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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이작가 Jul 28. 2021

현직 글쟁이는 돈을 주고 '이런' 책만 산다

돈을 내고 책을 사는 나만의 기준

언제나 서점에 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회사에서 진행 중인 일의 종류에 따라 글을 많이 쓰기도, 읽기도 하는 나는 요즘엔 통 쓸 거리가 없어서 읽기만 하는 날이 많아졌다. 때문에 쓰는 것이 조금은 낯설어져 있던 터라 오늘은 남의 글을 염탐하기 위해 짬을 내어 서점에 다녀왔다.



새로 나온 신간이 많았다. 역시나 유명한 작가의 책이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있었고,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추천사라는 명목으로라도 유명인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책이 팔리려면 그들의 이름을 빌려야 하는 게 당연했다. '치, 유명하지 않은 사람은 책도 못 내나?' 괜한 자격지심에 그런 이름값은 피하겠다 하여 펼쳐보게 된 책이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이다. 이름값이 싫다고 하면서도 책 표지의 디자인이나 제목, 작가명을 따져보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가벼운 종이 한 장이지만 누군가 펼쳐보게 하는 것은 이렇게 힘든 일이다.



처음에는 책 표지의 그림이 좋아서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지은이인 김두엽 할머니를 만나기도 전에 역시 나태주 시인, 이해인 수녀 등의 추천사를 먼저 읽어야 했다. 불쾌하면서도 그들의 이름에는 신뢰가 있었다. 실패하고 낭비하기 싫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기업은 참 잘도 꿰뚫는다.  나는 얼른 짧은 추천사를 후루룩 읽고 드디어 작가인 할머니와 마주했다.



쉽게 읽히는 글이었다. 아흔이 넘은 할머니가 쓴 글이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고 할머니의 하루가 궁금해졌다. 너무 예쁜 색감과 꾸밈없는 그림체도 좋았다. 대작을 써낸 소설가, 방송일을 활발히 하는 음악가 등의 책이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당당히 배를 까고 누워있었지만 그 많은 책들 속에서도 나는 수줍게 일상을 풀어내는 할머니의 책이 가지고 싶어 졌다.



이 책은 사야겠다 마음을 먹고 매대에 선 채로 책을 읽어나갔다. 할머니의 화가아들은 그림이 팔리지 않아 택배일을 한다고 했다. 아들은 그림 그려야 하는 시간에 택배를 나르고, 할머니는 그런 아들을 기다리며 그림을 그린다고도 했다.


 삶의 아이러니와 치사함이 슬쩍 깔려있는 이 부분에서 나는 문득 우리 회사의 택배청년을 떠올렸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마른 체구지만 어딘지 모르게 단단해 보이는 남자. 한창 멋 부릴 나이인 2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청년은 나이답지 않게 멋없는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가 이 택배일에 어떤 태도이며, 무엇을 걸었을지 짐작하게 하는 헤어스타일이었다. 저 청년은 분명 다른 생각 따윈 하지 않고 택배일만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한 듯했다. 잠시 동안만 하려는 일이라면  땀에 젖을까 봐 머리를 짧게 자르고, 매일 같은 반바지를 입고 다닐 리 없다. 결정적으로 그는 자신이 택배 기사임을 알리는 푸른색 조끼를 어쩐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선량하고 성실해 보이는 그의 과거는 종아리에 찬 검은 아대 밑에 숨겨져 있었다. 깊숙이 파묻힌 어둠을 뚫고 삐져나온 검은 선 줄기.. 문신인 것 같았다. 아마도 지금보다 젊었던 어느 날, 어린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청년이 퇴근 후면 별안간 조끼를 벗어버리고 종아리의 아대를 벗긴 채 문신을 자랑스레 보여주며 다닐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김두엽 할머니의 아들처럼 그도 처음부터 택배일이 꿈은 아니었을 거라는 짐작을 조심스레 할 뿐이었다.



처음부터 '할머니'가 꿈이 아니었을 김두엽 할머니처럼 그 택배청년에게도 다른 꿈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할머니의 화가 아들처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전 단계로 이 분주함을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갑자기 유명세를 타고 그 청년의 사진이 서점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누구에게나 더 나은 미래의 어떤 것을 위해 바지런히 움직이는 분주함의 시간이 주어지기 마련 아니던가.


이러한 사색을 서점에 선 잠시 동안 할 수 있게 해 준 이 책이 고마워서 나는 기꺼이 15000원을 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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