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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루 Mar 11. 2023

다행히 백반증은 아니라고 하네

감사할게 너무 많은 삶

22년 여름의 끝에 쓴글


다행히 백반증은 아니라고 하네



대만에서 무더운 여름을 지나보내고 이제좀 살겄다 싶은 선선함이 찾아올쯤

집 화장실에서 다소 충격적인 모습을 목도했다.

내 등뒤에 글쎄 허옇게 반점이 올라와있던것이다.

이게뭐지? 처음에는 전등 때문에 잘못본줄 알고 요리조리 살폈다.

자세도 영불편하고 거울도 이렇다 할게 없어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영상을 찍는 등 고군분투를 하며 살펴본 결과 내 등에 정말 뭐가 있긴있었다. 밀가루가 얼룩덜룩 묻은 듯이 희미하게 허연 반점들. 그때부터 내 피부의 이상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현듯 두려운 마음에 마구 검색을 해댔다. 하얀 반점을 여러 번 치며 핏해보이는 병명이 무엇일까 찾고 또 찾았다. 

또 몸에 어디 더 없나 계속 살폈다. 그 결과 등 전반에 걸쳐 가슴, 팔쪽에도 살짝 모양이 잡히는 듯 했다. 

대만에서 또 병원에 들려 자가면역질환이 어쩌고 하며 정밀검사에 수십만원을 쓸것을 생각하니 까마득하여 곧 돌아갈 한국을 기약했더랬다.

그리고 한국에 온뒤 미루기를 몇 달 뒤, 드디어 피부과를 찾았다.


피부과를 가기전까지 걱정은 계속됐다. 약 반년에서 8개월정도 동안 그새 더 반점이 퍼진듯했다. 백반증 카페에도 가입했다. 무엇이 문제일꼬. 얼마나 더 문제가 될꼬. 어떻게 해결할꼬. 

조사결과는 그리 탐탁치 않았다. 10년째 함께하고 있는 자가면역질환의 일환이며, 정확한 원인은 불명. 놔두면 여기저기 제약없이 계속 퍼질수있고 완치는 힘듦. 스테로이드등 약물치료로 확산을 하루빨리 막아야. 골든타임을 지나쳐버리면 아쉬움, 그나마 레이저로 농도를 옅어지게 할수있긴함. 

안그래도 한국에 와서 여러의미로 처절하게 나의 해방일지를 찍고 있는와중, 이런 피부질환까지 덮치니 마음이 괜히 울적했다. 

이제 몸을 가꾸고 비로소 그나마 봐줄만한 외형을 갖추고 있는데 피부가 얼룩덜룩하다니. 그나마 가릴수있는 부위면 다행이다 쳐도, 왠지모르게 얼굴에도 조금씩 올라오는듯하는게 아닌가. 오마이 노우! 


그렇게 피부과를 찾아갔고 정말 감사하게도 백반증의 대가 명의가 바로 우리집 앞에서 병원을 한다는걸 알게됐다. 시간끌거 없이 가장 빠른날짜로 바로 예약을 했고(그마저도 3주뒤였다), 또 그것도 기다리기 힘들어 예약 한주를 남겨두고 더 일찍 찾아가 약 2시간 대기끝에 선생님을 뵐 수 있게 되었다.

1분도 채 안되는 시간동안 우드등으로 요리보고 조리보고 하더니 선생님이 딱 내뱉는 한마디는 참으로 선물같았다. 

‘백반증 아니야’

끄오오? 백반증이 아니라고? 그럼뭐지?! 더 심한건가?

사실 마지막 생각인 ‘더 심한건가’는 가짜다. 나는 본디 긍정회로가 훨씬 더 발달한 것 같다. 부정보단 긍정으로 상황을 예측하고 바라보는게 틀림없다. 뭐가 됐든 백반증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병명을 적어줄 테니 집에가서 조사해서 치료할지 결정해’

?? 물음표가 다섯개는 생기는 한마디였다. 

치료를 할지말지 선택하라는건 안해도 된다는건가? 그만큼 별거 아니라는거야? 

그리고 왜 혼자 조사하라고 하지? 그냥 퀵하게 선생님이 브리핑해줄 순 없는건가? 치료를 한다면 어떤방식으로 하는거지? 완치는 된다는건가?


차근차근 물어보니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병은 진행성 ~. 나중에 검색해보니 백반증과 유사하긴 한데, 정확히 같은건 아니고 색소침착으로 생기는 보다 라이트한 증상이다. 주로 여성의 가슴, 배 등 중심부에 생기고, 10년 정도 뒤면 자연소멸하는 편이라고 한다. 심해도 목까지 올라오고 얼굴로는 올라오지 않는다고. 정 보기 싫으면 레이저를 통해 치료할 수 있으며 몇주만에 싹사라지게 해줄수 있단다.


추가로 조사한 바에 따르니 선생님의 말이 얼추 맞았다. 다만 발견한다면 치료를 권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간호사선생님한테도 추가로 여쭈니 정확하진 않지만 회차당 3만원정도 하는 레이저를 이야기하는듯하다고 한다. 몇십만원이면 어쩌나 걱정한거에 비하면 너무나 감사한 수준이었다. 


감사한 일들은 참 많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그러하다. 그리고 요즘 나에겐 객관적으로 봐도 그러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게 분명하다. 

이런 감사함이 찰나의 감정에 지나버리지 않게, 그만큼 오만해지지 않고 계속 감사함을 가지고 살수있도록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주 그리고 구태여 꺼내서 해야할 터이다.


우려하던 병이 사실은 별거 아니였다는 것. 그 조차도 말끔하게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 그에 비용이 그닥 많이 들지 않는 것.

덤탱이를 씌우려는 선생님이 아니라는 것. 백반증과 ~증을 한눈에 비교하고 해결법또한 단번에 별거 아니라는듯 툭하고 던질 수 있는 숙련된 대가가 우리집 앞에 있었다는 것. 평일 낮에 그런곳에 가서 2시간을 대기해도 무리가 없는 근무여건의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것. 


주말저녁 혼자 자전거를 타고 와서 이렇게 아름다운 망원한강앞에서 시원한 공기를 쐬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반가운 얼굴을 방금 만났다는 것. 아직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시도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 진척도 된다는 것. 


스스로 너무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난 멈춰있지 않잖아. 다만 내가 원하는 속도가 아닐뿐. 차근차근 하나씩 하면 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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