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말하면 알아들어 주세요
결혼을 한다면 너 같은 여자랑 하고 싶었어
최근 두번의 만남을 가진 소개팅남에게 들었던 말이다. 두 번 만난 남자에게 듣기에는 다소 당황스러운 멘트였으나, 자기가 사귀었던 여자 중 가장 잘 맞았던 여자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며 어필해서 그런지 꽤 진실성 있어 보였다. 속 이야기를 하도 안 해서 답답해 죽을 것 같았던 회피형 남자와 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진심을 표현해주는 남자가 새롭고 짜릿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그에게 진심을 표현해줘서 고맙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아직 연애 감정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그는 진심을 그날 밤 어림잡아 10번 쯤 되풀이 해서 이야기했다. 화제를 돌리려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보았지만 '진심 공격', ‘고백 공격’은 계속 되었다. 지겹고 조금 피곤한 마음이 들어 자연스럽게 자리를 정리하고 그를 집으로 돌려 보냈다.
그 이후로 그를 다시 만날지 고민이 많이 들었다. 복잡한 마음에 연락에 다소 텀을 두고 답변하기 시작했고, 만나자는 제안에 선약이 있다며 두어번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지치지 않았고, 세번째 만날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만난다고 마음이 커지지 않을 것 같았다. 불편한 마음 때문에 약속을 받아주면 결국 이 남자에게도 예의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연락해서 정중히 거절의 의사를 표현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더 만난다고 마음이 커지지 않을 것 같다.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 지난 번에 표현해준 마음만은 고맙다.
그렇게 잘 정리된 줄 알았지만 아차. 몇 시간 뒤에 온 그의 연락은 의외였다.
내년에 다시 연락할게 연말 좋은 시간 보내고 잘 지내
로맨스가 스릴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남자의 감정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친절하게 거절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말은 삼가했으며, 거절의 이유를 명확히 전달했다. 그런데 아직도 그는 머릿 속에서 '너는 결국 나에게 오게 되고 말거야' 장미빛 미래를 꿈꾸며 로맨스를 찍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마음은 분명 선의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정말 자기 같이 좋은 남자를 만나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자기 감정에 취해서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속 어필 했고, 그럴수록 상대방의 마음이 멀어지는 것은 몰랐을 것이다. 노력하면 된다는 잘못된 의지를 가진 것이다. 두 번이나 만났으니 상대방이 마음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음을 빼앗겼다는 착각에 다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사람은 거절하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불러 일으킨다. 그가 무서운 이유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 의사나 감정을 고려하지 않으며, 나를 같은 인격체로 받아주지 않는 것 같은 다소 일방적인 태도가 부담스럽다. 또한, 거절의 표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그 사람의 태도가, 앞으로 일반적이지 않는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위협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한번 말하면 제발 알아들어 주시고, 저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거절은 거절입니다.
그에게 좋은 여자친구가 생겨서 내년에 나에게 연락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