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년복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고, 나는 공부가 처져가는 고등학생이 되고, 막내는 자꾸 아프고, 그런 시절에 엄마는 반은 재미삼아, 반은 답답한 속풀이로 점을 보러 가신 적이 있다. 나 역시 내가 모르는 행운과 불운은 뭐가 있을까 싶어 돌아오는 엄마의 이야기가 기다려졌다. 다녀온 후 엄마는 좋은 얘기만 전하고 나쁜 얘기는 하나도 없었다며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셨다. 하지만 엄마의 작은 표정까지 읽을 수 있는 딸로서는 뭔가 듣고 온 나쁜 점사가 있는 것 같았는데 그때는 겁이나 실컷 묻지도 못하고 다 지난 과거가 된 후에야 들을 수 있었다.
나쁜 점괘 중 하나는 내가 고3에 사주에 글월 문자가 안들어서 올해는 대학을 못간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혼인 운이 둘째 동생이 먼저 들어와 잘못하면 나보다 먼저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신기하게 그 분은 정말 잘 맞췄는데, 난 재수를 했고, 스물이 한참 넘어서도 말승냥이처럼 친구랑 노는 것만 진심인 나랑 달리 동생 주변엔 항상 곧 결혼해도 무방할 신랑감이 많았다. 그러니 엄마는 남몰래 속앓이를 하셨을 것이다. 동생은 그 시기를 놓치면 34세나 결혼운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나를 먼저 보내겠다는 엄마의 일념 때문인지, 아님 동생의 배필이 천생연분이었는지, 내가 가고 동생은 34세에 제부를 만나 결혼을 했다. 참 신통하긴 했다.
점쟁이가 말한 것이 또 하나 특별한 게 있었다. 그건 엄마의 굉장한 말년복에 대한 것이었다. 우린 이건 꼭 믿고 싶었다. 그 점괘가 맞기를, 아니 일어날 것 같아 신이 났다. 뭔지 나도 콩고물이라도 얻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50대가 넘어 60대 중반이 되어도 영 대박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아버지가 사업을 접고 새 일은 잘 풀리지 않아 엄마까지 나서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치고 속이 상하면 넋두리처럼 말씀하셨다.
"그럼 그렇지,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했네, 내가 말년복이 엄청나게 좋다고 그때 점쟁이가 그러면서 일어나서 절을 하더라. 그때 자길 모른척 하지 말래, 그리고 다른데 가서도 말년운이 안좋다그러면 복채도 줄 것없이 침을 뱉고 나오라더라."
"이게 말년운이 좋은거냐? 내 팔자에 왠......"
그땐 말년운이란게 당연히 재물복이 일번이라 생각해서 우리는 기대가 컸고 실망도 컸다. 신기방기한 점쟁이는 단박에 웃기는 놈, 엉터리 허풍꾼이 되었다.
그랬는데 엄마는 정말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편안해지셨다. 불안불안한 아버지의 사업때문에 고생하는 일도 끝이 났고, 배수진을 치고 세상에 나아가야하는 자식들은 그만큼 단단히 커서 제 몫을 했다. 모두 건강했고 씩씩했다. 궁색한 살림이지만 엄마의 알뜰함 덕분에 편안하셨다. 또 자식 셋이 '무사히!' 순서대로 결혼을 하고, 당신 손으로 고생하며 길러주셨지만 잘 자라나는 손주들 보는 재미에 행복해 하셨다.
"소영아 내가 생각해보니 그 사람 말이 맞았어. 이게 정말 고마운 팔자 아니니? 내가 뭘 세상에 잘한 게 있다고 내 엄마는 받아보지 못한 호강을 자식들하고 사위들 덕에 누리니? 젊어서는 복이라면 떼돈이 들어오나 했는데 이제보니 이만한 팔자가 없다. 자식들도 다 건강하고 편안하고, 우리 손주들 이런 애들이 또 어딨나 싶고 과분하지 뭐니!조심스러울 따름이야
난 어느땐 미안한 생각이 들어. 너희 보면서 난 내 엄마에게 이만큼 못해드리고 보낸거 같다. 마지막에 하루 자고가라는 엄마 말도 안듣고 나온거 너무 후회돼."
엄마는 속으로는 좋은 일이 있어 우릴 자랑하고 싶은 맘이 가득 차더라도 그럴수록 혹시나 동티날까 입을 다무셨다. 세상에 막 자랑해서 누가 나쁜 맘이라도 먹을까, 자격없다 하여 신이 노여우실까 몸을 낮추셨다. 자식 가진 이는 가슴에 손 얹기전엔 큰소리하는거 아니라는 외할머니 말씀을 늘 하셨다.
엄마는 친구분들과 식사를 하시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 아쉬움이이야 내겐 지금도 가슴이 저리지만, 어쩜 제일 편안한 마음이실 때, 짧은 고통으로 가신 것도 어머니의 말년복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도 엄마처럼 그 삼일전 친정에 가기로 했다 취소한 것을 남은 평생 후회하며 살 것 같다.
지금도 딸 셋이 모이면 엄마의 말년복이야기를 한다. 그래, 엄마의 말년복은 정말 엄청났다. 그 덕이 흘러넘쳐 우리까지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