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여행을 기다리며 일상을 잘 보내고, 지난 여행을 곱씹으며 지내야지
함께 퇴사하기로 한 남편의 계획이 밀리면서 태국 한 달 살기도 밀렸다. 못내 아쉬워 짧게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짧은 일정에 만만한 건 역시나 일본. 마침 특가로 항공편을 잽싸게 예매했다. 요나고라는 소도시였다. 일본 여행을 여러 번, 특히 오키나와는 셀 수 없이 많이 다녀와 감흥이 좀 떨어졌는데 요나고는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라 설렜다.
7월의 요나고는 정말 더웠지만, 해가 쨍쨍 - 날씨가 좋았다. 덕분에 모든 풍경이 아름답게 빛났다. 나무도, 산도, 바다도. 특히 숙소에서는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전 객실이 오션뷰라고 했다. 이 바다를 투숙하는 모두가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넉넉해졌다. 특정 객실에서만 오션뷰를 볼 수 있는 숙소에서는 오션뷰가 아니면 서운했고, 오션뷰일 때는 괜히 내가 풍경을 독점하는 것 같아 불편했으니까.
숙소 앞 나무가 유난히 아름다웠다. 사진을 찍어 부모님께 보내며 무슨 나무냐고 물었다. 수양버들이라며 우리나라 토종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란다. 살면서 처음 본 나무 같은데 흔하다니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공원을 산책하며 이 나무를 여러 그루 봤다. 왜 여태 몰랐을까. 여행지에서는 모든 걸 특별하게 바라보는데, 일상은 늘 무심하게 쳐다봐서 그런 것 같더라. 일상도 여행처럼 특별하게 바라보는 마음을 가져야지, 하고 다짐했다.
남편이 일자별 계획을 미리 세웠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우리는 컨디션과 기분, 날씨에 따라 움직였다. 졸리면 편의점에 차를 세우고 잠깐 잠을 청했고, 배가 고프면 밥 먹는 시간을 당겼다. 너무 더워 밖을 걷는 대신 쇼핑몰 안을 걸었다. 평소 같으면 분명 스트레스받았을 테다. 계획대로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고, 일이 잘 되고 있다고 믿는 나니까. 하지만 여행지에서 만큼은 아니다. 여행지에서는 계획이 바뀌는 것 까지도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돗토리 사구에도 다녀왔다. 먼발치에서 언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자그맣게 보였다. 이 날씨에 저길 어떻게 가냐 싶었지만, 또 이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걷나 싶더라. 주저하는 남편을 살살 꼬셔 걸었다. 위로는 해, 아래로는 모래로 뜨거웠다. 쉬엄쉬엄 땀을 뻘뻘 흘리며 걷다가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언덕에 올랐고, 거기서만 볼 수 있는 바다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올라오길 정말 잘했다 싶은 풍경이었다.
여행에서 음식 먹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는 법. 미리 찾아둔 식당을 하나씩 찾아갔다. 어떤 음식은 생각보다 맛있었고, 또 어떤 건 실망스러웠지만 음식을 맛보며 남편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즐거웠다. 맛있는 음식과 친절한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 번역기를 돌렸다. 그들에게 번역한 문장을 보여주면, 처음엔 뭐지 하면서 쳐다보다가 이내 얼굴이 환해졌고, 고맙다고 했다. 덕분에 내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한국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잘 먹었습니다. 너무 맛있었어요.‘라고 종종 인사했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많이 말해야지 싶었다. 좋은 건 표현하면 더 좋아지니까.
지난 일요일, 다시 한국으로 일상으로 돌아왔다. 금세 우리는 또 이 일상에 적응했다. 한국의 운전에, 생활에, 시간에. 하지만 틈이 날 때면 일본 여행 사진을 본다. 벌써 추억이 되어 버린 여행, 퇴사 후 한 달 만에 다녀온 여행. 다음에 또 언제 떠날 수 있을까. 다음 여행을 기다리며 이 일상을 잘 보내고, 지난 여행을 곱씹으며 지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