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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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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구 Jul 19. 2018

스토리 스토리 나이트~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1-1. 게임

어렸을 때의 나는, 스토리가 없는 게임은 좋아하지 않았다.

스토리가 없는 게임에 몰입할 수 있을 만큼 집중력이 좋지도 않았고.

강해지기 위한 레벨링이나, 더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한 채집도 무의미한 반복행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껍질 좀 모아보겠다고 나무정령에 열심히 주먹질하다가도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멘붕이 오곤 했다.)

이처럼 엔딩이 없는 게임을 하는 것은, 목적지도 없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때문에, 나는 그 안에 스토리가 있어, 문학작품처럼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했던(자기합리화했던)

창세기전이나, 파이널판타지, 파랜드시리즈 등의 RPG장르 게임들을 즐겨했다.



#1-2. 예능

내가 매주 챙겨보는 예능 프로그램들도, 내가 좋아했던 게임들과 그 성향이 비슷했다.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였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스토리가, 시나리오나 대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다음 화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것. 이번화의 내용이 다음 화에 이어져서 다음 화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매 회를 사수하게 만드는 그런 것이다. 그런 스토리는 늪과 같아서 한 화, 한 화 챙기다 보면 더 깊이 빠져들어 프로그램 종영까지 발을 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이 스토리가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회를 거듭할수록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조금씩 형성되고, 인물 간의 관계들이 형성되기에 꾸준히 챙겨보는 것이 프로그램을 즐기기에 유리하지만.)


시대를 풍미했던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일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음화에 살아남을 도전자가 누굴지 기대감 속에, 프로그램에 젖어든 것이 아닐까.



#2-1. 게임

RPG 게임을 즐기며 초딩시절을 보내던 중, 우연히 발더스게이트라는 게임을 접하게 되었다.

스토리를 따라 진행되지만, 이전까지 내가 경험했던 RPG들과는 다른 월등한 자유도.

내가 선택한 결과에 따라, 주인공이 영웅이 되기도 하고, 지명수배자가 되기도 하는 등, 주인공의 성향이나 팀 구성원이 변했다. 심지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거들을 착용시키면 주인공의 성별까지 바꿀 수 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었던 게임이란 세계가 한 단계 발전하며 그 영역이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이 게임은 말 그대로 처음 만난 세계였다.



#2-2. 예능

게임, 선택의 자유

이쯤 되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감이 올 것이다.

킹왕짱갓제너럴예능, 두니아 이야기다.

두니아는 많은 부분들이 새롭다. 게임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제작된 것도 새롭고, 방송 중간중간 나오는 불법 다운로드한 영화 같은 B급 감성 자막도 신선하다. 

특히, 출연진들의 의상이나 소품을 시청자들의 사전투표로 결정한다는 점, 그 소품이 프로그램의 진행에 반영된다는 점은 초딩시절, 발더스게이트를 접했을 때만큼이나 새로운 충격이었다.


정점은, 실시간 투표에 의해 주인공들의 행동이 결정되는 부분이다.

특히, 시청자의 선택에 의해 윤호와 루다 중 사망자가 정해지는 부분은 이 프로그램의 백미였다. 스토리를 뒤흔들만한 칼자루를 시청자에게 주어줬다는 것도 물론 새롭고 신선한 시도지만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그걸 가능하게 만든 제작진의 노력이다.


7월 1일 투표로 윤호의 죽음이 결정된 후, 그 이후의 이야기들이 방송된 것은 15일이다. 2주밖에 안 되는 그 사이에, 결정된 스토리에 맞춰 촬영과 편집이 모두 완성된 것이다.


특히, 1일 이후부터 쭈니형과 미듀가 합류하여 2차 촬영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때, 7월 8일에 방송되었던

http://tv.kakao.com/v/387656091

쭈니형의 BAAAM했던 영상은 촬영과 편집, 송출이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한 주라는 마감기간 동안, 얼마나 피 말려가며 작업했을까.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만들어낸 제작진들의 노력이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3. '언'리얼버라이어티

무한도전 이후, 리얼버라이어티가 예능계의 주류를 이루었다.

다 같이 여행을 떠나는 것에서 시작하여, 군인이나 소방관 같은 특정한 롤을 부여하거나, 한 곳에 모아놓고 짝짓기를 하는 등 상황을 주고 그 안에서 사람들의 리얼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트렌드였다.

예능계는 특이점이 온 것 같은, 리얼버라이어티의 홍수 속에서 타 방송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보다 자극적인 설정과 소재를 선정한 신생 프로그램들이 난립하는 문제를 앓고 있었다.


그 가운데 두니아는 정반대의 노선을 걷기로 자처했다. '언리얼'을 내세운 것이다. 때문에 섬 한가운데로 갑자기 워프를 하게 되었다는 설정도, 공룡이 등장하는 설정도, 시청자들을 '절대 놀라게 하지 않았다.' 

리얼을 버렸기에, 프로그램은 자유롭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그것이 두니아의 매력이다.


마리텔이 그랬듯, 두니아도 설정과 스토리가 있는 프로그램이기에, 언젠가 프로그램을 마무리짓는 엔딩도 필요할 것이다. 진경PD님이 어떤 식으로 이 프로그램을 마무리 지어주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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