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나를 그렇게 대하길 기대하기에
23.2.23/ 싱가폴에 막와서 집구하느라 멘붕할때 쓴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여기와있을까
갑자기 멘붕이 왔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싱가폴에 와서 집을 구하는 문제로 정말 정말 정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행히도 마스터룸을 싼가격에 어떻게 잘 구했는데, 거기까지 들어가기 위해서 보름이 붕 뜨게 되어버렸다.
어떡하냐 진짜 ㅋㅋ
도저히 안구해진다. 남이긴 한데 다들 그냥 너무 차갑다 ㅠㅠ
다들 한치도 손해를 보려하지 않고.. 뭐 당연한 거긴 하지만.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니 신경계가 날뛰고 숨이 가빠지고.. 위도 말썽이다.
스트레스의 징조가 이제 이렇게 명확해졌다. 나를 그만큼 알게됐다고 해야되려나.
이런 총체적 난국의 시점에 기이하게도 생각난이들이 있다.
먼저 k님. 싱가폴에 오기 직전 소개팅으로 만났던 따땃한 인물이 생각난다. 나 한국에 있었으면 그오빠랑 잘됐을텐데. 분명 다른 국면이었을텐데.
그분의 따뜻함이 자꾸 생각이 난다. 얼어붙은 나를 따땃하게 녹여주었던.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그런것 다 버리고 여기 이 말도 안되는 땅덩어리에 와서 이리 고군분투를 하고있나, 난데없는 현타가 왔다.
여기는 정말이지. 숨만 쉬고 있는데도 무언가 꽉 조여오는 기분이다. 편의점에 가서 뭘 사먹으려해도, 식당에 가는것도, 집세를 내는것도 전부 다 말도안되는 가격이다. 아직 한국물가 패치가 업데이트 되지 않아서 그런것이려나. 싱가폴 물가로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 생각이 좀 달라지려나.
그래도 한국에서 가격신경안쓰고 하고픈거 막하던 씀씀이는 이제 작별해야한다는 강한 확신이 든다
참고로 친구들과 밖에서 밥한끼 먹는데 기본4만원이 나온다 ㅋㅋ 택시는 기본 삼만원
또 생각난이는 바로 내 집을 보러왔던 엄마지인의 지인과 그의딸.
내방을 헐값에 가져갈뻔했지만 내가 ‘상도덕’에 어긋나게도 갑자기 계약조건을 번복하면서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은 이들이다.
분명 한국에서는 그들이 순진해빠지고, 예민하게 반응하고, 과도하게 요구한다고 생각했다. 계약서도 안쓴상태에서, 계약금도 오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확신을 기대하는건지.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 뒤바뀌었다. 내가 그런 뒤통수(?)를 치고나니, 똑같은 뒤통수를 이 낯선땅에서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거다. 누구말(바로 나다. 그들을 보며 생각했던 딱 그대로의 생각이다)처럼 사람은 ‘순진’해선 안되고, ‘자기권리는 자기가 챙겨야하기’때문이다.
하 뿌린거 그대로 거두는것인가.
그런 이력이 있는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하는 모든 종류의 방계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벌벌 떨고있다. 보증금을 보냈는데 먹고 튀면 어쩌지 부터, 보증금을 줬음에도 갑자기 계약을 파기하면 어쩌지, 보증금을 안받는다는데 없던일로 하면 어쩌지 등등
온통 불신할 것 덩어리다.
이제 알겠다.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하는 이유는 나를 잘대하기 위함이다.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은 곧 세상이 나를 대하기를 기대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되었다.
아무도 신뢰하지 못하고, 문명의 합리성에 기댄 수단(계약금)을 사용함에도 불안에 쩔쩔매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타격이 크다며 내가 위로금조로 드린 돈의 2배를 요구했던 그 아주머니의 마지막 연락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그돈을 줬어야했다. 그렇게 해도 그들이 당한 당혹스러움과 세상에 대한 불신, 상처 그리고 다시 집을 구해야하는 막막함과 번거로움 비용 등 모든것을 결코 상쇄할 수 가 없다. 절대 절대. 고작 20만원으로도 부족해.
깊게 반성한다. 정말 나는 그러지 말았어야했다.
이곳 싱가폴에서 겪는 이 불신으로인한 스트레스가 그 벌이라면, 받아도 싸다.
잘못은 잘못이고, 그래도 어떻게든 난 여기서 생존을 해야하는,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사람이기에
어떻게든 이겨내야한다.
‘아 무슨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서 이러고 있나’하는 생각이 입싱한지 단 이틀만에 들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는데
그와 동시에 반작용적인 생각도 함께 나오는것을 목격했다.
‘고작 이거때매 돌아간다고?’ 쪽팔려서라도 못간다는 생각. 이정도에 져버릴수 없다는 강인함에 대한 열망에서 오는 오기 등 많은것이 작용한것이겠지.
그렇게 온 동네방네 떠들며 싱가폴에 취직을 했고 2년정도 있을거라고 했는데 시작도 안하고 그렇게 가버린다니, 그런 우스운 꼴도 없을법.
나 이렇게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게된지 꽤 되었는데 신기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떠오른 또하나의 생각이 마음을 누그러뜨리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나 어차피 거기서 할거 없었잖아..?
그래 맞다 . 나 한국회사에서 낙오됐었다. 난 지금, 한국에서의 해피해피하고 안정적인 핑크빛 삶을 ‘버리고’온게 아니라는점.
그생각이 드니 정신이 확들었다. 한국에서의 대안은 없었고 생각지도 못한 최고의 선택지가 툭 떨어졌던,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서 온게 아닌가.
그점을 꼭 가슴깊이 새겨야겠다.
그래.. 어찌저찌 멘붕을 호흡과 마주함으로 잠재웠고, 거주문제를 해결해냈으니 이런식으로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보자.
처음이라 그럴거야. 처음이라 물가도, 인종의 다양성도, 사람들의 차가운 느낌도 적응이 필요한것일거야.
우선 한달을 버티고, 세달을 버티고 그렇게 일년을 버텨보자. 그렇게 가능하면 이년도.. 삼년도. 집계약기간은 채워야지 않겠어?
나에겐 많은 행운(싱가폴에 잡을 구하게된것,사업을 신경써줄 매니저들을 구하게된것,여기서 귀한인연을 빠르게 알게되고 도움을 받게된것,좋은 방을 바로 구하게된것,방들어가기전까지 또 방을 구하게된것)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집중하면서, 그리고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것들은 당당하게 마주하고 하나씩 차근차근 제거해가면서 . 살아보자.
나 그만큼 강하다!! 나 개강하다!!! 생각한것보다 더 더!!!
ps.이제 확실히 멘붕이 올때 이를 어떻게 다스려야할지 방법을 터득한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제 나는 나를 어떻게 다룰지 안는거 같아.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 두려움을 어떻게 제거하는지도. 내가 잘하는게 무엇인지, 못하는게 무엇인지. 잘하는걸 뽐내게 하는법은 얼추 잘하는데 못하는걸 커버하는건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이번년에는 꼭 극복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