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키 작은 비운의 예술가,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보헤미안으로 살아간 화가.
툴루즈 로트렉을 지칭하는 키워드는 많지만, 그의 생애 중 안타까운 면만을 부각한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면적이었던 그의 면모를 다층적으로 조망한 전시가 열렸다. <툴루즈 로트렉: 몽마르트의 별>이다.
전시는 삼성역 근처의 대형 전시 공간,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2025년 3월 3일까지 진행된다.
어린 시절 내 기억에 툴루즈 로트렉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키 작고 밝히는(?) 화가’였다. 그때 쯤에 읽었던 미술 서적에서는 툴루즈 로트렉에게서 장애, 귀족 출신, 매춘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후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그가 벨 에포크 시대의 상징적인 예술가로 등장하면서 그가 사랑했던 파리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기도 한다. 낭만적인 시대에서 고집 있게 자신만의 시선으로 작품을 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의 생애에서 키워드만 놓고 보면 충분히 자극적인 요소가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가까이서 보면 괴짜인 것만은 아니지 않나.
이번에 열린 <몽마르트의 별>이 툴루즈 로트렉에게 강하게 박혀있던 이미지에 조금은 다른 시선을 더한 것 같다. 그의 삶 가까이에서 바라본 작품에서는 인간적인 면도 많이 느껴졌다.
전시는 총 4부로 나뉜다. 1부 보헤미안, 2부 휴머니스트, 3부 몽마르트의 별, 4부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로 마무리 된다. 벨 에포크 시대의 화가답게 전시장의 분위기도 낭만으로 가득했다.
전시 <툴루즈 로트렉: 몽마르뜨의 별>의 매력적인 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 소개한다.
*벨 에포크 시대 : 프랑스어로 19세기 말부터 제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를 뜻한다.
컨셉츄얼 - 시대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전시
브로슈어부터 내부 디스플레이까지, 그 시대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전시다. 전시장 외부부터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입장 전부터 기대감이 올라가는 요소였다.
브로슈어는 신문지처럼 만들어졌다. 한 면은 뉴스 기사처럼 구성을, 뒷면은 그의 작품으로 크게 인쇄됐다. 살짝 빛바랜 것 같은 톤도 시대의 감성을 더한다.
중간중간 장과 어울리는 컨셉의 전시장을 만들어 두거나 하나의 소재로 통일성 있게 전시해 둔 점도 눈에 띈다. 예를 들면 빨간 벽이 돋보이는 ‘카페 콩세르’ 부분이나 서커스 풍경만을 벽면이다.
19세기 말 파리의 유흥시설 중 하나였던 카페 콩세르는 일종의 라이브 바에 가까웠다. 카페 콩세르에서는 사람들이 식사와 술을 함께하며 공연도 즐길 수 있었다. 전시장 내부에는 어울리는 음악이 함께 나와서 그 시절의 밤 문화를 간접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서커스에서>는 그의 인생 말년, 병원에서 그리던 판화집이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관람했던 서커스의 풍경을 기억에 의존해 그렸다. 풍경을 보지 않고 그렸다고 하기에는 한 장 한 장이 무척이나 생생하다.
<서커스에서> 파트는 총 두 줄로 전시했는데, 서커스장의 돔을 내려다보는 시선의 삽화는 아랫줄에, 공중곡예를 하는 곡마사의 풍경은 윗줄에 배치했다. 작품의 크기도, 배치도 딱 맞아떨어져서 실제 위치에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감 - 상업 포스터와 그래픽 아트
무엇보다 그가 그렸던 홍보용 포스터를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초기의 실험적인 작품부터 이후의 판화 작품까지. 상업용 포스터라고 하기에는 예술성이 넘치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현대 그래픽 아트의 시초라고 불린다.
바처럼 보이는 공간, 노란 의자에 앉은 여인의 자태가 강렬하다. 다방 자포네는 몽마르뜨의 클럽이었고, 툴루즈 로트렉이 이곳의 홍보 포스터를 그리게 된다. 자유로운 분위기와 더불어 노랑, 검정이 주로 쓰였고 맨 위에는 가게 이름을 크게 적어두었다.
고민에 잠긴 듯한 여인의 표정과 화려한 클럽의 분위기가 계속 시선을 잡아끈다. 전시장에서도 작품의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그 당시에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한 남성이 물랑루즈의 여인을 꾀려고 말을 거는 듯한 모습이다. 저 진득거리는 눈빛과 여인들의 불쾌함이 선명히 보이는데도 발랄한 색감 때문에 심각해보이지는 않는다. 인물마다 다른 색상으로 외곽선을 그린 것도 재밌다. 만화같은 구성과 화사한 색이 기분좋은 작품이었다.
판타지 - 프랑스 아르누보의 작품들
본 전시에서는 아르누보의 다른 작가도 만나볼 수 있다. 로트렉과 동시대에 작업했던 알폰스 무하, 쥘 세레, 테오필-알렉상드르 슈타인렌을 포함해 13명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아르누보 포스터의 황금기라고 할 만큼 스타일은 다르지만, 다채로운 작품을 한 곳에서 만났다.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작가들이었던 알폰스 무하, 쥘 세레의 작품들은 판타지의 세상처럼 아름답다. 회화작품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에서 인물이 나올 것 같은 생생한 색감과 묘사, 환상적인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툴루즈 로트렉의 인간적인 시선은 2부에서 보다 더 잘 드러난다. 그는 파리의 화려한 모습과 이면의 모습을 모두 화폭에 담아냈다. 그는 파리의 사창가를 유혹적이고 퇴폐적으로 그려내기 보다 그들의 삶에 직접 들어가 평범한 일상을 담았다.
툴루즈 로트렉의 예술세계부터 프랑스 아르누보의 작품까지 볼 수 있는 전시, <툴루즈 로트렉: 몽마르뜨의 별>은 내년 3월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