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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래 Apr 23. 2021

사랑에 빠진 것처럼

[사람여행] 인도 우다이푸르

우다이푸르에서 나는 아주 예쁘장하게 생긴 독일인을 만나는 바람에 그 사람이 보여주는 우다이푸르만을 여행해버렸다. 그 때문에 혹은 나 때문에, 나는 우다이푸르에 머무는 일주일 남짓의 시간 동안 시티팰리스 같은 유명 관광지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그의 낡은 자전거 뒷좌석에 앉아 우다이푸르를 천천히 관망하고는 했다. 


그는 우다이푸르에서 가장 부지런한 장기 여행자였다. 매일 아침 일찍 요가를 하고, 대부분의 끼니를 직접 만들어 먹었으며, 일정한 시간에 인도인 친구와 함께 피촐라 호수를 헤엄쳤다. 나는 고작 일주일을 머물러 가는 여행자였음에도 그에 비해 매우 게을렀다. 그가 매일같이 아침 요가 수업에 와보라고 했지만 늘 늦잠을 잤고, 마지막 날에야 간신히 요가 수업이 끝난 그를 데리러 갈 수 있었다. 


그와 나의 숙소 사이에는 다리가 있었고 우리의 거리는 그만큼 떨어져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날마다 함께 시간을 보냈다. 우다이푸르 내에서는 여행자의 행동반경이 좁은 편이기도 했지만 그와의 마주침은 아주 자연스럽게 하루 일과를 함께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그도 나도 우리 둘 사이에 다른 여행자의 공간은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이른 아침에 동네 꼬마 아이가 파는 짜이를 휘휘 저으며 '가람 짜이, 아오, 베토!' (따땃한 짜이, 이리 와, 앉아)를 외치고 있을 때면, 그가 자전거를 타고 내 앞을 지나가다가 멈춰 서고는 했고. 내가 늦은 오후에 머물던 숙소 옥상에 가만히 누워서 빨리 해가 넘어가기를, 뜨거운 열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면, 문득 그가 찾아와 호수에 수영을 하러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물론 나는 그 당시 수영을 할 수 없어서, 그가 수영하는 모습을 구경해야 했지만. 



짜이짜이 가람 짜이 / 피촐라 호수



하루는 그가 나를 숙소로 초대했다. 건물 사이사이에 끼어 있었던 그의 숙소에는 중정이 있었는데 중정을 제외하고는 볕이 잘 들지 않아 그런가 우다이푸르의 평소 날씨에 비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며칠 동안 라자스탄의 더위에 지쳐있던 나는 그의 숙소에서 금세 나른해지고는 했다. 함께 장을 보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요리하는 그를 돕고, 옥상에 천 쪼가리를 깔고 앉아 그가 만든 베지 카레를 맛있게 먹고, 그의 방에서 노닥이다가, 호수에서 수영하는 그를 감상(!)하고, 저녁 산책을 하고, 늦은 밤까지 속삭이던 날들로 일주일이 스르르 흘러갔다. 







우다이푸르에서 바라나시로 향하면서 그와의 시간을 돌이켜 보았을 때, 그와 나의 처음은 아주 조금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맨 처음 그가 나를 스쳐갔던 그 순간에 나는 우리가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알았다. 그 순간의 '앎'이란 머리나 가슴이 아닌, 외부로부터 나에게로 던져지는 어떤 직감과 같은 것이었다.


푸쉬카르에서 일주일, 조드푸르에서 이틀을 머물고 우다이푸르로 넘어온 날이었다. 우리가 처음 마주친 건, 내가 우다이푸르에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얻은 숙소에서 다시 푸쉬카르로 돌아가야겠다고, 푸쉬카르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내야만 하겠다고, 성급히 푸쉬카르행 기차표를 예약하고 숙소를 나서면서였다.  그래도 우다이푸르에 왔으니 마을이나 한 바퀴 돌아보려는 심산이었다. 


나는 피촐라 호수 너머 짧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자전거를 탄 금발의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갔고, 나는 몇 발짝도 못 가서 어느 게스트하우스의 관리인에게 붙잡히고 만다. 관리인이 자신을 '인도의 송중기'라고 바득바득 우기며 나를 게스트하우스 안으로 끌어들인다. 관리인의 부하 직원으로 보이는 두 명의 인도인이 친절하게 맞아주었고, 게스트하우스의 복도와 계단은 라자스탄 풍의 그림과 장식으로 보기 좋게 꾸며져 있었다. 관리인이 대뜸 더블룸을 싱글룸의 가격에 주겠다고 하자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고, 무엇보다 옥상에 모여있는 여행자들과 그곳의 분위기가, 어쩌면 내가 다시 푸쉬카르에 가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을까. 아니면, 때마침 그가 옥상으로 올라와 내게 눈길을 주었기 때문일까.


그날 밤의 감정은 이제 많이 옅어졌지만,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사실은 두려운 게 많았다. 내가 다시 푸쉬카르에 갔을 때. 친구들이 변해 있을까. 내가 기대한 그 아이들의 모습이 아닐까 봐. 그게 너무 두려워. 보고 싶은데... 로터스에서 밥을 먹을 때, 종업원들이 웃는 걸 보면서 아이들 생각이 나서 더 슬펐다."


옥상의 분위기 탓도, 그의 눈빛 때문도 아니었지만 결국 나는 푸쉬카르행 열차를 취소하고 우다이푸르에서 일주일 가량을 더 머물게 된다.



 





그와는 아주 평범하게 헤어졌다. 그는 내 기차표를 빼앗아 들고 찢어버리는 시늉을 했지만 끝끝내 나를 따라오지는 않았고, 나 역시 고집스럽게 나만의 시간에 따라 움직였다. 


그와 보냈던 시간은 선명하지도 흐리지도 않게 남았다. 가장 좋았던 장면만큼은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 그가 가트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간지럽히다가 번쩍 들어 올려 무등을 태우던 순간이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다이푸르의 골목길마다 발자국을 남기며 동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쫓아다닐 수 있었을까. 현지인들 - 주로 남자들 -이 바글바글한 가정식 탈리 식당에 가볼 수 있었을까. 밤늦게까지 스틱 댄스 페스티벌을 구경할 수 있었을까.


그는 동양인 여자의 여행과 서양인 남자의 여행이 절대 같을 수 없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네가 여자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너를 적대하지 않고 도와주려고 하니 고마워 해."-실제로 여행 중에 자주 듣는 말- 같은 말을 뱉어내지 않았다. 그에게는 한없이 상냥하고 부드럽기만 한 사람들이 내게는 무자비한 시선과 몸짓을 보이기도 한다는 걸 진심으로 아파했다. 


한번은 그와 친분이 있던 인도 남자가 나에게 왜 혼자일 때 땅만 보며 걷느냐 물었다. 혼자서도 어디든 있다 확신했고 여전히 그렇게 여기고 싶지만, 막상 인도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나를 마음 깊은 곳으로 주저앉게 만들었다. 당황, 의문, 분노, 격분과 분출을 지나 완전한 무시에 이르기 까지... 땅을 보고 걷는 건 끊이지 않는 휘파람 소리와 혹독한 시선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그는 알아주었다. 





아마도 그가 보여주었던 우다이푸르가, 곧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우다이푸르였을 것이다. 시티팰리스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것도, 피촐라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도 좋았겠지만, 그가 보여주었던 건 우다이푸르 골목골목의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사랑에 빠졌던 건 날마다, 순간마다 새로웠던 골목길 산책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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