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너 스무 살 되면 제발 간섭 좀 해달라고 해도 안 할 거야. 엄마 봐. 할머니 할아버지가 엄마 간섭하던?” 대답 없는 아들.
“넌 어땠어? 지금까지 10년이 어떻게 느껴졌는데?”
나는 곧바로 얼마 전 10살이 된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짧게 느껴졌다고 했다.
“나 어린이집 들어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잖아. 근데 나 어린이집에서 운 거 기억나. 엄마한테 간다고, 어린이집에 안 들어가겠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나를 꽉 잡았어.”
“그랬어?”...
엄마인 나는 잘 기억나지 않는 일이었다. 아들은 선생님의 이름까지 정확히 말했고, 그건 왜곡되었을지언정 분명 내 아들에게 일어난 ‘일’ 임이 분명했다. 순간 나는 나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들의 첫 등원, 전업 주부였던 당시의 나는 아들을 처음 어린이집에 보내고 잠시동안 주어진 뜻밖의 시간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기억이 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걸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던 마음은 행동으로 표현됐다. 무작정 카페를 향해 걸어가다가 휙 뒤돌아 어린이집으로 향해서는 몰래 숨어서 아이가 잘 들어갔나 살피다가, 또 밖에서 울며불며 버티는 다른 아이를 보다가, 눈물도 살짝 훔쳤나?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렇게 아이와의 첫 분리가 일어났던 날이 있었다.
그날을 딛고 오늘이 왔다. 요즘 아들은 혼자 시간을 보내고, 홀로 친구와 약속을 잡아 ‘엄마 나 갔다 올게!’를 외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현관문을 나서서 계단을 다다다다 내려간다. 그리고는 친구와 함께 학교 앞 문방구에서 실컷 뽑기도 하고 포켓몬 카드도 뽑으며, 용돈탕진잼을 한 시간가량 즐기고 돌아오곤 한다. 나 없는 시간을 만끽하는 따끈한 십 대 앞에서 나는 때때로 무너졌고, 당황했다.
어떻게 니가, 고작 열 살인 네가 감히 엄마를 기만해?
첫 무너짐은 휴대폰 잠금해제 사건이었다. 구글 패밀리링크를 통해 아이의 휴대폰 사용시간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믿은 나에게 아들은 보기 좋게 뒤통수를 쳤다. 어찌 된 영문인지 분명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는 날임에도 아들은 3시간씩 게임을 즐겼다. 처음에는 ‘몰라? 렉 걸렸나 봐.’라며 렉이 뭔지도 모르면서 순진한 얼굴로 무고함을 나에게 어필했다. 설마 아들이, 내 순진한 아들이 그럴 리 없다며 앱을 다시 깔아보기도 하고 아들과 나의 휴대폰을 다시 연동했지만 또다시 그런 일은 반복됐다. 워킹맘인 내가 야근을 하거나, 가끔 아이의 휴대폰 사용 내역 확인을 놓치는 날 어김없이 발생하고 있었다.
엄마는 바보가 아니야.
분노가 치밀었고, 무너졌다. 핸드폰 게임을 했다는 것보다 나를 속였다는 생각이 더 나를 괴롭혔다. 그동안 의심하고 싶지 않아하지 않았던 ‘패밀리 링크 잠금 해제’를 인터넷에 검색했다. 역시나, 다양한 방법들이 있었다. 도대체 구글, 이런 식으로 일하실 겁니까? 결국 나는 아이에게 휴대폰을 정지시킬 거라고 반격했다. 그동안에도 휴대폰 사용시간을 어기는 날이면 늘 날렸던 경고였고, 이번에는 기필코 실행해야 하는 순간임을 아들도 나도 알고 있었다.
아들은 찔려서인지 조용히 나의 대처에 수긍했고, 그렇게 아이의 휴대폰은 정지가 됐다. 그럼에도 아들은 여전히 이렇게 말하곤 한다. ‘엄마, 안타깝지만 이번 주말은 엄마랑 시간 못 보내. 나 토요일은 000이랑, 일요일은 000이랑 약속 잡았어’라는 통보의 말. 그리고는 아직까지 시계도 잘 못 보는 녀석이 약속 시간만 되면 쏜살같이 옷을 훌러덩 벗고는 내가 아닌 제 친구를 향해 마음을 옮긴다. 섭섭해하면 안 되겠지, 이렇게 아이는 홀로서기를 하는 중이니까. 휴대폰 잠금해제 사건 덕분에 나는 한 번에 빡! 아이의 열 살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했다. 열 살은 아이가 본격적인 독립을 선언하는 시기이자 스스로의 생각이 더욱 강해지는 시기였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히려 이 나이까지도 엄마 곁을 맴도는 게 이상한 거라는 스타 강사 ‘김미경’의 말.
“엄마가 만들어준 대로 7, 8세까지 크다가 열 살이 되면 개인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자기에 대해 알아차리기 시작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