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촬영현장 일로 돈을 벌며 지내는 삶은 새로웠지만 내가 원하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이라는 더 큰 무대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단편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때마침 고향 원주에서 진행 중인 단편영화 제작지원 사업을 발견했고 480만 원이라는 제작비를 지원받게 되었다.
잘 만들 자신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내가 직접 만든 단편영화가 10편이나 되었다. 소꿉장난 같은 식이었지만 그래도 직접 각본을 쓰고 촬영, 편집을 한 경험이 있었다. 게다가 서울에서 연출팀, 제작팀 일을 하며 쌓은 노하우도 있었기에 실무적으로도 예전보다 능숙했다. 하지만 내 자신감과는 달리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영화는 혼자 만들 수 없다. 일단 배우가 필요하고 스탭이 필요하다. 이 둘을 최소한으로 줄인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전에도 말했듯이 이런 소규모 영화에선 많은 사람들을 고용할 수 없기 때문에 좋은 실력을 가진 소수가 하나의 팀이 되어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능숙한 실력을 가진 사람은커녕… 그냥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동안 일하면서 친해진 몇몇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 다른 작품을 촬영 중이라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원주에서 함께 단편영화를 만들던 친한 친구 J가 조연출을 맡기로 했으니까. 워낙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그를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J는 서울 모 대학의 영화과에 재학 중이라 다른 스탭들도 J를 통해 구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서부터 일이 꼬였다.
우선 J가 소개한 촬영감독을 만났다. J는 그를 ‘빛의 마술사’라고 소개했다. 나이는 나보다 1살이 적었다. 당시 내가 24살이었으니 그 친구는 23살이었다. ‘빛의 마술사’에게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23살짜리가 촬영을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는가. 그에게 바라는 건 딱 두 가지였다.
1. 기본적인 촬영 지식
2.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성격
영화과 촬영 전공에다가 별명이 ‘빛의 마술사’라고 하니 촬영의 기본은 알 테고, J가 추천한 사람이니까 이상한 사람은 아니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딘가 쎄한 부분이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영화에 무지했다. 내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의 촬영 스타일을 레퍼런스로 삼고 싶다고 하자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폴 토마스 앤더슨을 모르냐고 물어보자. 모른다고 했다. '빛의 마술사'가 폴 토마스 앤더슨을 모르다니…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당연히 폴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감독을 모를 거다. 그는 90년대 미국에서 데뷔한 가장 뛰어난 감독 중 한 명이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다. K-POP 아이돌 지망생이 뉴진스를 모르고, 요식업에 도전하려는 사람이 백종원을 모르며, 배우 지망생이 송강호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폴 토마스 앤더슨을 좋아하지 않을 순 있다. 헌데 아예 이름조차 모르다니 그런 그가 '빛의 마술사'라니… 영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J는 제작PD도 소개해줬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기에 함께 일을 하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프리 프로덕션(촬영 전 준비 단계)을 시작했다. PD는 진행비를 달라고 했다. 장소 섭외를 하러 돌아다녀야 하니 교통비와 식비가 필요하다는 거다. 당연히 줘야 할 돈이므로 바로 송금해 줬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그는 섭외한 장소를 공유하지 않았다. 촬영은 점점 가까워 오는데 섭외되는 장소가 없었다. 장소를 알아보았냐고 물어보니 알아보는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너무 답답해서 내가 직접 장소를 알아보았다. 인터넷으로 3시간 만에 섭외 가능한 장소를 10곳 넘게 찾았다. 이 친구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촬영을 2주 정도 앞두고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주연 배우가 스케줄을 착각해 정해진 촬영 날짜에 촬영을 할 수 없다고 통보한 것이다. 다른 일정으로 조율해보려 했으나 올해엔 가능한 날짜가 없다고 그는 말했다. 매니저가 없는 독립영화배우라 정신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갑자기 내 시나리오가 맘에 안 들어 하기 싫어진 건지 알 수는 없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주연 배우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는 것. 결국 촬영을 미루고 다른 배우를 물색했다.
촬영이 미뤄지자 PD는 나에게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아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내 20만 원을 꿀꺽했다. 친구 J도 기말고사 때문에 촬영 준비를 도울 수 없다 했고, 현장에서 소품을 담당하기로 한 J의 과 동기 역시 같은 이유로 하차했다. 휴학 중이던 빛의 마술사를 제외하고 모두 떠났다. 그렇게 나는 혼자 남았다.
내게 남은 건 나의 혈육인 친동생뿐이었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그는 월세와 생활비를 내지 않은 채 나의 반지하 자취방을 무단 점거하고 있었다. 그동안 내지 않은 월세가 얼마인지 들이밀며 나를 도와줘야 한다고 협박했다. 동생도 내 사정이 딱했는지 성심성의껏 영화 제작을 도왔다. 프리프로덕션은 동생과 내가 모든 준비를 했다. 나와 동생 모두 운전을 못해서 운전해 줄 사람을 구해야 했다. 고등학교 동창, 함께 일했던 PD님(나보다 18살이나 많으시다. 촬영 비품과 간식, 식사까지 제공해 주셨다), 함께 제작팀을 했던 누나, 친한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직원 형이 하루씩 돌아가며 운전과 여러 잔업을 도와주기로 했다.
급하게 주연 배우를 다시 섭외하고 3일 간 촬영에 돌입했다. 일정이 빡빡했으므로 잠잘 시간도 부족했다(이 부분에 대해선 스탭과 배우들에게 여전히 미안하다). 시간이 없어 항상 서둘렀지만 일할 사람이 부족해 촬영은 더뎠다.
빛의 마술사는 전혀 마법을 부리지 못했다. 촬영을 정말 못했다. 차라리 내가 촬영을 했으면 더 잘했을 거다. 게다가 게을렀다. 촬영 전, 그와 함께 촬영 장소에 가서 어떻게 찍을지 회의를 하고 스토리보드도 만들었다. 하지만 빛의 마술사는 미리 얘기한 내용을 다 잊어버렸고, 스토리보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촬영감독이 뭘 찍을지 모르니 촬영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었다. 너무 화가 났다. 엉망진창으로 촬영이 끝났다. 결과물은 고등학생 때 만든 단편영화보다 못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보자면 이렇게 했어야 한다. 우선 내가 연출과 촬영을 함께 맡았어야 한다. 480만 원이라는 제작비로 좋은 촬영감독을 구하기 어려웠고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 내가 직접 촬영을 맡아 돈을 아껴야 했다. 나 혼자 알아서 하면 되니까 촬영감독과 쓸데없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느라 진을 뺄 일도 없었으리라. 그렇게 스탭은 나와 동생 단 두 명, 촬영 장비도 카메라와 삼각대 정도로 간소화하고, 차를 렌트하지 않고 택시를 타고 다녔다면 회차를 3일이 아닌 5일에서 7일 정도로 늘릴 수 있었다. 이렇게 했다면 비교적 수월하게 촬영을 마쳤을 거다. 그래도 좋은 작품은 나오지 않았겠지만.
시나리오가 별로였기 때문이다. 재미도 감동도 없는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내가 쓴 시나리오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영화진흥위원회나 서울에서 진행하는 단편영화 제작지원에 떨어졌을 때 깨달았어야 했다. 내 시나리오가 구리다는 걸. 하지만 나는 빨리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으니까. 더 이상 혼자 아등바등하고 싶지 않았다. 내 영화를 만들며 동료를 만나고 또 영화제에 가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다른 젊은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다. 그런 조급함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드니 좋은 작품이 나올 리 없었다.
단편영화의 편집을 마쳤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였다. 영화제에 초청받지 못했다. 지원금 외에 사비 200만 원을 제작비로 써 버리는 바람에 생활비가 모자랐다.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먹고살기 위해선 다시 일을 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