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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Mar 15. 2023

번아웃, 그래도 육아에 진심입니다.

엄마의 육아 권태기를 지나가며...

육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 글을 쓴 시간이 오래다. 잘난 것도 없고 잘 아는 것도 없지만 낳은 책임을 다하려는 행위 중 하나가 글이다. 글을 쓰면서 좋은 일도 있었고 지저분한 일에 휘말린 적도 있다. 그 중심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육아'다. 출발선은 있으나 결승선이 없는 육아마라톤을 시작한 지 12년이다. 


나의 성장시기를 끄집어내어 반추할 기회로 삼아 지치면 천천히 걷기도 하며 기운 내 달린다. 첫 아이를 키우는 일은 서툶과 실수 투성이어서 있었던 일들을 일기로 세세히 남기는 작업에 공을 들였다. 덕분에 새로운 신념들도 생기고 삶을 정비할 수 있는 세월을 값지게 채우며 살았다. 


그러다 징후 없이 육아 권태기가 왔다. 이상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체력 부족인 줄 알고 면역력만 생각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아무런 의욕을 가질 수 없는 권태로움은 부정적인 자아비판에 빠지게 만들었다. 난 왜 살지? 내가 해놓은 건 뭐지? 내 존재 가치는? 하찮은 이 꼬락서니는 대체 왜? 등으로 삽질의 대가가 될지 모른다는 무서움이 닥쳤다. 


털고 일어나야 한다는 건 알지만 무너지는 정신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되면서 시름시름 앓았다. 큰아이가 아동기 막바지에 접어들고 작은 아이가 7세를 끝으로 육아 1차전이 마무리될 시기였다. 내게 갑자기 찾아온 번아웃에 결국 육아 마라톤에서 된통 넘어졌다.


'육아 번아웃'이라는 신조어를 알고서 내 상태가 이해되었다. 설거지하다가 듣게 된 단어다. 틀어놓은 물에 헹구던 그릇을 들고 멍하니 육아 박사의 말을 들으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날로부터 얼마지 않아 번아웃 인지가 어쩌면 새로운 기회가 될지 모른다고 여겼다. 육아든 내 인생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주문으로 내적인 갈등을 중재시키려 움직였다. 


먼저, 산뜻한 정신을 찾기 위해 고질적인 허리통증이라고만 여기고 방치했던 몸부터 챙겼다. 이 악물고 주사까지 맞아가며 치료를 받았다. 불쾌했던 통증을 다시 만나지 않으려 생활 전체를 신경 쓰면서 바른 자세를 유지 중이다. 머리가 터질 듯한 심한 두통도 앓았었다. 살기 위한 본능만으로 찾았던 병원 방문이었다. 몇 달간 약 복용도 줄었다. 엄마 번아웃으로 번질뻔했던 여러 상황들도 조금씩 정상범주로 돌아오고 있다. 더디지만 멀끔해지려 노력 중이다.

Unsplash / Kelly Sikkema

육아 마라톤은 내가 레이스를 끝내기 전에 멈출 수 없다. 아이가 있기에 내가 끝낸다고 경기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승자와 패자가 없는 시간을 달리는 일이라 아이 손 꼭 붙잡고 함께 해내야 한다. 나는 조금 지쳐서 쉬고 있을지라도 아이를 향한 시선을 멈추지 않아야 하며 계속 격려를 해야 한다. 결국 나를 위한 격려가 된다. 엄마의 삶이 낙오되지 않도록 이끌어준다. 엄마라는 사람이 본인의 이름으로 살 수 있도록 견인해 주는 순간들이 쌓이게 된다. 


육아 번아웃, 누구가 겪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내 엄마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번아웃이 왔기에 나를 얼마간 방치했던 시기를 지낸 이유일 테다. 그래도 질적인 면을 생각해서 다르게 대해줬다면 좀 더 나았을 텐데 아쉽고 안타깝다. 뭐, 자기 한 몸 챙기는 것도 버거워 당신 딸 정신까지 염려할 여유가 없었기에 그랬을 거라 이해하며 위안 삼는다. 분명 나도 내 엄마의 삶에 견인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점도 있을 거다. 부족한 자식이다 자책하고 반성한다.


다행히 나는 아이들 방학이 있어서 1년 가까이 호되게 빠졌던 번아웃에서 돌아오려 마음먹을 여유가 있었다. 역시 아이들의 개학과 새로운 출발 덕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 받았다. 꾸역꾸역 챙겨 듣던 부모 교육 강의도 한 몫했고. 비록 내 상태가 아직은 온전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삶을 통해 힘을 얻고 위로받고 있다. 놓지 않기! 육아 초심 같은 열정에는 비할 수 없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반짝일 수 있도록 진심을 담는 일에는 게을러지지 않도록 매 순간 정신을 단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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