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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 Sep 01. 2019

여름의 끝자락

190831


킬라니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기차.

이틀째 구름이 자욱했던 날씨는 오늘따라 맑게 개여 있었고, 기차는 5년 연속 우승을 노리는 더블린 주와 10년만에 결승전에 진출한 케리 주(킬라니는 케리 주의 대표 마을이다) 의 아이리쉬 풋볼 파이널 매치를 보러 가는 사람들로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요근래 생각할수록 한없이 낮아지고 있는 나를 위해 하루 전날 결정해 떠났던 여행이었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바랬던 것도 아니었고, 그저 나를 어디론가 던져 두고 싶었었다. 친구에게서 기분 좋은 편지도 받았고 끝없는 자연 속에 나를 맡겨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아직까지도 마음 한켠이 찝찝했었다.


그렇게 여행은 끝났고 더블린 코널리 기차역에 내린 나는 빈손이 아쉬워 맥주를 여러 캔 사서 양손에 가득 담아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걷기를 10여 분.


갑작스럽게 손에서 빠져나간 맥주 두 캔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고 그 중 하나가 피슉 소리를 내며 길바닥에 터지기 시작했다. 분수처럼 솟구치는 맥주가 내 얼굴에 파바박하고 튀었고 손이 없던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댔다.


그때 내 앞에서 걷던 남자애가 소리를 들었는지 발걸음을 돌려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경황 없던 내 표정을 보더니 내가 쥐고 있던 맥주캔을 가져가 짧게 뭐라 중얼거린 뒤 그 캔을 곧바로 다리 너머 기찻길로 휙하니 던져버렸다. 터진 맥주캔은 그렇게 저멀리 날아갔고 내가 고맙다고 하니 노 프랍, 이라고 하며 쿨하게 자기 갈 길을 갔다.


그렇게 나도 남은 캔맥주를 들고 다시 내 갈 길을 가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터진 캔맥주가 그동안 내가 미련스럽게 가지고 있던 그 감정 같아서.


끝까지 아닐거라 믿으며 고집피우며 끌어안으며 굳이 킬라니까지 가지고 간 그것. 결국 내 곁을 떠나 펑하니 터져버린 그것. 왜 나는 그 남자애처럼 쿨하게 버리지 못했던 걸까. 나 혼자서는 결코 끊어낼 수 없어 아등바등 손에 움켜쥘 걸 그 애가 알았는지 나 대신 저 멀리 던져준 것 같았다.


그렇게 한껏 울며 집 앞 문에 다다르니 마음이 가벼워지고 또 후련해졌다. 그리고 방에 돌아와 남은 맥주 한 캔을 따 홀짝대며 마셨다.


이젠 괜찮을 것 같다. 쿨하게 던지면 그만일 것을. 여름의 끝자락이 이렇게 지나간다.


https://youtu.be/YVB8vL7rBjY

김동률 - 여름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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