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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네마진국 Jun 07. 2024

꿈 많은 고졸 지방러의 서울 생존기

  절망적이다. 공모전에 제출할 목적으로 쓰던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못했다. 완성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려나? 내 시나리오는 너무 구려서 냄새가 날 정도였다. 코를 틀어막고서라도 마무리를 지어보려했으나 구역질이 나서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결국 깔끔하게 이번 공모전을 포기했다. 허망하면서도 편안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다가 문득 15년 전 보았던 쓸쓸한 하이에나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하이에나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도 없던 2009년의 여름.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국민들은 열광했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이날 이후로 주말마다 친구들과 모여 야구를 시작한다. 10명 남짓한 아이들이 모여서 WBC보다는 슬랩스틱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쳤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야구를 한다는 게 재밌었으니까. 


  친구들이 얼마 모이지 않은 날이었다. 인원이 적어서 펑고(투수 없이 하는 일종의 수비 연습)를 했다. 근데 유독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었다. 야구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우릴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미소를 짓는 건지, 비웃는 건지 표정조차 묘했다. 게다가 옆에는 야구가방까지 놓여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마치 스카우터 앞에서 테스트를 받는 고교 야구선수가 된 느낌이었다. 어색한 기분으로 펑고를 하는데 남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대뜸 공과 배트를 달라고 하더니 자기가 연습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남자의 알 수 없는 카리스마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게도 남자는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척척 공을 쳐서 보냈다. 괜히 유니폼을 입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러면서 배팅하는 법, 공 던지는 법을 알려줬다. 전문적인 야구 교육을 받은 적 없던 우리는 그를 경이롭게 바라봤다. 남자는 1시간 정도 연습을 도와주다가 가방을 메고 갈 채비를 했다. 


"야구 재미있니?"


그가 뜬금없이 물었다. 


“네”


나와 친구들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그래. 재밌게 해라.”


라는 다소 싱거운 말을 남기고 그는 운동장을 떠났다. 나와 친구들은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남자의 뒤로 석양마저 드리워져 있던 거 같다. 이건… 마치 쓸쓸한 하이에나의 모습이 아닌가? 눈 덮힌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고 싶었던.. 하이에나.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다며 술 취한 어른들이 애타게 찾아대던 그 하이에나 말이다. 


  하지만 그 후로 하이에나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했고, 당연하게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으며, 무슨 일인지 2013 WBC에서 대한민국은 본선 1라운드에서 탈락을 했고, 당연하게 야구는 나의 관심사에서 멀어졌으며, 어쩐 일인지 나는 야구보다 영화 만들기에 더 관심을 가져 주말마다 친구들과 단편 영화를 만들었고, 영화 감독이라는 꿈을 키우더니, 제대 후에 서울로 올라와서 이것저것 영화 비스무리한 일을 하다가, 공모전에 낼 대본조차 쓰지 못한 채 서른이 되어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다. 


“영화 재밌니?”

“네? 아마요..?”

“아.. 아마..라고?”


자문자답을 하는 하이에나의 심정으로 원룸 안에 덩그러니 있다보니 이곳이 무인도 같았다. 아무도 오지 않는 도시의 무인도. 나는 이 섬을 놀 거리와 친구들이 넘쳐나는 코니 아일랜드로 꾸미고 싶었으나 제대로된 회전목마 하나 만들지 못했다. 이 섬에서 탈출하리라 다짐하며 뗏목을 만들려 했지만 그것 마저 실패했다. 


  무엇을 써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그러던 중 지인이 내게 말했다. 


“네 얘기를 써보는 건 어때?”


뭔소리야

라고 당시엔 생각했다. 내 이야기엔 극화할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다. 내가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특이한 점이라면 고졸 출신 지방러라는 것 정도. 이것 때문에 생긴 몇몇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걸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순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꼭 영화나 드라마로 써야 하나? 내 경험을 픽션이 아닌 논픽션으로 쓰면 안 되는 건가? 언제부턴가 나는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그래서 지방 출신 고졸 청년의 다사다난했던 서울 생존기를 써보기로 했다. 도시 속 무인도에서 병 안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띄워 보내는 마음으로 지난 7년 간 내게 일어난 일들을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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