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미화시킨 채로 쓰는 회고
그로스마케팅 인턴에서, 개발자 없는 커머스의 1인 웹 PM으로. 치열한 1년 10개월을 보낸 뒤 퇴사했다. 이 회사에 들어온 건 정말 인생에 다시없을 큰 행운이었음을 느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2년가량의 시간을 마무리하며, 느낀 점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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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에서는 우선순위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어느 정도였냐면 행동강령 같은 곳에 '우선순위 설정'이 있을 정도. 다들 정말 입에 우선순위를 달고 살았다. 나는 이 회사 입사 전 까지는 사실 우선순위설정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이곳에서 기승전 우선순위를 입에 달고 살다 보니, “우선순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정말 많이 하게 됐다. 방법론도 찾아보고, 일상생활에서도 우선순위 방법론을 적용해도 최대한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보려 했다.
다른 직종도 물론 마찬가지겠지만, PM은 특히나 우선순위 설정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밑도 끝도 없이 발생하는 오류들의 우선순위, 타 팀에서 물 밀듯이 들어오는 개발 요청들. 팀 내에서 개선하고 싶은 요소들 등등. 우선순위를 잘 설정하지 못하면 산으로 가버릴 수 있다. 근데 이게 완전 병아리 시절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우선순위 설정만큼 중요한 역량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더라.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이 회사에서 그 중요성을 잘 배웠다고 생각한다. 정말 완전히 체화하려면 갈 길이 멀지만...
이 회사에서는 우선순위와 마찬가지로 중요했던 것이 속도였다. 그러니까, 우선순위를 잘 설정한 다음, 엄청난 속도로 액션을 실행해야 하는 것. 하나의 기능 개발에 이틀이 걸린다? 그럼 붙였던 살들을 이렇게 저렇게 덜어내고, 뼈대로 만든 다음에 “이렇게 하면 하루 만에 가능한가요?” 가 된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에 비해 우월한 것은 작고 민첩한 덩치이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실행하고 실패해 보고 다시 도전하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이 속도에 익숙해지면, 다른 회사랑 협업하기가 답답해진다. “아니 반나절이면 될 것 같은데 이게 일주일이나 걸린다고?” 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 지를 여쭤보고, 그 과정에서 내가 대신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뭔지, 혹은 다르게 우회하여 해결해 볼 수는 없는지도 생각해 보고, 또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정말 회사의 조직 체계로 인한 문제라면 ‘저 회사는 저런 워크플로우를 가지고 있구나. 다음에 요청할 때에 참고해야겠다.’ 하고 머리에 저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늘 협업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는 속도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다. 그렇다 보니까 우리가 도와서 빠르게 해결될 일이 있다면, 그렇게 해서 업무 속도를 빠르게 만들 수 있다면 언제든 먼저 말씀해 주시길 바란다.” 고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요청을 잘 안 하셔서, 정말 매주 말씀 드리기도 하고, 내가 먼저 제안하는 경우도 있었다.
협업하면서 속도를 가장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건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특히 개발 에이전와 개발할 때는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QA 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게 업무 속도에 최고라는 것을 배웠다. 정확하게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이 개발로 인해 영향을 받는 요소들을 파악하고, 우려사항들을 고려하고, 얼라인을 잘하고, 미스컴을 없애고... 늘 해도 해도 어려운 부분이지만, 업무를 빠르게 하는 것보다는 더블워크를 줄이는 게 최고의 속도 향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사소하지만... 협업사마다 선호하는 툴이 다른데, 이건 우리에게 맞추기보다 그들에게 맞춰서 그들이 협업을 위해 툴에 적응하는 시간도 최소화했다. 차라리 내가 툴에 적응하는 게 낫지. 사소해 보이지만 은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문화 때문에 죄송한 경험도 많았다. 빠른 속도를 위해 급하게 수정, 배포되는 정책이 많아, 개발도 급하게 요청하는 일도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떡해. 결정 직후 최대한 빠르게 요청드리고 욕먹을 각오 하는 수밖에... (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협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다.
(3)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