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INFP 국문학도다. 아니 그랬다. 3년 전까지는.
그때만 해도 기업으로의 취업은 내 삶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 의지 없이 주어지는 일을 따박따박 해내고,
자신의 성과를 잘 어필하고, 상사에게 센스 있는 언행을 하고,
그런 일들이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물론, 모든 기업이 이런 것을 요구하는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겠지만...)
이유가 어찌 됐건 대학시절에 친구들과 '나중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할 때면
나는"글쎄, 근데 사기업에 다니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아."라고 말했다.
내 이런 대답에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럼 공기업? 공무원?"이라고 되물었다.
아니었다. 그쪽은 더 아니었다. 그럼 나는 "아니. 시인이 하고 싶어."라고 답했다.
말이 없어지는 친구도 있었고, 웃는 친구도 있었고 (나도 같이 웃었다), 철이 없다고 말해준 친구도 있었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난감할 수도 있는 대답이다.
사실 내가 말한 '시인'이라는 표현은 당시 내가 시 쓰는 데 빠져있었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사용한 단어였지만, 시인/소설가/드라마 작가/시나리오 작가 등 다양한 종류의 작가를 포괄하는 의미였다.
뾰족하게 분야를 정하지 못한 것이 아직 내가 이렇다 할 글쓰기 실력을 갖추지 못한 이유일 수도 있지만, 나는 시도, 소설도, 드라마 대본도,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알았다. 시 혹은 소설만으로 벌이를 하고 살기 어렵다는 것을. 극소수의 작가 외에는 사실 어렵다는 것을.
이후 국문학과 대학원생이 되고 나서도 비슷한 고민이 계속돼 소설 작가를 꿈꾸는 동기들과 '전업 작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000 작가님(대중적 인지도도, 작품성도 높았던 작가님)도 전업은 안된대."
"평균 연봉 조사 결과 시인은 1209만원, 소설가는 183만원이래!" (출처미상)
이러한 모든 대화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길을 두고 함께 고민하던 한 동기는 전업 작가로 살고 있다.
글 쓰는 능력도 있었고, 낮은 편균 연봉을 감내할 깡다구도 있어 졸업 직후 전업 작가의 삶에 뛰어들었고,
3년도 안된 시간 동안 이미 많은 단편과 장편 소설을 냈다. 드라마 계약까지 진행해 돈도 벌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 길에서 선회했다. 첫 번째는 불안감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작가로서의 능력부족을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부모님의 기대, 연세 들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만 좇기보다는 현실에 눈을 뜰 때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국문학 석사를 졸업하고 무소속(이라고 쓰고 백수라고 읽는) 상태가 되었을 때 나는 결국 현실에 눈을 떴고, 고통스러운 취업준비와 인턴을 거쳐 직장인이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기업에 입사하여 매일 매일을 버티며 2년차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INFP 국문학도가 대기업 직장인으로 버텨보는 일기를 기록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