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충청도 출신 작가들로만 구성된 서화 단체 모임에 참석했다.
매년 한 번 씩 개최하는 이 전시회를 통해 작가들의 작품을 대할 수는 있어도 정작 그들 작가 본인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는데, 이날 모임에는 많은 회원이 나와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의 만남에 서먹서먹 낯가림을 하다가도 금방 따듯한 시선으로 쉽게 대화를 풀어나갔다. 마치 한 동네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의 다정한 모습과도 같았다.
지난 수십여 년간 서예계에 몸담고 지내오며 많은 서예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만, 유독 충청도 작가들만 활동하는 이 모임에서는 누구를 대하든 마음이 푸근하다. 같은 동향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눌 때는 마치 고향마을 논둑길이나 밭두둑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향수가 짙게 배인다. 고향은 우리 모두의 어릴 적 꿈이 자란 곳이기에 가슴속에 언제나 따뜻함으로 남아있다. 고향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믿어주고 끌어주는 각별한 인정이 연유해서이다.
반세기 동안 서도(書道) 인생을 살아온 우리 충청 작가들. 오래전 정든 고향을 기리며 서예 단체를 만들었고 한국 서단(書壇)에 한 장(場)을 세워 전시회를 이끌어왔다. 서예로써 소통하고 공감하며 삶의 동력을 찾고 넉넉한 마음으로 작품에 열중하면서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꾸준히 앞을 향해 가면서 충청의 긍지로 서예 발전을 위해 학덕을 쌓고 있다. 언제 보아도 그리운 고향 사람들 그들끼리 한마당에 모여 앉아있다.
조선의 건국 공신 정도전은 충청도 사람들을 일컬어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 했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과도 같이 꾸밈없고 담담한 품성을 가진 사람들이란 뜻 이리라. 타지방에 비해 평야가 많고 넓은 지세를 품은 충청도에서 자란 이들에게는 자연스레 느긋하고 온화한 성품이 배어있다. 충청도 사투리의 느린 억양으로 느껴지는 그 여유로움은 각 개인의 기질에서도 잘 드러난다. 비록 말과 행동이 굼뜨지만 은근한 고집에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 또한 충청인이다. 느림과 여유 속에서도 올곧게 살며 세속에 함부로 흔들리지 않으려는 양반 정신의 뿌리가 바로 이들에게 있다. 그래서 충청도 사람들을 일컬어 ‘충청도 양반’이라고들 하나보다.
‘양반은 소나기가 와도 비를 피해 뛰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충청도 사람들은 느긋함의 미학 속에서 양반의 체통을 지키며 예의 바르게 살아왔다. 이들이 실천하는 여유와 절제는 현대의 치열한 글로벌 경쟁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빨리빨리’라는 급함의 슬로건이 세계 속에서 급부상한 후 점점 삶에 지쳐가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덕목일지도 모른다. 충청인들이 지닌 은근과 끈기의 기질은 급격한 시류의 변화 속에서도 굳건한 중심을 지켜야 하는 앞으로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지혜가 아닌가 한다. 황소처럼 둔하고 느리면서도 꾸준하게 천 리를 걸어가는 충청인의 걸음은 행복한 미래의 꿈을 향한 현명한 자세이기도 하다.
선비의 고장이자 충효의 땅이며 우국지사의 넋이 서려있는 충청도에서는 예로부터 훌륭한 인물들이 학계와 정계에 진출하여 이름을 빛냈다. 우리 충청 작가들도 시서화 삼절(詩書畵 三絶)을 통해 예술을 추구하고 부단한 학문과 인격의 수양을 쌓으며 더욱 돈독함을 다져가고 있다. 글씨 쓰고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서 묵향에 취하고 먹을 갈며 자신을 다스리는 여유로움을 갖는다. 다툼 없이 그저 서로 쳐다보고 웃을 뿐이지만 가슴속에는 뜨거운 정열이 숨어있다. 사랑스러운 형제이며 다정한 친구이자 넉넉한 아저씨 같은 소중한 사이이기에 서로가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단단히 얽혀 있다.
부모 형제 함께 살갑게 살았고 친구들 모여 즐겁게 지내던 곳 고향은 개구쟁이 시절 웃통 벗고 마구 뛰어놀았기에 내 고향 사람들끼리는 허물이 없다. 한 마을 지척 간에 살면서도 속마음 내색도 못했던 청춘남녀 갑돌이와 갑순이. 혹시라도 눈 마주치면 얼굴만 빨개져 끙끙 앓다가 끝내 응어리만 안고 살아야 했던 슬픈 주인공들이다. 안 그런 척, 모르는 척, 고까짓 하며 비양거리다 헤어진 후로는 가슴 한쪽에 남겨놓은 후회의 흔적을 매만졌다. 그에 비하면 작은 시골 동네에서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오빠 동생으로 어울려 놀았던 우리 부부는 길게 이어온 우정이 자연스레 필연으로 발전하여 결실을 맺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 죽마지우인 내 친구가 가끔 놀려 댄다. “너희 부부는 갑돌이와 갑순이야.”라고.
이원수 시 「나의 살던 고향」과 정지용 시「향수」를 노래로 듣고 있노라면 고향의 정경이 눈앞에 어리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짙게 녹아내린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마음은 이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선다. 꿈에라도 항상 내 넋이 담겨있는 고향으로 간다.
전시장에서 웃고 떠들던 고향 사람들이 여기서 헤어지기 아쉽다며 한잔하러 가자고 조른다. 취기가 오르면 작품 활동에 대한 고민거리는 뒤로한 채 어릴 적의 시덥지 않은 추억들을 들추며 감회에 젖을 것이다.