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EATing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그램 Mar 28. 2022

오롯이 혼자인 시간을
부유하는 행복

육그램 매거진 『MEATing』_고기를 통해 만나다

안녕, Nic :


부유(浮遊), 뜰 부, 놀 유. 제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에요. 부유하는 시간. 집 소파에 또는 침대에. 내 집 어딘가에 가만히 둥둥 떠 있는 그 느낌, 집돌이집〮순이라면 다들 아실 거라 믿어요. 


그렇게 부유하다, 거실 창을 통해 쨍하게 들어오던 햇살이 조금은 찐득해진 느낌이 들면 ‘아, 점심이구나.’ 생각이 들어요. 사실 먹는 행위 자체에 큰 흥미를 느끼는 사람은 아니에요. 생존을 위해 먹는? 무얼 먹는가 보다, 어떤 느낌으로 누구와 먹는가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하면 조금은 이해가 쉬울까요?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주말에 종종 삼겹살을 시켜요. 왜 집에서 굽지 않느냐고요? 집이 그렇게 크지 않아요. 기름 튀고 냄새가 온 집에 배기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저는 항상 집에 우디향이 가득 담겨있길 원해요. 그 외의 냄새가 개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숲을 훔쳐 온 듯한 향기 속에 부유하는 그 오롯한 행복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삼겹살을 시킬 때는 그 어떤 추가 메뉴도 시키지 않아요. 고기 그리고 밥. 그렇게 고기가 도착하면 끈적한 햇살이 닿는 그곳에 음식을 펼쳐 놓아요. 그리고 아이패드로 예능을 틀어요. 적막을 잠시 깨 줄 적당한 소음. 그리고 한손에는 핸드폰을 들어요. 미국 증시도 살펴보고, 경제 기사도 살펴보고 SNS 속 스낵 콘텐츠를 소비하기도 해요. 그러다 구미를 당기는 소리가 아이패드에서 흘러나오면 고기 한 점 집어 들고 아이패드 화면에 한참 시선을 머물러요. 그리고 고기 한 점을 입으로 밀어 넣어요. 적당한 촉촉함, 지금 당장 떠올린 그 맛. 맞아요. 그 맛이 입안에 가득 차요. 오물오물 삼겹살을 씹고 밥 한술 크게 떠서 입으로 넣어요. 그리고 쌈장 조금 떠서 다시 한번 입으로. 


그런 나른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배가 불러요. 더는 먹고 싶다는 욕구가 없죠. 그럼 이제 몸을 일으켜 상을 정리해요. 남은 음식은 반찬통에 옮겨 담고, 햇빛이 녹아내린 상은 걸레포로 한번 훔치고. 


그리고 다시 부유의 시간을 가져요. 혼자라서 외롭지 않냐는 말. 조금은 지겨워요. 혼자라서 즐길 수 있는 게 있잖아요. 이렇게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밥을 먹으며 그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 쓰지 않는 것도 말이에요. 그리고 내 취향으로만 가득 찬 내 공간도. 혼자이기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사람이 그리울 때는 나가요. 나가서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시끌벅적한 번화가를 거닐어요. 그렇게 또 사람 냄새 가득 머금고 돌아와요. 그리고 또 내 마음 편한 내 공간에서 부유하죠. 


그냥 저에게 삼겹살은 주말 냄새 그 자체라고 해야 할까요?
당신에게 삼겹살은 어떤 냄새인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빵 굽는 두부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