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violet. 아이는 마켓컬리, 엄빠는 마소
저는 육그램에서 유일하게 제 분신이 있는 violet이라고 해요. 이제 막 4살이 된 제 분신은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최고급 입맛을 갖고 있어요. 다른 집 네 살배기와는 달리 젤리도 아이스크림도 싫어해요. 우리 꼬꼬마가 좋아하는 음식은 소고기에요. 그것도 무조건 투플. 이유식을 시작할 때 첫아이니까 엄마 욕심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백화점에서 손바닥만 한 고기 4만 원, 5만 원짜리를 사다 갈아서 익혀 먹었어요. 무항생제, 아기용 첫 고기 이런 거요.
그래서일까요? 아이가 소고기를 알아요. 정말 안다는 말 밖에는 안 나와요. 저랑 남편이 먹어도 우와~ 소리가 나오는 고기면 맛있다고 계속 달라고 해요. 계속 “엄마, 꼬기~” 그럼 남편은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먹이고 싶다며 한 점씩 구워요. 그렇게 구워진 한 점을 제게 넘기면 호호 불어 아이 입안이 다치지 않게 적정 온도를 제가 체크하고 아이 입에 쏘옥 넣어줘요. 더 웃긴 건 소고기를 히말라야 솔트 조금 갈아준 거에 찍어 먹어요. 처음엔 그냥 고기만 먹였고 그다음엔 으레 어른들이 먹는 쌈장 조금 찍어줬는데 우리 집 꼬꼬마는 오로지 소금이래요.
제 분신이 이렇게 잘 먹어주니 고마울 뿐이죠. 그래서 되도록 좋은 고기 잘 챙겨 먹이려 노력해요. 비싸도, 그게 엄마의 마음 아닐까요? 물론, 현실적으로 저랑 남편은 아이 고기 굽고 남은 기름에 밥 볶아 먹거나, 가성비 고기로 유명한 마장동소도둑단에서 시켜 먹거나 하지만요. :)
제 이전 직업이 에디터였고 지금은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일을 하고 남편은 사진작가라서 다들 우리 집 주방 인테리어가 엄청 감각적일 거라 으레 짐작들 하세요. 그런데 분신이 태어나고 나서는 정말 난장판 그 자체예요. 그저 아이가 잘 먹어주고 안 다치고 안 깨 먹어주길 바랄 뿐이에요. 무엇보다 아이가 이제 4살이 되니까 어디 가만히 앉아서 먹질 않아요. 나름 고심하고 제 취향 한껏 담아서 산 유아용 보라색 의자는 이미 먼지가 앉기 시작했다니까요.
화이트 앤 우드톤으로 맞춰 신혼집을 꾸몄죠, 깔끔하고 밝은 느낌의 집으로 만들길 원했거든요. 그런데 우리 분신이 함께한 뒤로 점점 집은 알록달록해져요, 곳곳에 아이 장난감. 실수로 아이가 흩뿌려놓은 레고 밟기라고 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발가락 부여잡고 새어 나오는 비명을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고 눈물 찔끔 흘리며 참아내요. 혹여나 큰소리가 나서 겨우 잠든 우리 꼬꼬마가 깰까 봐요.
우리 꼬꼬마가 태어나기 전에 저를 가끔 회상하곤 해요. 나름 트렌드를 주도하는 업계에서 트렌드를 사람들에게 읽어주며, 또 남편이 찍는 사진을 기반으로 트렌드를 만들어 왔던 거 같아요. 가성비라는 단어보다는 감각이라는 단어가 제 삶의 일부였어요. 그런데 어느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우리의 분신이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오고, 조금은 삶의 색이 바뀌지 않았나 싶어요. 아이에겐 제가 아는 최고의 경험을 선물하고, 저랑 남편은 어느새 가성비를 찾지만 그게 희생이라기보다는, 엄마, 아빠의 색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엄마니까, 아빠니까 가질 수 있는 색이요.
고기를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소 접촉이 불가능하게 진공포장을 해요. 그럼 우리가 아는 분홍색이 아니라 검붉은 색을 띄어요. 언뜻 보면 상했나? 싶기도 해요. 그런데 그건 가장 신선한 상태로 보관되는 고기에요. 그런데 고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뭔가 찝찝한 느낌을 받곤 해요. 아이가 먹고 난 고기 기름에 밥 볶아 먹는 우리, 아이는 투플이지만, 우리는 수입산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희생’만 떠올리며 부모가 된다는 것에 조금은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말해주고 싶어요. 부모라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라는 것. 진공 포장된 고기 색과 비슷하다는 걸 말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