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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루 Oct 02. 2023

ADHD가 의심되는 이십대여성의 퇴사기

2023년 9월 13일, 7번째 회사를 퇴사했다. 더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최소한 내 주변 동료들은 무리없이 잘 해내는 일들이었다.

시스템이 어려워서, 멀티가 많고 신경쓸게 많은 일의 속성상, 초반 적응에 시간이 필요하다고들 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8주가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적응의 문제가 아니겠구나 확신이 든건 8주차가 지나고 팀리더가 나를 회의실로 불러다가 물어본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너는 이 일에 얼마나 진심이니?”


물론 내 모든 삶의 동기와 맞아떨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회사 밖에서 진행하는 내 사이드프로젝트를 대할 때 만큼의 동기와 열정이 풀타임 잡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외노자로 살고있는 나는 여전히 이 직업이 필요했다. 직장은 곧 이 곳에서 적법하게 지낼 수 있는 비자획득을 의미하기에. 

이 곳에 남아서 지내고 싶은 만큼 내 직업에 간절했고, 난 한동안은 이곳에 남고 싶었다.

이정도면 비자문제가 없는 한국에서의 직장생활보다 더한 동기를 갖은 셈이다. 헌데 이런 질문을 받고 있자니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회사 밖에서 영위하고 있는 내 사업으로 화살이 쏠리는것에 더 북받아 힘주어 대답다. 


‘전 제 사업에 일주일에 1시간도 안써요’



문제는 분명 다른곳에 있었다. 

일이 내게는 어려웠다. 안맞다는 표현도 이글에서는 솔직히 못쓰겠다. 단순히 안맞는거면 꾸역꾸역 해내긴 할테니. 실수로 범벅이 되어 시간도 겨우 맞춰 내보이진 않을테니.

내게 일이 버거웠던게 맞다. 

동시에 여러일을 요청받았을 때 정신을 못차리고, 긴 히스토리를 기억해내야할때 머리가 텅 빈것같았다. 빠르게 답변을 해줘야할때 세상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어서 자주 미루곤 했으며, 어렵게 느껴지는 큰 뭉텅이의 일앞에 압도되어 손도 못댄채 자주 기한을 넘겼다. 


나도 인정하기 힘들었다. 이 일이 왜 어려워? 

옛날같았으면, 불과 1년전만해도 다 헤치웠을 일들이다. 이보다 더 어려운 일들도 꿀떡꿀떡 잘 헤치워오던 나였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절대 입밖으로는 꺼낼수가 없었다 . 그녀의 질문에 진짜 대답을 하는 것은 곧 그들이 날 고용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하는셈이니.

그저 적응이 좀더 필요하다고 둘러댈 뿐이었다.



팀리더도 쌓인게 많았는지, 대답을 듣고는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는지 리스트를 읊어주었다.

1.모르는게 있어도 절대 물어보지 않으며 2.메세지에 빠르게 대답하지 않을뿐 아니라 3.가끔 조는것을 목격하는이가 있다는 것. 


세번째에서 게임은 끝나버렸다.

그 어떠한 변명도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에서는 받아들여질수 없는게 두개가 있다면 졸음과 지각이다. 

지난 7개의 회사를 거치며 쌓인 직감과도 같다. 그놈의 기본. 기본. 

그 두개빼고 다 잘해도 잘리는 판이다.남의 돈을 빌어 일하는 이의 숙명이다.



점심을 먹고 오후 2-3시만 되면 그렇게 잠이 쏟아졌다. 

내 의지로 눈을 뜨고 있는게 불가한 수준이었다. 

몸이 컴퓨터와 같아서, 잠시 그시간대에 로그오프 혹은 강제잠금 모드라도 되는듯 했다. 그리고 이는 전직장에서도, 전전직장에서도 심심치않게 있던일이다. 



다행히 이번 직장에서 지각은 하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말도안되는 성과냐, 29년 인생에서 지각은 정체성과도 같았다. 

초등학교때도, 중학교 고등학교때도 그랬다. 대학교때 1교시는 잘 못갔고, 사회초년생 첫직장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물론 이번회사에서도 출근 3일만에 시작하여 2주동안 몇차례 하긴했지만, 불려가서 꾸지람을 듣고는 그다음날부터 절대 늦지 않도록 정기택시기사를 고용했다. 

‘늦지않음’이라는 재화를 얻기위해 돈으로 레버리지를 했다. ‘그저 한시간일찍 일어나서 빠릿하게 움직이면 되는일’이 가능한 사람들은 하루 2만원의 택시비가 아깝다고 했다. 그것이 매우, 매우 어려운 나에겐 하루 단돈 2만원으로 평생의 골칫덩어리를 해소하는 아주 미라클스러운 경험이었다. 

어쩌면 나의 이 결함들이 어떤 시스템으로 보완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정상인들은 당연히 누리고 사는) 더 많은 기회를 얻게되지 않을까 꿈꾸게되기도 했고 말이다. 



한창 면담을 나누고 한시간만에 회의실을 나왔다. 

여기서 잘리는건가 걱정도 되었는데, ‘아직 조금더 적응이 필요하다’와 ‘동기는 분명이 있다’는 것을 면담 내내 강조해 풀타임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게 내려진 두가지 처방이 있었는데, 참으로 골치아팠다. 

1)매일 10개이상 팀리더에게 질문하기 그리고 2)의자를 가져와 팀리더 옆에 붙어서 일하기



질문하는 것에 압도되어 질문을 미루는 나에게 과업이 쪼개어 주어졌다. 

새끼 고양이에게 먹이를 쪼개어 주듯, 따뜻하면서 지혜로운 팀리더는 더이상 나의 태업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비장의 카드를 커내든 듯 했다.


또한 의자를 가져와 팀리더 옆에 앉아 일을 하는 심정이란, 

초등학생때 하도 정신이 산만하고 수업을 못따라가는 문제적아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 당시 나와는 다른 세상의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20년이 지나 무려 직장에서 그런 아이가 되고 있자니 그리도 비참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adhd가 맞다면, 어릴때 모르고 지나간 그 빚을 이제 치뤄내는건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다. 


망할 책임감이 발동해, 돈을 받고 일하는 주제에 동료들에게 짐을 얹기까지 하는 내꼴이 참 가관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믿어주고 다시한번 기회를, 맞춤으로 여러 처방을 내려준 팀리더를 봐서라도 룰에 착실히 따랐다. 

미소를 지으며 버티고 또 버텨보았다.



그렇게 3주뒤에 결국 퇴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제 더이상 시스템에 익숙치 않아 업무가 미숙하다는 명분이 통하지 않을때 쯤, 

팀리더의 신뢰와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 그의 인류애까지 갉아먹어 들기전 쯤 

퇴사를 하는게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시는 남을 위해 일을 해서는 안되겠구나 다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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