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육아도 못해내고 있다 느끼는 게 당연하다
회복력에 탄력을 부여하는 나만의 방법
워킹맘인 내가 무너질 때는 대게 이런 경우다.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난장판이 되어 있는 집을 볼 때, 아직도 산더미인 집안일이 모두 내 것이라고 손짓할 때. 겨우 다 해내고 몸을 뉘었는데, 나 아닌 이유로 인해 다시 몸을 일으켜야 할 때, (예를 들면 꼭 누웠을 때 물이 마시고 싶다는 아들의 요청) 대게 나는 짜증 수치가 확 솟구치는 것 같다.
그렇게 켜켜이 할 것이 쌓여있는 하루 중 어느 것 하나가 덜어져도 감사함을 느낀다. 할머니 집에서 지내다가 돌아온 아이의 가방 속 도시락이 설거지되어서 왔을 때, 그 가방에서 깨끗한 도시락통과 더불어 아이가 만들어온 작품이 딸려져 나올 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없던 아이의 하루를 펼쳐보는 일루미션 같아서 찰나가 환상처럼 느껴진다. 그 시간을 지나 나를 위해 남아있던 아침밥 설거지를 대신해놓고 간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씀이나 아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해주는 말랑한 손 안마 같은 것들. 그것들로 여러 개의 일들 중 내 할 일이 고작 한두 개 덜어지지만, 덜어지는 개수보다 더 큰 부피의 마음을 눈으로 볼 수 있어서 그렇다.
내가 위해지고 있다는 마음. 설거지도 안마도 아들의 작품 자랑도 결국은 나를 위해서라서 그 마음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소진된 에너지가 차오름을 느낀다. 풍족하다.
행복은 그런 것이라고 했다. 소진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 쓰는 만큼 정직하게 닳는 휴대폰 배터리처럼 사람도 에너지가 닳고 충전이 필요하다. 힘들었던 하루만큼의 보상. 보상이 된다고 느낄 정도의 흡족한 시간. 맥주 한잔이거나 아이와 깔깔 거리는 시간이거나 사랑하는 이와의 포옹, 입맞춤, 나를 위해 넋 놓고 웃는 10분의 유튜브, 무엇을 하더라도 그 행위가 지쳐있음을 상쇄해야 한다. 평일도 인생이니까. 주말로 행복이나 쉼을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해소해주어야 다음날 또다시 빵빵한 에너지를 가지고 걸음을 뗄 수 있다. 나에게는 무엇 무엇이 있으니까 괜찮아. 회사에서 있었던 그런 어떤 일 따위가 나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순 없어. 나를 무너뜨릴 순 없어. 언젠가부터 그런 단단함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무너지는 와중에도 뼈대를 지키고 또다시 켜켜이 하루를 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