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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Jun 02. 2024

내몰리는 인간

올해는 걸어놓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바람의 무게가 과한가 싶다가도 주저함은 다 쓰고 없으니 머리를 굴려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게으를 때와 같이 부지런할 때도 몸을 머리가 따른다

축하 전화, 자랑스레 기억될 액자

걸어놓은 것들은 걸려 올 것들의 빚이다

못 갚으면 어쩌려고 이리도 바람이 불까

가볍던 1월에 무게추를 얼마나 걸어댔는가 1월은 무섭게 가라앉아 어느새 6월이다

여름치고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지만 내일이면 찌는 열풍이 불 것이다

모레면 낙엽의 달고 쓴 대추 냄새가 날 테고 글피엔 눈 섞인 찬 바람이 불 것이다

무섭다

관성이

소진이

셀 수 없는 바람이 내 등을 떠미는 것이

더 이상 바라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이

흐를 수도 거스를 수도 없어 고여 썩는 것이

참으로 무섭게 무거운 한 해다

내몰리는 것도 나아가는 거라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할 일은 자리에 눕는 것뿐이다

태초부터 누워있던 것들이라

일어섰다 해도 백 년을 채 걷지 못하는데

다시금 눕는 것은 왜

하나둘셋을 백번 세어도 시도조차 어려운 건지

고양이의 심장 소리 강아지의 스치는 꼬리

하얗게 우는 파도와

그 위에 떨어져 깨지는 별들과

빛과 소리를 쪼개는 나뭇잎들과

가물고 젖어 드는 것들이 내지르는 침묵을

모두 다 뒤로하고

해가 가라앉는다

밤으로 메말라가는 실낱같은 노을을 보며

내일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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