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EATing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그램 Mar 25. 2022

빵 굽는 두부 엄마

육그램 매거진 『MEATing』_고기를 통해 만나다

안녕, zoni :


육그램의 비주얼을 책임지고 있는 디자인 팀장 Zoni라고 해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빵 굽는 시간이에요. 부드러운 반죽을 조물딱 거리는 것도 그 손끝에 느껴지는 차가운 듯 부드러운 촉감을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빵이 구워지면서 나는 그 노릇노릇한 냄새, 고소한 냄새가 방 안에 가득차면 그 보다 행복한 게 어디 있을까 싶어요. 다 만들어진 빵에 제가 좋아하는 크림 한가득 넣어요. 제가 차는 양만큼 가득! 그리고 접시에 예쁘게 올리고 사진을 찍어요. 그러면 저와 9년이란 삶을 함께한 두부가 앞에 앉아요. 가만히 앉아서 제가 사진 찍는 걸 지켜봐요. 덕분에 혼자 살지만, 외로울 틈이 없어요.. 항상 제 곁에 머물러주는 우리 두부가 있어서. 

▲ 조니가 만든 쿠키와 그걸 갈구하는 두부의 아련한 눈빛

이렇게 빵 냄새로 집 안을 가득 채우고 나면 하루 한숨으로 가득했던 그 지난한 시간이 행복한 냄새로 뒤덮이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제가 열심히 구운 빵을 맛있게 먹어줄 제 연인을 초대해요. 그럼 우리 두부처럼 신난 표정으로 와서 두부 옆에 앉아 제가 만든 빵을 맛있게 먹어줘요. 그걸 바라보면서 재잘재잘 저의 하루를 공유해요. 그럼 묵묵히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힘들었겠다, 그래도 오늘 하루 잘 견뎠네? 기특하다.” 


갓 구운 빵처럼 따뜻한 말을 저에게 건네줘요. 그럼 그렇게 힘들었던 하루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에요. 

이렇게 사랑하는 두부와 곰 같은 연인. 이 둘을 위해 베이킹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과제빵 기능사도 땄어요. 조금 더 전문적으로 잘 만들어주고 싶어서. 우리 두부가 먹는 거 엄마인 저보다 저 꼼꼼하게 챙겨줄 사람 솔직히 없잖아요? 그래서 멍멍이용 제빵도 시작한 지 조금 됐어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두부가 먹을 거니까 건강한 식자재로 가장 최상의 간식을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이 들더라구요. 처음엔, 아이 입맛을, 그 다음에는 식감과 색 조합을 그다음에는 직업정신(?)을 살려 디자인적 요소를 욕심내면서 조금씩 발전해 온 것 같아요. 

▲ 엄마가 만든 슈크림빵... 어서 내게 줘.... 왜 안 줘...

제 연인 곰님은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제가 해주면 다 맛있다고 웃으면서 밥 한 공기 싹싹하는 사람이라 사실 그렇게 크게 신경 쓸 건 없었어요. 그런데 그냥 사랑하니까, 내 사람이니까 제가 욕심이 나더라구요. 제 욕심으로 점점 식탁이 한가득 메꿔지는 중이에요. 요즘 가장 많이 해주는 건 통항정살을 에어프라이에 구워 주는 건데, 간편하기도 하고 제가 좋아해서요. 그렇게 구워진 항정살, 쌈장 조금, 야채 쌈 조금, 밑반찬 몇 가지, 그리고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생각보다 꿀조합인 제가 만든 크림빵을 한 켠에 가득 쌓아 차려내요.


항정살의 꾸덕꾸덕한 기름진 맛과 크림빵의 달달하면서 입 안에서 뭉개지는 식감. 먹어봐야 안다니까요. 개인적으로 식감을 정말 중요시하는 사람인데, 아보카도, 통항정, 돼지껍데기, 그릭 요거트 같은 뭔가 꾸덕하면서 크리미하고 쫀득한 느낌의 식감을 좋아하거든요. 고기에서 이 식감을 만족시켜주는 부위는 항정살 뿐인 거 같아요. 

▲ 귀여운 건 두 번 보고 세 번봐도 모자라니까, 조니에게 땡깡 피워 받아낸 두부 사진

그렇게 한가득 차려낸 상에 제가 만든 두부 간식까지 올려 우리 셋이 저녁을 먹어요. 저랑 제 연인은 서로가 함께하지 못했던 일상을 상세히 공유하고, 현재 각자가 하는 고민을 공유하고, 또 우리가 함께하게 될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 보기도 하고. 그럼 두부는 귀를 쫑긋 얼굴을 좌우로 갸우뚱하며 알아듣는다는 듯 대답을 해줘요.


이렇게 나열하다 보니 우리의 저녁 시간이 빵 굽는 것과 정말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별거 아닌 밀가루가 사람의 손길을 거쳐 노릇노릇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구워지듯, 그냥 오늘을 살아가던 저와 제 연인과 두부가 서로를 만나 노릇노릇 따뜻한 우리만의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여러분의 오늘은 어떤 빵 냄새를 닮아 있을지 참 궁금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헐벗고 만난 첫 만남, 삼겹살 구운 세 번째 만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