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브레이크가 걸린 순간에
작년의 나는 주행하다가 말고 갑자기 갓길에 세워진 상태였다. 여기가 어딘지 아주 느리게 가늠해 보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니 글을 읽기는 하되 써지지는 않았다. 계속 읽기만 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까 벌써 해가 바뀌었다. 아이들이 새 학기를 맞이하고 한 달이 지난 지금은 방지턱이 많고 어린이 보호구역을 끝없이 지나는 기분이다. 사방을 조심히 살피고 안전과 무사고를 바라며 느린 속도의 불편을 감수한다.
그런데 온전한 적응이 되기도 전에 두 아이와 내게 생각 못한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자니 꼬이고 얽히는 것들이 많아 브레이크가 걸렸다. 아이들 성장에 무언가를 기대하기보다는 키우는 시간 동안 나에 대한 기대를 계속하고 있다. 잘 해낼 거야, 오늘은 괜찮은 일이 생길 거야, 돌파구는 생기기 마련이거든. 그런데 혼자만의 주문에 내성이 생겨 더는 효과가 없는지 외부 자극이 들이닥쳤다.
작은아이가 너무나도 새로운 육아과제를 안겨주어 병원 방문 여부를 결정해야 할 정도다. 이 일을 두고 정신적으로 주변 식구를 돌아봄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여전히 나 혼자 이상적인 방법을 찾고 이끌어 가는 버거운 물음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엄마가 육아를 놓고 싶다는 생각은 참으로 무서운 거다. 육아는 체력전이라지만 주변인과는 정신력 싸움이다. 도와주지 않을 거라면 방해를 말아야 하는데 방해한다는 것조차 인지를 못하니 어떻게 해서든 버텨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아이 내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온몸으로 불안과 스트레스를 표출하는지 알 수가 없다.
큰아이는 반 회장이 되면서 원하던 목표 하나를 이루었다. 그 책임감이 다른 학년때와 무게가 확연하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예측하지 못했다. 공동체를 구성해야 하는 신규 학교에서 어른들과 회의를 하고 온 아이의 정신이 상당히 지쳐있었다. 갑작스러운 자기반성에 부정성이 엄청 붙었다. 심기도 불편해서 저녁 식사에서 아빠와 마찰이 일어날 뻔했다. 어두워진 아이의 표정과 아빠에게서 살짝 틀어버린 몸을 보며 눈치 살피느라 진땀 뺐다. 요즘 삐딱한 아이의 기분을 자주 느낀다. 그때마다 나는 애정 듬뿍 주면서 확실한 일에만 조언 같은 참견을 짧게 하고 빠지는 스킬을 다지는 중이다. 집안의 평화를 위해선 사춘기 애는 건드리면 안 된다.
여전히 나의 전반적인 생활은 아이들 중심이다. 어쩌다 내 일을 떠올릴 틈이 있긴 했지만 휘발된다. 그러던 중 담임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회장이 된 것이 전화를 거신 명분이었다. 아이를 통해 몇 번 부탁을 받긴 했지만 전화로 확실하게 반 학부모 대표를 청하셨다. 명단을 올려야 하는데 일 진행이 되지 않으신다는 말씀에서 고충이 느껴졌다. 학기 초에 급하게 모집된 녹색 어머니 회로 교통지도를 하다가 담임을 30초 정도 마주했다. 아이를 맡겨 부탁해야 할 입장이다 보니 30분도 아니고 30초 안에 나 혼자 내적친밀감이 급상승했었다. 머리가 바빴다. 반 부모님들은 나보다 훨씬 바쁘시다는 이유를 만들었다. 내 일을 생각하다가 쉽게 휘발되는 이 상황에서 다른 쪽으로 활동을 해보아도 될 거 같다는 두 번째 이유를 만들고 담임의 부탁에 응했다.
작은아이의 마음건강과 큰아이의 사춘기 씨와의 사귐, 나의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학교 드나듦이 어떤 변화로 연결될지 크게 염려하지 않기로 했다. 입은 무겁게 귀는 활짝, 휩쓸리지 않으며 주체적으로 성장하자는 정체성을 더 확고히 하다 보면 또 다른 나아짐이 있을 거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