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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Jul 23. 2023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_김신지

나라서 살 수 있는 삶을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 내 시간을 팔아서 번 돈으로 다시 시간을 사길 반복했다. 돈을 벌어서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내가 원하는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느라, 정작 내게 소중한 것들을 자꾸 뒤로 밀쳐두어야 했다. 바빠서 나빠지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나는 그때 분명 나빠지고 있었다. 열심히 살수록 내 삶에는 소홀해지고 있었으므로.


- 이 하루가 내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시절.


-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과 다르지 않았다.


- 선택은 동시에 포기다. 나로 살기 위해 ‘선택하고 싶은 것’과 아쉽지만 ‘포기할 수 있는 것’을 가려내는 것만으로 삶이 단출해진 기분이었다.


- 안으로 깊어진 뒤에 밖으로 열리는 마음이 있었다. 삶의 여백에 앉아서만 볼 수 있는 풍경도 있었다.


- ‘심시일반’이라는 말의 뜻이 처음으로 만져지는 기분이었다.


- 문학이 뭔지는 정확히 몰라도,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장면들을 안다고. 그 앞에서 나는 항상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한 채 허둥거리다가 돌아서서 웃거나 울지만. 제때 하지 못한 말들이 모여서 나를 책상 앞으로 이끈다고. 여태까지 내게 흰 봉투를 건넸던 다정하고 결함 많고 고유한 게 평범한 이들에게 언젠가 설명할 수 있다면 좋겠다.

-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돕고,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돕고, 슬픈 사람이 슬픈 사람을 돕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세상은 이미 틀렸다는 비관이나 사람에게 환멸을 느낀다는 말 같은 건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 누군가 이미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이 희망이 될 때가 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내가 끝끝내 어떤 낙관을 향해 몸을 돌린다면 ‘믿게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 걸 이제는 안다. 세상이 어때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보고 싶은 그 세상을 먼저 살아내면 된다는 것도.


- 이상한 말이었다. 어떤 것을 바라보기 위해 우리가 충분히 어두워져야만 한다는 것은. 그렇지만 뒤늦게 도착한 극장의 어둠 속에 서 있을 때면, 이해하지 못한 영화 앞에서 잠들고 난 다음이면, 왠지 그말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장혜령, 사랑의 잔상들>


- 그동안 나는 함부로 무언가를 잃었다고 말해온 게 아닐까. 내가 사라졌다고 여긴 많은 것들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는지도 몰랐다. 충분히 어두운 곳에, 충분히 고요한 곳에, 속삭임으로 말해야만 들리는 곳에. 그러니 내 곁에서 사라져버린 것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당연하게도 그것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는 일이었다.


- 깔끔하게 살고 효율만 찾으려 하니까,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자꾸 손해처럼 여기니까 추억이 안 생기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 그러고 보면 낭만은 진흙 속의 진주 같기도 하다. 잘 닦인 진열장 너머에는 없는 것. 진흙에 손을 집어넣을 수 있는 사람, 나중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지금만 생각하며 일단 몸을 담글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만 만져지는 것인지도.


- 비라는 게 맞기 전에야 피하려고 들지만, 어느 정도 맞고 나면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사람을 좀 천진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 언제든 드러누울 ‘준비’가 되어있는 맘으로는 살고 싶다. 가끔은 좀 무모해지고 천지해지고 싶다. 체면을 챙기거나 나중을 따지느라 좋은 순간에 뒷걸음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돌아보면 낭만은 언제나 반 발짝 앞에 있었다. 고작 반 발짝인데 거의 전부인 반 발짝이어서, 거기 서기 전에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 있었다. 그러니 언제나 반 발짝의 용기를. 혹시나 옆에 선 이가 뒷걸음치려는 기미가 보이거든 손목을 잡으며 말해야 하니까. “그렇게 되면 낭만이 없지!”


-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하나하나 말씀을 들어보면 지금 선 자리가 최선을 다한 자리구나 싶어요. 누구나 자기 삻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주인공한테 함부로 하면 안 되잖아요.“


- 그때가 좋았다는 말은, 함께 기억해 줄 사람이 있을 때 성립되는 말 같기도 하다. 지나간 시절이 대화 속에서 매번 새로워질 때, 그 시간을 추억이라 부르는지도.


- 이걸로 됐다고 여길 때마다 우리가 자주 하는 말 ”충분히 충분해!“처럼. 그건 이렇게도 들린다. 우리가 무엇이면 충분했던 사람들이었는지 잊지 말자고. 가난이 우리를 정말 가난하게 마들지는 않았던 것처럼. 불행이 우리를 정말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았던 것처럼.


- 눈으로는 구름 멍을, 귀로는 파도 멍을 하는 시간. 이런 걸 다 누려도 되나 싶은 동시에, 내가 이 중요한 순간 안에 온전히 머무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럴 때 나는 어김없이 기쁘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상하다. 멍의 시간을 갖는 것뿐인데 왜 잘 산다는 기분이 드는 걸까?


- 자주 속상해지는 내게 강이 말한다. 속상한 마음이 들 때마다 잘해드릴 것을 하나씩 찾아내 잘해드리자고. 부모의 삶을 안쓰러워하는 건 서로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도 알아. 볼멘소리로 대답하자 강이 덧분인다. 무엇보다 두 분의 행복엔 네가 잘사는 것까지가 늘 포함돼 있을거야. 중요한 순간에 꼭 옳은 말을 하느 강 덕뿐에 나는 속상해하길 멈춘다.


- 이사 날짜가 다가오던 것처럼 지금도 시시각각의 삶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면, 내가 가진 마음과 에너지를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는 데 써야 했다.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만나 소속감과 안정감을 구하고, 정작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시간을 미루는 방식으로 삶을 허비하는 게 아니라.


- 하루치의 삶에 할 수 있는 만큼 성실할 것. 동시에 결코 오늘의 기쁨을 소홀히 하지 말 것.


- 그런 인숙 씨가 평생 가장 아낀 걸 안다. 삶이다. 내 몫으로 온 것이니 아꼈고, 어떻게 더 쓰일지 모르니 아꼈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그가 삶으로부터 도망치려 한 적 없다는 걸 안다. (중략) 인숙 씨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전에 살 방법을,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을 향해 손을 뻗는 사람이었다.


- 시간을 정말 이렇게 써도 괜찮은 걸까? 정신없이 흘러가 버리는 하루로 인생이 채워지는 게 괜찮은 걸까?


- 변화를 원하면 뭐든 해보면 되는데, 선택이 두려우니까 내가 내려야 할 결정이 사주나 점괘 안에 이미 쓰여있기를 바라듯이 기대는 거이다. 속으론 정작 믿지도 않으면서. 남들이 그렇게들 하니까 주춤주춤 맨 뒤에 줄을 서는 심정으로. 당연하게도 그런 일들은 내 삶을 아무것도 바꿔놓지 못했다. 미래가 궁금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예언이 아니라 바라는 미래를 현재에서 먼저 살아보는 일일 테니까.


- 내 삶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기를 바라는데 그건 누가 찾아서 내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뭘 할 때 재미있고, 뭘 할 때 의미를 느끼는 사람인지 자꾸자꾸 찾고, 자꾸자꾸 해봐야 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라는 말 대신 사는게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무도 나만큼은 신경 써주지 않는 내 인생을 챙기기 위해서.


- 나라서 살 수 있는 삶을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한번 포기해 보자고. 포기한 뒤의 삶이 어떻게 될 지는 선택한 나와 함께 겪어보자고. 원하는 게 정말 시간이라면, 시간과 돈을 기꺼이 맞바꿀 준비가 되어있는지도 물어야 했다.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을 풍요로 생각해야만 내릴 수 있는 결정일 테니까. 시간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을 감당하면 된다.


- 혼자가 되어 회복한 것은 다름 아닌 그 믿음이었다. 뭐라도 하겠지. 할 수 있겠지.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서, 심지어 침대에 누워 숨만 쉬면서도 뻔뻔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마음이 회복된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그리고 지금 긍지를 느낄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긍지 없는 시간을 오래 보냈기 때문이란 것도 안다. 그 시간이 없다면 이 시간에도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에 간주 점프가 없듯이. 여러번 회사를 다녀도 보고 그만둬도 보고 쉬어도 보면서 깨달은 건 하나다.

산다는 건 용기다. 계속해서 내게 맞는 것을 찾고, 나를 웃게 만들 미래를 선택할 용기.


- 바꿔야 바뀐다. 걸어야 도착한다. 천천히 걸어야만 닿을 수 있는 곳도 있다. 그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인 순간,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조금은 선명해진 기분이었다. 여시거 분제가 끝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답은 이것일 뿐, 언제든 또 바뀔 수 있겠지. 다만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고 살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 예전엔 ‘시간 되면 꼭 해야지’라고 적던, 언젠가 하고 싶은 일들을 목록들을 지금은 ‘시간 내서 해야지’라고 적는다. ‘시간 되면’과 ‘시간 내서‘ 사이의 작은 차이를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시간을 내지 않으면 그럴 시간은 영영 오지 않는다는 걸.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세상을 향해 반복적으로 그럴 시간이 여기 있다고 대꾸해야 한다는 걸.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싶어지는 순간 마음을 바꿔 먹어본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 … 맞는데 하고. 그럴 때만이 비로소 시간은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도 안다.


- 지원서를 쓰면서 현재 내 상황을 새로 고침 하듯 들여다보았고, 숱한 질문들 앞에 나는 어떤 대답을 가진 사람인가 고민해 볼 수 있었다.


- 지금 힘든 내가 제일 중요해서, 다른 이의 삶이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중략) ’언제 한번 보자‘의 ’언제‘를 미루지 않고 정할 수 있어서 좋고, 만나서 충분히 집중할 수 있어 좋다.


- 아침을 여는 말은 하루 전체에 영향을 미치므로 부정적인 말은 되도록 삼키는 게 좋다.


- 거기까지가 나라고 받아들일 것.


- 그걸 받아들이니까 나와의 관계가 훨씬 좋아졌다. 높여 잡은 목표와 엄격한 규칙에 따라 통제하려 드는 것보다는, 느슨한 규칙을 가진 채 나를 너그럽게 대하며 조그만 성취감을 느끼는 방식이 좋다. 마음 속에 금지하는 것보다는 희망하는 것이 많은 편이 좋지 않을까.


- 나답게 산다는 건 결국 ’나‘라는 사람으로 가장 자연스럽게 사는 모습을 뜻할 텐데, 자연스러움이란 매듭을 묶는 것보다 푸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 만약 당신이 산책자라면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각오로 걸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산책을 나서지 않아도 되는 날이란 없다.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내 영혼에 맡겨진 순간순간을 잘 활용하고 싶다. 그것이 내게는 걷는 일이다.


- 감탄도 재능이구나. 좋은 순간을 발견하는 것도, 좋은 것을 좋게 말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구나. 그런 사람 곁에선 나도 같이 좋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좋은 것을 더 좋게 느끼며 금세 사라질 순간에 두 발을 꼳 붙이고 머무르게 된다. 그러니 다시 여행을 한다면,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자주 감탄하느 사람이. 나 자신에게도 여행의 동행에게도.


- 다만 동시에 내가 일군 지금의 안정 또한 권태로 느끼지 않는다. 노르는 곳으로 떠나는 여행만큼 아는 곳을 반복해 걷는 산책이 좋아졌다.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그 장소에 내가 어떤 방식으로 속해있을 것인가 하는 일이니까. ’정착‘은 한 자리에 고여있는 따분한 일이 아니라 나의 자리라고 느껴지는 곳에 잘 머무는 일이란 걸 안다. 떠나는 행위가 도망이 되지 않을 때만이 눈앞의 풍경을 온전히 껴안을 수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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