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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무서워 도망치듯 이동하다

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11탄

by 공구부치 Feb 18. 2025


울란우데라는 작은 도시는 몽골에 가까워 나와 비슷하게 생긴 분들이 많은 도시였다.


우린 오후 2시쯤 도착해 일단 그동안 묵혀있던 빨래를 하기 위해 검색을 통해 찾아 놓은 코인빨래방으로 차를 몰았다.


얀덱스(러시아 내비게이션)는 우리를 낡은 아파트 단지로 안내했고 아무리 봐도 이런 곳에 ‘코인빨래방’은 없을 것 같았다.


이 아파트 지하에 빨래방이 있다

하지만 믿고 네비가 가리키는 열리지도 않을 것 같은 철문을 열자 지하에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여기서 빨래 못하면 빤쮸 뒤집어 입을 뻔했는데 진짜 다행이다….’


(시베리아 횡단여행에 익숙해지며 알게 된 정보를 나누자면 횡단 도로의 휴게소인 많은 ‘카페(кафе)’ 중에 시베리아 횡단여행자를 위해 샤워(душ), 빨래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있다.

카페 주차장에서 차박을 하며 빨래를 맡기면 다음날 건조까지 해서 주는 카페들이 있으니 잘 찾아 여행을 하면 된다.

하지만 울란우데에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도 초보여행자였기에 이런 정보가 없었다. )


가방 가득 욱여넣은 냄새나는 빨래를 가지고 내려가보니 무뚝뚝한 러시아 아주머니가 계셨고 우리에게 못 알아듣는 러시아어를 몇 마디 하더니 소통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말은 멈추고 손가락으로 안내표지판을 가리켰다.



우리의 빨래를 보여주자 2대에 나눠 담으라는 손 짓을 했다.

시키는 대로 하고 돈을 지불하자 4시간 후에 찾으러 오라고 했다.


빨래가 다 되는 동안 꼼짝 못 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우리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진 것이었다.


짝꿍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다며 지도를 보며 나를 이끌었다.


“레인의 얼굴 동상 … 사실 너무 괴기하다…”

“이게 이 도시의 관광명소야.. 얼마나 큰지 너 동상 앞에 서봐”

찰칵찰칵

“레닌은 죽어서 자신이 이렇게 이곳저곳에 동상으로 세워질 것을 기대했을까..?”

“이런 걸 바라진  않았을 것 같은데..? 심지어 자기 머리동상 밑에 전쟁 승리 현수막 같은 것도 있어 “

“다음으로 이동!!”

울란우대 도시 거리


“분명 여기라고 나오는데…”

“뭘 보고 싶은 건데?”

“공산주의 혁명 기념탑.. 그 옛날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도 이곳에 와서 함께 러시아 혁명싸움에 싸웠다는 기념탑“

“아! 여기를 그때는 기차 타고 올 수 있었겠네”

“그렇지 그땐 배로 오지 않고 북한을 통해서 기차로 올 수 있었겠지”

‘공산주의로 분투하다가 전사한 동무들에게‘ 라고 적혀있다.


“공산주의와 독립군.. 이런 커넥션으로는 생각 안 해봤는데.. 복잡해지는구먼.. 근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러 다양한 사상과 이념이 토론되고 주장될 수 있는 것 아냐?!"



어쨌거나..

기차 타고 유럽까지 갈 수 있었던 옛날이 부러웠고

너무나 낯선 이곳에 쓰여있는 ‘동무‘라는 글자에서 한동안 눈을 때지 못했다


“다음은 어디?”

“이제 볼 건 다 봤고 아르바트 거리로 가서 커피 마시다가 빨래 찾으러 가자”


시간에 맞춰 빨래를 찾아 ‘레디’와 차박지로 향했다.

이곳은 우리가 유라시아횡단 여행을 시작하기 이전에 ‘모치넬로’라는 유튜버가 차박을 하며 있었던 곳으로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며 그곳이 어딘지 단서를 찾아 겨우 찾아간 곳이었다.



옆으로 강이 흐르는 쇼핑몰 주차장으로 아침에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좋고, 경치도 일품이었다.

밤이 되기 전까진 말이다….

최고의 차박지로 기억될 뻔한 곳

주차만 하기 미안해 건물 안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캠핑카 안으로 돌아와 창밖 노을을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밖은 어두워졌고 주차장엔 우리만 남아 있었다.


밝은 헤드라이트가 주기적으로 우리 차를 비추는 느낌이 들어 우린 미어캣처럼 캠핑카의 모든 불을 끄고 창밖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여보 차 한 대가 쇼핑몰을 계속 돌고 있어… ”

“한 대가 아닌 것 같아. 아까 저 차도 이 주변을 돌고 있었는데..”



자정이 되기 전에 저들이 집에 가서 자겠지 했지만 11시가 다 되어가는데 더 많은 차들이 주변에 모여들었고 심지어 굉음을 내며 드리프트를 하는 차도 생겨났다.



“왜 저 차는 한 곳에서 계속 돌아?”

“저게 드리프트라는 기술이야…”

“그리고 저 차는 왜 그렇게 제트기 같은 소리가 크게 나는 거야? “

“배기관을 튜닝한 건데.. 우리나라에서 저러고 다니면 바로 신고당할 텐데.. 여긴 괜찮나 봐…”

“너무 시끄럽고 무서워서 못 자겠다…”

“그래 여기 있다간 뱅뱅 돌고 있는 저 차에 부딪혀도 이상하지 않겠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저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빈 주차장에서 한 놈은 뱅뱅 돌고 있고, 한 놈은 자기 차 배기통에서 나는 괴기한 소리를 즐기며 천천히 갔다가  풀 액셀을 밟았다 섰다를 반복하고 다른 차들은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지 젊은이들 무리가  주차장에서 서성거리며 구경하는 듯했다.


우린 조용히 차를 몰고 레닌동상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이럴 때 워크스루로 캠핑카를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핑카 안에 있다가 밖으로 안 나가고 다른 조치 없이 바로 운전석으로 가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디’를 만들 때 우린 유라시아횡단여행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여자 둘이 긴 여행을 하면서 캠핑카 ‘레디’ 안에서는 안전하다고 느끼고 싶어 몇 가지 장치를 한 것이었다.


첫째는 캠핑카 내부에서 운전석으로 바로 갈 수 있게 통로를 만들면서 미닫이 문에 잠금장치를 달았던 것이었고,

두 번째는 밖으로 나가는 문에 철문을 달고 잠금장치를 해두어 안전한 곳에서는 철문이 테라스로 사용되고, 대부분 닫아두어 아무도 침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만들 때는 고생하며 만들었지만 여행 중에  안전에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니 뿌듯했다.


다음 날 새벽 도로에 차가 별로 없는 틈을 타 잠들어 있는 짝꿍을 깨우지 않은 채 차를 이동해 울란우데 전경이 다 보인다는 불교 사원 ‘린포체 박샤’에 도착했다.


우린 이곳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주변을 산책하듯 둘러보고는 다음 도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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