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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차희 Mar 08. 2023

자연스러운 불편함

4:37am

어떤 대형 행사에서 누군가가 몸을 날려 위험을 막아 준 사건이 꿈에 나왔다. 어질러진 행사장을 치우며 ‘나는 절대로 그 언니처럼 몸을 날릴 수 없을거야. 어떻게, 어떤 용기로 자기의 몸을 폭탄처럼 희생시킬 수 있었지. 나는 삶에 대한 의지도 별로 없으면서 그런 일에는 쉬이 나서지 못하는 것 같아.’고 생각했다. 그곳엔 친구 보아도 있었는데 보아는 아이 셋을 데리고 있었다. 그 애들을 버겁게 살피는 보아를 도와 먹던 식기류들을 설거지했다. 보아를 돕는건 나뿐이 아니었는데 셋이서 친하게 지내곤 했던 세모와 함께였다. 세모와 일을 끝마치고 우리는 어떻게하면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얘기했다. 나는 작가가 꿈이었고 우리 둘 다 사회에 도움이 될만한 일까지도 하고 싶어했다. 그렇지만 그건 우리가 꿈을 이루고 나서도 할 수 있지 않냐며 서로를 다독였다.


공동의 이익과 선을 위해 개인이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행위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 한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일은 나에게 꿈같은(꿈 속이니 정말 꿈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죽음이 모두를 살린다는건 결코 건강하지 않은 사회일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무언가의 위험을 막아야한다면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일거라고 생각 해 왔다. 사실 어떤 사회문제들 앞에서 목소리를 내고 분노하고 행동하는 일이 나에게는 위험을 감지하고 막는 개인들 같아보인다. 나는 언제나 뒤에서 숨어서 따라갈 뿐이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몸을 지독히 사리는 내가 미웠나보다. 꿈에서도 역시 꿈같은 일이었다. 최근 우주와 더지를 만나 그간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더지는 오래 전 나와 같이 사회문제들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했던 친구다. 나는 그에게 지금보다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얘기했고, 내가 공부했던 것들이 어떤 시간들을 통과해 자연스레 남아 천천히 쌓여가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내가 아무리 옳다고 생각하고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들도 내 몸에 새겨지지 않고 그저 통과만 해버린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하나둘씩 내어주고 결국 가장 나에게 중요한 것 한 가지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건 ‘나에게 얼마나 편안한가’였다. 억지로 무언가를 의무감에 하지 않고 나에게 충분히 소화되고 익어 삶에서 뿜어져나오는 일들을 바란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며칠간 곱씹으며 우리가 오래 전 가장 많이 불렀던 외침이 아이러니하게도 ‘불편함’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우리는 언제나 불편해야만 한다고 노래했다. ‘불편, 분노, 눈물, 어리석음의 축복’. 그 노랫말은 이러했다.


‘주여 우리들을 불편하도록 축복하소서. 손쉬운 답변들과 반쪽짜리 진실들 허울뿐인 관계에 견디지 못할 불편함을 느끼고 우리가 용감하게 진실을 추구하며 마음깊이 사랑할 수 있도록.’


불편과 비슷한 맥락으로 분노하도록, 눈물 흘리도록, 어리석을 수 있도록 축복해달라는 노래였다. 불편함을 자처했던 시절에서 나에게 얼마나 편안한가로 걸러진 시간의 변화가 왠지 씁쓸했다. 나에게 통과되어 남는 것들만 기다리는 일은 얼마나 수동적인가. 그리고 얼마나 편안한가. 얼마나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가. 그러나 고민 끝에 나의 이 편안함은 불편함의 반대가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나는 잘못된 단어들을 비교하고 있었다. 편안함 보다도 ‘몸에 뱀’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친구 보아를 돕는 일이 억지스럽지 않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것은 그건 내게 억지스러웠던 시절을 지나 몸에 배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는 일까지는 아직 나에게 억지스럽기에 아직은 하지 못하는 일일 것이다. 세모와 이야기나눴듯 사회참여를 내 꿈에 껴맞추는 일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스러움이다. 중요한 건 불편함이 내게 얼마나 체득되었는가, 그래서 이것 역시 아이러니하지만 얼마나 자연스럽게 불편할 수 있는가, 일 것이다. 폭탄처럼 몸을 날리진 못했어도 행사장을 다함께 정리하며 어떤 이들의 용기를 곱씹어보는 것이 새로이 몸에 새겨보는 일일 것이다. 새겨진 불편한 용기들이 나에게 자연스러워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2023년 3월 8일 수요일


자연스러운 불편함, 4:37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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