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또 이런 여행을 하고싶다.
내 인생에서 첫 여행은 언제더라.
부모님 손에 이끌려 간 여행 말고, 내가 계획을 세워 떠난 여행 말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펜션을 잡고 논 적이 여러 번이지만 여행이라고 말하기엔 왠지 부족하다. 여행이라면 자고로 맛집도 가고 주변 구경도 해야 하는데 그때는 숙소에서 술 마시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렇다면 대학생 때 떠난 내일로 기차여행이 첫 여행인 것 같다. 친구와 둘이서 일주일 정도 전국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게 설익은 여행이었다. 취향도 관심사도 없이 떠도는 게 전부였던.
지금은 사뭇 다르다. 취향이라고 하기엔 고상하고.. 음, 그러니까 몇 가지 여행 습성 혹은 방식이 있다고나 할까.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의 습성을 정리해보려 한다.
#여행지에서 야식으로 늘 내가 먹는 것
국내 여행을 할 때면 한 번은 그 지역에서 치킨을 먹는다. 치킨집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 우선 흔하게 먹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는 1차로 탈락.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후기가 많은 집도 거른다.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고, 동네 사람들한테는 너무 익숙한 곳이라 후기를 남길 필요성도 못 느끼는 치킨집이어야 한다. 그리고 배달 주문을 하는 것보다는 매장에 들러 픽업하는 걸 좋아한다. 치킨집 분위기를 보는 것도 꽤 재미있거든. 그리고 사장님들은 다들 어떻게 내가 여행자인 걸 알아보시는지 종종 묻는다. 여행 왔어요? 우리 가게 어떻게 알았어요? 그렇게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치킨 완성. 갓 튀긴 치킨을 받아 들고 총총총 숙소로 돌아가 맥주 한 잔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넓어지는 여행 대신 깊어지는 여행
내게 여행을 자주 가냐고 묻는다면 네, 많은 곳을 가봤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아니오 이다. 무슨 말이냐면 갔던 여행지를 자주 가서 여행의 빈도는 높지만 반경이 넓지는 않다는 것이다. 원래도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질릴 때까지 그것만 하는 편인데 여행도 예외는 아니다. 마음에 들었던 여행지를 발견하면 몇 번이고 그곳에 다시 간다. 언젠가의 오키나와가 그랬고 제주도가 그랬으며 태국이, 군산이, 평창이 그랬다. 갔던 곳을 다시 가면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
#여행지에서 만드는 나만의 단골식당
제주에 갈 때마다 가는 식당이 있다. 이곳에 남편과 친구들과 엄마와 갔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내 입맛이나 취향에 맞는 식당 하나쯤 건지게 된다. 그러면 나는 여행하는 동안 또 방문한다. 어느 때고 갈 수 있는 동네 식장은 아니어서 일 년에 몇 번 못 가지만 그곳을 여행할 때마다 방문한다면 단골식당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루 커피 최대몇
평소 나는 커피숍에 잘 가지 않는다. 회사에서 마실 커피는 집에서 챙겨간다. 남편과 외출할 때도 마찬가지. 가끔 글 쓸 때 폼 잡고 싶어서 갈 때는 있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다르다. 하루에 몇 번이고 커피숍에 간다. 치킨집을 찾을 때처럼 프랜차이즈는 거르고, 그 지역의 여러 커피숍을 방랑한다. 그곳에서 돈을 또 얼마나 펑펑 쓰는가. 평소 천 원짜리 회사 커피도 잘 안 마시는데, 여행에서는 시그니처 메뉴에 빵까지 넉넉하게 주문한다. 그곳의 풍경과 시간을 더 향긋하고 맛있게 기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해두자.
#여행을 다채롭게 간직하는 방법
좋았던 여행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시 여행한다. 내가 좋았던 걸 설명하고 사진을 보여주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그래서 함께 떠나서 직접 느끼고 공유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오키나와의 풍경을 엄마와 동생과 함께 감상한 것도 친구들에게 나의 제주 단골식당을 소개한 것도 부산 친구들을 군산에서 만난 것도 그 때문이다. 함께 보고 맛보고 느끼고 싶어서. 또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더 다채로운 빛깔로 간직하고 싶어서. 나는 이보다 좋은 여행 공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여행지에서 떠오른 당신에게
이건 연애시절 그에게서 배웠다. 그는 여행에서 빈 손으로 돌아간 적이 없다. 늘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챙겼다. 그 지역의 기념품을 사기도 했고, 여행 중 맛있게 먹은 음식을 포장하기도 했다. 여행 중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챙기는 그의 방법이라는 것을 안다. 그 모습이 참 근사하고 다정해 보여 따라 하기 시작했다. 가족이나 친구에서 건넬 선물, 동료들과 나눌 간식을 챙기는 식으로 말이다. 선물을 건넬 때면 그들을 떠올리고 생각한 마음을 들키는 것 같아 쑥스러워 던지듯이 건네긴 하지만.
조만간 또 이런 여행을 하고 싶다. 최근에는 평창에 빠졌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초록초록의 평창에 가고 싶다. 나의 단골식당에서 전골에 소주 한 잔 하고, 향 좋은 커피숍에서 수다를 옴팡지게 떨고, 치킨 한 마리를 포장해 숙소로 돌아와 맥주 한 잔 하는. 아차, 돌아오는 길에 선물도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