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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 Jun 07. 2019

Speak Yourself

7th week in London(01/06~02/06) *특별판


지난 2월 당시 한국에서 더블린으로 떠날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나는 인터넷으로 기사 하나를 접하게 된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22001032739179001


비영어권 가수 최초로 BTS가 영국의 웸블리 스타디움(Wembley Stadium)에서 단독 콘서트 'Love Yourself ~Speak Yourself~'를 펼치게 되었다는 기사. 웸블리 스타디움이라면 한국 사람들에게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마지막 장면인 라이브 에이드가 진행되었던 장소로 익숙한 곳이며,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들만이 설 수 있다는 '지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스타디움이자 역사적인 공연장'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지 않은가. 이전까지 BTS를 전혀 몰랐던 나로서도 이들이 본격적으로 해외 시상식에서 각종 상을 휩쓸고 빌보드에서 1위를 한다는 소식이 들리던 2018년부터 이들의 행보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고 어느새 나 역시 음악을 즐겨듣게되는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콘서트를 보러 가야지, 팬클럽에 가입해야지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웸블리 입성 소식은 그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다른 걸 다 제쳐두고 한국 가수가 한국어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하게 된다니 그 말도 안되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 어차피 그때쯤이면 더블린에 잘 정착해있으리라는 생각과 런던과 더블린은 비행기로 30분 거리에 왕복 4~5만원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충분히 다녀올 수 있었기 때문에 공연 티켓을 한 번 예매해 보자고 다짐했고, 수십만 명과의 경쟁률을 뚫고 나는 90분만에 전석이 매진된 그 공연의 티켓을 당당하게 얻어낼 수 있었다.


(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중 웸블리 경기장의 모습 (우) BTS 웸블리 공연 티켓과 경기장의 모습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는 더블린에 오게 되었고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며 지내고 있다가 5월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6월 1일로 다가온 BTS의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본격적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약했고 스타벅스 매니저인 안드리아에게도 주말동안의 런던행에 대해서 얘기를 해 두었다. 그 사이에 BTS의 웸블리 추가 공연이 확정되어 이틀로 공연이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어 하루만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게 아쉬울 것 같아 런던에 하루 더 머물기로 하고 좋은 분을 통해 일요일 티켓을 한 장 더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6월 1일이 다가왔다.


토요일 새벽 집 근처에서 에어코치 버스를 타고 더블린 공항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내가 알고 있던 버스정류장과 달라 버스를 한 대 놓치게 되어 생각보다 비행기를 타는 시간이 타이트해졌다. 그렇게 이륙 시간 1시간을 앞두고 도착한 더블린 공항. 짧은 일정이었기에 따로 짐을 부치지는 않고 바로 체크인을 마쳤다. 그래도 아침 일찍 이륙하는 비행기여서 다행히도 사람이 많지 않아 게이트 클로징 10분을 남겨두고 무사히 세이프할 수 있었다. 악명이 높은 아이리쉬 저가항공 라이언에어를 처음 이용하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자리도 넓고 꽤 괜찮았다.


(좌) 이른 새벽 더블린 공항버스 기다리기 (우) 유럽여행에서 없어서는 안될 단비같은 존재 '라이언에어'


내 자리를 찾아가니 옆자리에 이미 한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구석구석 BTS 사진들로 도배된 가방과 핸드폰을 보니 이 친구도 공연을 보러 가나 싶어서 괜히 말을 걸었다. 그 친구는 나를 보더니 대뜸 한국말로 "저 한국말 할 수 있어요!"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아버지가 아이리쉬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인 혼혈 아이였다. 예전부터 오래된 아미(*BTS 팬클럽)임을 밝힌 이 친구는 어머니와 함께 공연을 보러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고. 어머니는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비행기 자리를 따로 배정받게 되어 아마 다른 자리에 앉아있을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한국말을 너무 잘하길래 비행기가 활주로를 빙빙 돌 때부터 런던 루튼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며 계속 수다를 떨었다. 방학 때마다 한국에서 3개월 정도 시간을 보낸다고 하는데, 이번 방학에는 기필코 화장품가게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며 아르바이트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하고, 콘서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꿀팁들도 꽤 많이 전수받았다. 그렇게 짧은 비행 끝에 비행기에서 내린 나는 이 친구의 어머니와도 입국장에서 만났고 같은 한국 사람인 게 반가웠던지 어머니는 나중에 꼭 밥 한 끼 하자며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찰칵


그렇게 런던 루튼공항에 도착한 나는 짐을 내려놓기 위해(웸블리 경기장은 A4 규격의 핸드백 하나만 반입이 가능했기에) 숙소로 먼저 향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하다가 셜록홈즈로 유명한 베이커 스트릿도 지나고 하며 잠시나마 런던 관광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숙소에 도착하고 체크인 시간이 아직 한참 남긴 했지만, 다행히도 리셉션에 있는 직원이 일찍 체크인을 시켜줘서 무사히 숙소에 내 짐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하며 짐을 재정비하고 드디어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좌) 체크인을 마치고 간단하게 스타벅스에서 점심을 (우) 쾌적하고 아늑했던 Staycity Apartment


140번 버스를 타고 메트로폴리탄 튜브라인 쪽으로 50분 정도 가던 중 내 옆자리에 오랫동안 앉아있던 아시안 계열의 여자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핸드폰을 보여주면서 자기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냐고 물어보길래 살펴보니 이 친구도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는 친구였고 나도 여기로 향하고 있으니 같이 가면 되겠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러더니 환하게 웃으며 잘되었다고 하며 붙임성있게 말을 걸어왔다. 홍콩에서 온 이 친구는 지금 맨체스터에서 2년 정도 여동생과 함께 지내고 있는데 이번에 런던에 BTS가 오게 되어 처음으로 콘서트를 가게 되었다고. 이미 표정에서부터 들뜸과 긴장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그렇게 버스에서 그리고 튜브에서 얘기를 나누며 우리는 경기장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좌)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풍경이 예뻐서 (우)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웸블리 경기장

그렇게 처음으로 마주했던 경기장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컸고 그보다 놀라웠던 건 역시 그 곳으로 향하던 수많은 행렬들이었다. 나는 일요일 티켓을 전달받기로 한 한국인 분을 만나야했기에 홍콩 친구와는 여기서 인사를 나눴고 인파들을 헤치고 헤쳐 이윽고 한국인 언니와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 BTS를 보기 위해 12시간이 걸리는 런던까지 온 A언니를 통해 나는 일요일 티켓을 전달받을 수 있었고, 유럽 여행이 처음이라 늦은 밤 공연이 끝나고 홀로 숙소로 돌아갈 생각에 걱정이라는 언니의 제안으로 공연이 끝나고 내 숙소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내가 머무는 숙소는 스튜디오 형식으로 더블룸의 꽤나 쾌적한 공간이었고, 언니가 잡은 숙소는 18명 이상이 다같이 묵는 혼성 도미토리룸이었다. 심지어 내가 5년 전에 런던을 여행했을 때 묵었었던 호스텔이여서 깜짝 놀랐다.)


(좌) 경기장 곳곳에 휘날리던 플래그 (우) 역에서부터 걸어나오는 수많은 인파들
Here is Wembley


BTS 월드투어 콘서트가 이틀 동안 진행되었던 웸블리 스타디움 주변은 말 그대로 축제의 현장이었다. 이미 세계 각국의 언론사에서 취재를 나와서 관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고, 길거리 곳곳에서는 BTS 뿐만 아니라 각종 K-POP 노래들이 흥겹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노래에 맞춰 소녀들이 그룹을 지어 춤을 추고 이들을 둘러싸고 호응해 주는 다른 관객들의 모습을 무척 재미있게 지켜보았다. 한국어가 이들에게는 꽤나 어려울 텐데, 이렇게 행복한 얼굴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신나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내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신기했던 또 한 가지는 경기장을 찾은 관람객 층이 꽤나 다양했다는 것이다. 보통 K-POP 공연의 경우 10대~20대 청년들이 주를 이룬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공연에서는 가족 단위로 구성된 관객을 정말 많이 보았고, 남성 팬들도 엄청 많이 보였다. 그리고 노년층의 관객들도 군데군데 보였었는데 손자나 손녀를 따라 공연을 보러 왔겠거니 했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콘서트 도중 멤버들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며 정말 깜짝 놀랐기도 했다.   


(좌) K-POP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던 소녀들 (우) 사진찍어주는 딸보다 더 신나보이는 엄마아빠


그렇게 주변 광경들을 즐겁게 지켜보다가 시간이 되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간 나는 스타디움이 주는 거대한 위압감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만 개의 좌석이 경기장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엄청난 크기의 무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공연 첫째 날 그렇게 입을 쩍 벌리며 자리에 앉으니 옆자리에 앉은 영국 소녀들이 나에게 혹시 한국인이냐며 물어봐주었고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 내가 계속 '대박'이라고 말하고 있어서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웃으며 얘기해주었다. '대박'이라는 단어를 알다니ㅎㅎ 이어서 공연 둘째 날에는 일부러 공연 시작 전 미리 버드와이저를 사가지고 들어가 한 병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한 채로 공연을 즐길 준비에 임했다.


(위)첫째날 (아래)둘째날 웸블리 경기장의 파노라마샷
둘째날 탄산 가득한 버드와이저와 함께 했던 현장


시간이 흘러 드디어 공연 시간이 임박해져오고 사람이 점점 가득차기 시작하며 무대에서는 연신 BTS의 뮤직비디오가 재생되면서 관객들의 흥분을 충분히 고조시켰다. 그리고 경기장 곳곳에서 수많은 깃발을 몸에 둘러싼 팬들을 보니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많은 팬들이 모인 것 같았다.


공연 시작 전 뮤직비디오를 보며 즐기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


드디어 오후 7시 45분. 예정했던 시간에 딱 맞춰 정시에 시작된 트레일러 영상에 맞춰 나는 미칠 듯한 환호성과 열광적인 분위기의 중심에 휩싸여 있었다. 이번에 새로 발매된 음반 'MAP OF THE SOUL : PERSONA'의 수록곡 Dionysos으로 공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첫 곡 Dionysos


워낙 유명한 곡들이 많다 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곡들을 같이 흥얼거리며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2시간 45분 동안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공연을 보며 웸블리 경기장에서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는 공간의 중요성을 곱씹어 실감하게 되었고, 비록 경기장 안에서 BTS와의 물리적인 거리는 멀었지만 스크린을 통해 비춰지는 그들의 모습에서 각자가 긴장과 흥분의 텐션을 팽팽하게 조절해가며 공연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그래도 한국에 있는 친구를 통해 이 공연이 다른 여느 BTS 콘서트와는 다르게 전세계로 생중계될 것이라는 기사를 전달받았는데, 그런 부담감과 기대감을 안고 무대에 직접 오른 이들의 현재 머릿속은 어떨지 감히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대에 완벽하게 적응해가며 멤버들은 프로다운 쇼맨쉽과 라이브, 퍼포먼스를 연신 선보였고 그 화려함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땀을 뚝뚝 흘려가며 열정적으로 공연을 펼치는 BTS와 열렬히 환호하는 팬들을 보며 나는 이들이 공연 내내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이 순간 한 공간에 모인 서로를 위해 각자의 방법으로 '응원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노래로 퍼포먼스로 눈빛으로 환호성으로 땀으로 눈물로 진심으로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힘을 얻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진 콘서트장에 가득 밝혀진 불빛들


그렇게 이틀 동안 관람했던 콘서트에서의 명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둘째 날 앵콜 때 팬들이 다같이 떼창으로 부르던 'Young Forever'이었을 것이다. BTS 멤버들 몰래 진행된 이 이벤트가 시작되는 순간 전율이 쫙 퍼졌다. 가수의 목소리 없이 경기장은 팬들의 노랫소리와 허밍으로 가득했고 멤버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장면은 나에게 있어서도 꽤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다같이 한국어로 노래를 따라부르며 진행되었던 이벤트


그렇게 이틀의 공연이 모두 끝난 후 나는 그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다시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돌아왔다. 첫 날 런던으로 향하기 전 나는 '왜 BTS의 음악을 즐겨듣게 되었을까?'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뒤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에서, 비행기 안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버스 안에서 BTS의 노래를 다시 들어보며 나는 이전에 나에게 던졌던 질문에 조심스럽게나마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음악은 수많은 '나'와 '청춘'과 '지금 이 시대'를 대변하고 있었다. 사랑과 이별같은 시덥잖은 내용들, 그리고 수많은 의성어들로 점철된 여느 유행가들과는 다르게 이들의 음악은 '그래, 그게 지금의 나야. XXX'라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순간들이 분명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최근 앨범의 말미에는 그래도 이런 나를 제대로 마주하고 한 번 사랑해보자는 Love Yourself라는 선한 메시지도 전달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왜 BTS가 글로벌 센세이션, 21세기 비틀즈로 불리며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지 그 이유를 웸블리 경기장에서의 공연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았다.


BTS의 웸블리 공연은 성황리에 끝이 났다
집으로 향하는 수많은 인파들


런던에 도착한 첫 날, 숙소로 향하던 버스에서 통화를 나누던 친구가 얘기해 준 이야기가 있다. 제일 최근에 발매된 앨범의 타이틀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의 가사가 어떤 의미일 것 같냐고. 내가 모르겠다고 말하니 친구가 직접 공연을 보러가는 네가 나보다 더 모를 수 있냐고 핀잔을 주며 얘기해 준 내용은 아래와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높이 올라가 이제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아래를 내려다보자.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안겨 준 '인기와 명성'은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영원하지 않으니 분명 우리는 서서히 아래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위치에서 태양을 바라보기보다는 반대로 너에게로 향할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아쉬운 마음에 찰칵


참으로 반듯하고 멋진 일곱 청년들과 함께 그들의 인생에 있어 가장 빛나던 순간을 함께 해서 즐거웠고 영광이었습니다.


웸블리 공연 기자회견 당시의 B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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