무리 처음부터 낯선 존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어쨌든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요. 그들은 이해할 수 없이 낯설어진 상대에게 화를 내고 소리쳐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하지만 알 수 없어요.  그래서 누군가는 상처투성이인 채로 술독에 빠져 지내거나 바닥까지 추락해요.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롭게 만든 관계를 망쳐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리게 만들죠.

 

 결국 마지막에 이르면 앨리스와 댄의 관계도 정말로 끝이 나 버려요. 관계가 끝나버린 둘이 차분히 대화를 나누는 동안 카메라는 원숏(one shot)으로 그 둘을 철저히 분리해서 담아내요. 그리고 댄이 다시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려고 앨리스를 설득하면서 투숏(two shot)으로 둘의 모습이 담겨요. 하지만 둘이 같은 프레임의 공간을 공유할수록 둘은 더욱 충돌하고 소리치며 싸우기 시작해요.  마치 이제 더 이상 둘은 같이 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이에요. 그 순간에 댄이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너는 누구냐고 다그치자. 그녀는 “아무도 아니야.”라고 답하죠. 그 장면에서 제게 인상 깊었던 앨리스의 대사 중에 하나는 “지금부터 너를 사랑하지 않아. 그렇지만 너를 평생 동안 사랑할 수도 있었어.”라는 말이에요.

 둘이 헤어지고 난 뒤 댄은 몇 년 동안 알고 있던 그녀의 이름이 앨리스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죠. 그 이름은 둘이 처음 만난 날 간 공원에 써져 있던 묘비의 이름이었어요. 그녀가 정말로 사랑했던 그에게 그녀는 정말로 끝까지 낯선 존재였던 거예요. 그리고 오프닝 장면에서 나왔던 노래가 그대로 흘러나오고 앨리스 아니 제인이라는 본명을 가진 그녀가 오프닝 장면처럼 인파 속을 걸어가면서 영화가 끝이 나요. 그녀는 다시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겠죠.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도 그녀는 타인이겠죠.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오프닝 장면에서의 모든 것들을 다시 한번 곱씹게 돼요. 마치 이별을 하고 난 뒤 첫 만남을 생각해보는 것처럼 말이에요. 오프닝 장면에서의 낭만적인 첫 만남의 순간들. 그리고 그것을 비웃듯 흘러나오는 이별에 관한 음악과 첫 대사이자 첫 장면의 마지막 대사인 “hello, stranger.” 심지어 초반에 올라오는 타이틀까지 말이에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란 가깝고도 먼 존재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나도 사랑하는 존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내가 아닌 철저한 타인인 것이죠. 그렇기에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겠죠. 

 

 *추신 그렇다고 영화는 사랑에 대한 교훈적인 메시지 따위를 전하지 않아요. 이 영화가 더 훌륭한 건 사랑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것이지 않을까 하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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