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그램 매거진 『MEATing』_고기를 통해 만나다
안녕, Angelina :
안녕하세요. 육그램의 최전선을 담당하는 angelina라고 합니다. CS 담당으로 고객님들과 가장 가까이서 소통을 진행하고 있죠.
음, 제가 좋아하는 고기? 사실 고기하면 떠오르는 에피소드는 있어요. 지금 제 옆에 있는 남자와의 첫 만남? 아닌가, 두 번째 만남이라 해야 맞을까요? 저랑 제 연인은 첫 만남에 헐벗은 모습으로 만났어요. 이렇게 말하면 다들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다른 건 아니고 그는 수영 강사였고 저는 수영 수강생이었거든요.
오랜 직장 생활로 몸이 좀 부은 것 같아서 집 근방 수영장에 등록했어요. 수영모 야무지게 챙겨쓰고 물안경, 원피스 수영복까지. 완벽한 모습으로 그를 처음 만났어요. 처음 만난 그는 뭐, 재수 없다. 였던 거 같아요. 수영이라는 운동이 처음이니까 당연히 못 하고 모르는 건데, 그럼 내가 좀 익숙해질 시간을 줬으면 좋겠는데 강사는 그게 아닌 거예요. 저 수강생은 왜 내 말을 안 듣고 왜 자꾸 자기 마음대로 허리에 힘을 주는지, 되게 답답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정말 짜증나고 재수없는 존재였던 거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 말투가 자기 엄마랑 똑같다며 장난 아닌 장난을 걸어 오더라고요. 그렇게 운동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어머니와 제가 공통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렇게 공통분모를 쌓던 중, 코로나로 그가 이제 수영장을 그만 두는 날이었어요. 그의 마지막 수업이었는데 그날 애매하게 늦게 끝나서 수영을 가자니, 10분 지각할 거 같고 지각하면 또 한소리 들을 것 같고. 그래서 안 갔어요. 그랬더니 연락이 오는 거에요. 이제 퇴근하는데 치소(치킨&소주) 어떻냐고.
마침 비도 추적추적 오고 가로등 불빛도 촉촉하니 한잔 당기던 참이라 흔쾌히 나갔죠. 그런데 당시 코로나 영업 제한으로 진짜 둘이서 대화보다는 먹는데 집중하고 끝났던 거 같아요.
그리고 한동안 서로 연락을 안 했어요. 그런데 뜬금없이 또 갑자기 연락이 오는 거예요. 맛집 같이 가자고. 그래서 을지로에 제가 자주가는 삼겹살집을 추천했어요. 그날도 비가 왔던 거 같아요. 비오는 날 약간 끈적거리는 스댕(?) 테이블에 다닥다닥 모여 앉아 기름 낀 창문 위로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방울 감상하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날 이 남자다 싶더라고요. 삼겹살이 익는데 제 감정도 익는 느낌? 음식 취향, 음악 취향, 웃음 포인트, 극대노 포인트가 너무 잘 맞았어요. 그렇게 세 번째 만남에서 삼겹살 굽다가 아 이 남자구나. 싶어 다음 만남도 그 다음 만남도 적당히 튕기면서 추진했죠. 그리고 지금의 우리가 됐죠.
이제 2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막 설레고, 모든 게 멋있어 보이는 시기는 지났죠, 사실. 그래서 더 좋은 거 같기도 해요. 나니까 볼 수 있는 모습, 나한테만 보여주는 저 내츄럴한 모습. 짜증 날 때도 분명 있죠. 그런데 또 그 자연스러움에 이렇게 서로에게 녹아 나는구나, 싶기도 해요.
우리 사랑은 제가 좋아하는 삼겹살집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깨끗하고 넓고, 환한 느낌의 프렌차이즈 식당은 별로 안 좋아해요. 저는 조금 끈적거려도 기름 냄새 고소하게 풍기는 스댕(?) 테이블에 불편해도 내 마음대로 거리를 좁혀 앉을 수 있는 파란 플라스틱 동그란 의자, 커다란 창에 프렌차이즈 로고가 붙어 있는 창보다는 작더라도 나무로 테두리가 달려있는, 그 어떤 로고도 없이 세월의 흔적처럼 내려앉은 기름 때문에 바깥세상이 뿌옇게 보이는 그런 창문. 조금은 꼬질꼬질하지만, 내 감성, 내 해석대로 볼 수 있는 그런 삼겹살집이 좋거든요.
세상에 가장 멋진 사람이라고 말은 못 해요. 그런데 그는 저한테만큼은 참 다정한 사람이거든요. 애교도 참 많고, 어설프면서도 궂은 일은 본인이 다 하려 하고. 뭐 요즘 말하는 ‘사’자 직업은 아니지만, 본인만의 생각으로 아직도 꿈을 꾸고 노력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모습이 어떤 사람들 눈에는 초라하고 별로일 수 있는데 저한테만큼은 제가 좋아하는 삼겹살집 같거든요.
그래서 이 사랑 끝이 무엇일진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려고요.
육그램이 고기에 최선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