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Offroa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y Jun 06. 2019

One Month Of JY

5th~6th week in Dublin (13/05~26/05)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


보통 다른 나라로 여행을 할 때에 대부분의 경우에는 3개월 이내의 관광을 목적으로 하고 무비자로 입국을 하게 된다. (나츠키에게 들었는데 한국이 다른 나라를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는 무적(?)여권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한다고 했다.) 때문에 아일랜드에 입국할 때에도 보통 3개월까지 별다른 조건 없이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다. 그러나 3개월이 넘어가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때부터는 본인의 신분에 맞게 새롭게 이민국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말그대로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아일랜드에 온 내 경우에도 한 달 전 처음 아일랜드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거칠 때에 '임시비자'를 발급받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드디어 정식으로 1년 동안 머무를 수 있는 GNIB(IRP)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Immigration Office로 향했다. 정식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이민국을 아무 때나 방문할 수는 없다. 미리 한국이나 아일랜드에서 입국 시기로부터 약 2개월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appointment를 할 수 있고, 예약한 날짜에 맞춰서 이민국을 방문해야만 정식으로 방문 인정을 해 준다. 그런데 이 예약을 잡기가 정말 너무 힘들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최근 아일랜드를 방문하고 있어서 예약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악명이 높다는 이야기는 누누히 들었는데, 에이 설마설마했다. 대학교 수강신청에서도 거뜬히 승리했던 내 손가락은 며칠 동안 예약사이트에서 맥을 못 추고 허공만 클릭하기에 바빴다. 몇 초가 채 안 되는 시간에 후다닥 없어지던 예약날짜와 시간들. 며칠을 실패한 끝에 겨우겨우 성공했던 날짜가 바로 오늘이었던 것이다.


번호표를 부여받고 기다리던 사이 찰칵. 이때까지는 금방 끝날 줄 알았지.


리셉션에서 내 예약을 확인받고 자리에 잠시 앉아 있으니 곧 내 번호를 불렀다. 자리로 가 내가 가지고 온 각종 서류들을 보여주고 몇 가지 간단한 질문들(어디에 살고 있냐, 무엇을 할 예정이냐 등)을 던지고 바로 300유로를 결제했다. 약 40만원 정도 되는 꽤 큰 비용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카드로 결제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기다리기를 30분. 다시 내 이름이 불리고 이번에는 지문을 스캔하기 위해 다른 방으로 향했다. 손가락 하나하나와 손비닥까지 스캔하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내 손을 하나하나 체크하던 스탭 아저씨는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긴장해있는 나를 편안하게 대해주었다. 그렇게 스캔이 끝나고 곧 내 여권을 돌려받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여기서 거의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여권 하나 받는 게 이리 어려운 일인가ㅠㅠ 가만히 있자니 너무 심심해서 유튜브도 보고 엄마와 오랜 시간 전화도 했다. (그 와중에 경민이가 여자친구를 정식으로 집에 데리고 와서 결혼을 이야기했다는 기쁜 소식을 이때 전해듣게 되었다.) 그렇게 약속 시간으로부터 약 3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여권을 돌려받은 나는 이민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은 아니고 2주 뒤에 우편물로 정식 우편과 카드가 도착해야 비로소 나는 정식 체류를 허가받을 수 있게 된다. 험난한 여정이여.


많은 워홀러들이 인증샷(?)으로 사진을 남기는 이민국 화장실. 왜때문인지 파란 조명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8일 정도가 지나고 나는 홈스테이 맘인 고시아로부터 우편과 카드를 전달받게 되었다. 이제 다음 관문은 PPSN 발급받기. 앞서 아일랜드에서 정식으로 체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GNIB(IRP)였다면, 정식으로 취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PPSN이다. 대부분 GNIB > PPSN > 은행계좌 > 취업 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나는 여느 사람들과는 다르게 순서가 조금 바뀌어 취업 > GNIB > PPSN > 은행계좌 의 순으로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일을 구할 때에 PPSN과 은행계좌가 없으면 아예 인터뷰도 보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고 하는데, 내 경우에는 매니저인 안드리아가 백 번 이해하고 양보해 준 덕분에 이 모든 게 가능할 수 있었다.(스타벅스 다른 파트너들도 내게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 특이 케이스라고 했다.) 다시 한 번 고마운 안드리아. PPSN도 미리 2주 전에 appointment 예약을 해야만 복지센터에 방문할 수 있는데, 수요가 많은 더블린에서 예약하기에는 촉박한 일정이라 다음날 예약을 바로 잡을 수 있었던 근교 도시 Newbridge로 향했다.


Newbriege로 향하는 버스 안. 여유있던 기사 아저씨 덕분(?)에 1시간 30분만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날이 off였기 때문에 크게 스케쥴에 무리가 가지는 않았다. 더블린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는데 더블린을 벗어나는 것이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짧은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동네에 도착해서 복지센터로 향하니 역시 예약자가 아무도 없었던지 복지센터는 텅 비어 있었고, 직원이 나를 바로 맞아주었다. 몇 가지 서류와 안드리아가 전해준 잡레터를 보여주니 바로 통과. 직원 아주머니는 한국인이 이 곳까지 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얘기해주며 호탕하게 웃었고, 덕분에 쫄아있던(?) 나도 마음이 풀려 이래저래 이야기를 하며 15분 만에 발급을 마쳤다. 그리고 학원으로 향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았는데 조용하고 아늑하니 꽤 괜찮았다. 사람들도 훨씬 여유있어 보였고. 원래 더블린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피곤해서 자야겠다 생각했는데, 기분이 좋아져 주변 감상도 하고 친구와도 전화하며 그렇게 돌아왔다. PPSN 카드가 오기까지는 또 일주일의 시간이. ㅠㅠ


Newbrige에 있던 복지센터와 텅 비어 있었던 PPSN 예약 좌석들




존버는 승리한다


뮤지컬 [Avenue Q]가 열렸던 Gaiety Theatre

이미 [오늘같은 날에는] 매거진에서도 한 차례 얘기한 바가 있지만, 정말 우연하게 길거리를 지나다니다가 다음 주에 뮤지컬 'AVENUE Q'가 영국에서 투어를 올 것이라는 포스터를 보고 마음이 동해 냉큼 예매해서 공연을 보게 되었다. 학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극장이 있어서 수업이 끝난 후 근처 카페에 들러 미리 공연을 보기 전 뮤지컬 사운드트랙을 쭉 훑으면서 들었다. 유쾌한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가사들이 흥겨운 음악을 만나 다시 들어도 한 곡 한 곡 너무 좋았다. 그렇게 노래를 다 듣고 공연장으로 향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로 극장 주변은 붐비기 시작했다. 보통 공연을 볼 때 다른 건 몰라도 프로그램북은 한 권씩 꼭 사는 편이라 이번에도 로비에서 프로그램북을 한 권 샀다. 공연 시작 시간에 임박해서 공연장에 도착했기 때문에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가 엄청나게 깊었던 극장 내부. Circle에 앉았는데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경사에 깜짝 놀랐었다.


실제로 보면서 느꼈던 몇 가지 느낌을 짤막하게 글로 풀어내보자면, 먼저 뮤지컬 'AVENUE Q'는 무엇보다도 음악이 너무나 좋다. 실제 라이브로 악기들의 연주에 맞춰 배우들이 연기를 펼치는데 노래가 워낙 좋다보니 굳이 내용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음악만 들으면서 공연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우들의 가창력도 뛰어나 이런 내 생각들을 배가시키는 데에 한 몫 단단히 했다. 공연 내용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자면 뮤지컬 'AVENUE Q'는 블랙코미디 공연이다보니 아무래도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이 공연이 15년 전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이슈들과 고민들이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어 지금의 나에게도 같은 주제를 던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전하는 이야기들(사긄세와 세금, 이웃, 취업, 연애와 결혼 등)은 아직까지도 지금의 청년들에게 통한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 공연이 15세 이상 관람가였는데 생각보다 성적으로 수위가 세서(?) 청소년이 봐도 괜찮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한국에서도 공연한 적 있었던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경우에도 15세 이상 관람가였기 때문에 그 공연에 비하면 이 뮤지컬은 푸펫들이 그런 장면을 연출하니까 그나마 다행(?)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큰 틀만 따지고 보자면 한 청년이 AVENUE Q라는 마을에 와 겪는 우여곡절의 이야기들이고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띄고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유치해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음악과 성인용 푸펫 뮤지컬이라는 특이점,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들 때문에 아직까지도 오랜 시간 사랑을 받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오른쪽에 앉았던 아저씨는 공연 내내 뮤지컬 노래를 흥얼거렸고, 왼쪽에 앉았던 아저씨는 인터미션 때 나에게 공연 재밌냐고 물어봐줘서 내가 진짜 5년 전부터 보고 싶었던 뮤지컬이었고, 한국에서는 투어를 더 이상 오지 않아서 포기하고 있던 중에 더블린에 오니 공연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오게 된 거다, 정도로 얘기하며 짤막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해는 져 길거리는 어둑어둑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래프턴 스트릿을 걸으며 혼자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프턴 스트릿을 밤에 걸어보는 것이 이 날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좌) 공연이 끝나고 극장 밖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던 사람들 / (우) 어둑해진 그래프턴 거리를 배경으로 노래를 부르던 버스커




그 외 여담


1. 더블린에 온 지 꼭 한 달이 되었다. 이대로 집에 그냥 들어가기는 아쉬워 자축파티(?)를 하기 위해 수업이 끝나고 학원 근처에 있는 아시안 레스토랑에 가서 싱가포르 누들과 나시고랭을 샀다. 간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터라 와인도 한 병 사고 생각보다 거나하게 이 날 저녁을 보내며, 외장하드에 간직하고 있었던 영화 원스(ONCE)를 꺼내 음식을 먹으면서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익숙한 거리들이 내 눈길을 붙잡고 절규하는 듯한 음악들에 감정이입하고 그러다 열린 결말을 보며 아련해지기도 했던 그 날의 기억.


(좌) Fresh에서 산 와인과 Neon에서 산 싱가포르 누들 & 나시고랭 / (우) 영화 ONCE와 함께 냠냠


2. 학원에 있었던 마지막 2주 동안은 기존의 레이첼이 아닌 다른 선생님과 함께 하게 되었다. Paddy라는 이름의 아이리쉬 선생님이었고 두 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던 내 레벨을 합쳐 한 반으로 만들어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6명이었던 우리 반은 갑자기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하게 되어 15명으로 훅 불어났다. 반원 형태로 앉아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Paddy의 수업 방식이 Strict한 느낌이라 기존에 장난치기를 일삼던 유진과 오스카도 웬일인지 이때부터는 순한 양으로 돌변하여 수업에 집중하며 열심히 임했다. 첫째 주 주제는 여행에 관한 것이었고, 둘째 주 주제는 자연재해에 관한 것이었는데 한 명 한 명 짚어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계속 이끌어주고 비록 틀리더라도 독력하고 다같이 이해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내 경우에도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같은 클래스 친구들을 대상으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번은 수업 중 Paddy가 나에게 embarrased라는 표현에 대해서 물어봐서 내가 좀 뜸을 들이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를 모르겠어서 솔직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지던 클래스 분위기에 Paddy가 지금 이 상황이 너에게 embarrased할 거라고 얘기해주어 그제서야 이 단어가 '부끄러운/당황스러'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해했다고 하니 Paddy가 이 단어로 문장을 하나 즉석에서 만들어보라길래, 그냥 지금 embarrased라는 단어를 모르는 내 상황이 embarrased하다고 얘기하니까 조용하던 반 친구들이 다들 빵 터졌다. 내가 뭐라도 잘못한 건가 싶어 눈치를 살폈는데 Benay가 너 대답 완전 웃겼다고 얘기해주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비록 몇 주 안되는 시간동안의 ULearn 어학원 수업이었지만 다방면으로 영어를 접할 수 있었고 다국적의 친구들과 얘기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주로 옆자리에 앉았던 일본 친구인 나츠키와는 많이 친해지게 되어 내가 학원을 떠나더라도 계속 만나기로 약속했다. (지금쯤 비엔나를 여행하고 있을 나츠키! 다음 주에 밥 같이 먹기로 했다.)  


3. 스타벅스에서 일한 지 3주차가 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틸(Till)을 시작했다. 인터넷을 후기를 보거나 했을 때 보통 한 달 정도 지나야 음료를 만드는 바(Bar) 생활을 청산하고 틸로 넘어간다고 했는데, 내 경우에는 안드리아가 몰아붙이는(?) 성격이라 일찍 틸을 잡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출근했던 어느 날 갑자기 안드리아가 '너 오늘부터 틸에 있을 거야! 잘 할 수 있지?'라고 얘기하는 순간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과 함께 얼굴이 창백해졌다. 주문을 받는 파트너들 옆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눈치껏 어떻게 주문을 받고 기계에 입력하는지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 상황을 맞닥뜨러야 하니 식은 땀이 절로 났다. 첫 날은 그야말로 멘붕의 연속. Sorry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얼굴은 웃고 있지만 머릿 속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그렇게 아침 출근 시간 러쉬가 끝나고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던 첫 날. 아직까지도 실수를 밥 먹듯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파트너들과 슈퍼바이저, 매니저가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서 큰 문제 없이 일을 하고는 있다. 언제쯤 Trainiee라는 이름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ㅠㅠ


4. 2주 동안 짬날 때마다 이곳저곳들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


(좌) 해리포터 발매 20주년을 기념해 나온 기숙사별 책표지 / (우) 너무나 사고 싶었던 The Great Life 사진집
(좌) 칵테일 제조법이 담긴 책 (우) 월리를 찾아라에 요즘 꽂혀서 매일 한 장씩 하고 있다
레코드샵인 '타워레코드'에 방문해 이것저것 구경했다. 휘황찬란했던 디즈니 dvd들과, 새로운 시리즈로 곧 개봉할 내 인생작품 토이스토리 dvd들
어느 날 들렸던 아일랜드 내셔널 갤러리 샵에서. 사고 싶은 책들이 너무나 많았는데 목요일날 야간개장을 한다고 하니 그때 제대로 구경하고 사야겠다 다짐했다.
(좌) 마트에서 팔던 바닐라향 코카콜라. 처음에는 맛있었는데 갈수록....ㅠㅠ (우) 드디어 도전한 감초젤리. 한약맛+과일맛의 콜라보가 은근히 중독적이었다
한인마트에서 할인행사 중이었던 비빔면을 GET! 1유로짜리 삼겹살과 함께 먹으니 매직처럼 스트레스가 눈녹듯 사라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The Time You Need A Wisd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